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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팀목 Jan 07. 2024

나는 내 삶의 주인일까요?

어쩌다 태어난 김이 살게 되었나 봅니다.

배고파서 먹게 되고 심심하니 놀게 되고 학교에 가라고 하니 가게 되고 먹고살아야 하니 취직을 하고 남들 다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워야 하니 돈을 더 벌어야 하고 그러다가 퇴직을 하고 처음으로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생각할 여유가 생깁니다.


난 대체 왜 살았을까? 그저 내가 태어난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았을 뿐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 난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돌볼 필요가 없어졌고 딱히 하고 싶은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도 없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만한 돈도 없으니 불가능합니다.


돈을 더 열심히 벌고 싶은 생각도 없고 세금을 내면 낼수록 꼭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느낌이 드니 스스로 노예가 되는 기분입니다.


되돌아보면 내 인생은 일부 지배자를 위한 노예였던 것 같아요. 노예들이 열심히 일해야 주인님들이 배가 부를 테니까요. 그것도 모르고 참 열심히 살았어요.


중년들이 본능적으로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빠져드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노예에서 해방되는 길은 세금을 내지 않는 자연인이 되거나 자살하는 것뿐입니다.


중년이 되어 비로소 느낀 점은 인간은 평등하지 않으며 심지어 목숨도 그 가치가 다르다는 겁니다.


젊은 청년 159명의 목숨은 정치인 한 명의 목숨보다 그 값어치가 낮아요. 그야말로 개미 목숨인 거죠.


그 개미 중 하나인 나는 내 몸을 보전하기 위해 식충이가 되어 계속 노예로 살 것인지, 아니면 그나마 남아 있는 돈을 아이들이 덜 불평등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종잣돈으로 남겨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러한 나만의 깨달음이 염세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것인지 계속 물음을 던지지만 그럴수록 확신에 가까워져서 사실 겁이 납니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도 믿음이 없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도 모두 살아 있는 노예를 만들기 위한 주문 같아 보입니다.


노인이 되어 불필요한 노예가 되면 같은 처지의 젊은 노예들에게까지 그 피해가 갈 테니 그 또한 늙은이로서 염치없는 짓이 될 것도 걱정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해지는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참 수치스럽습니다.


젊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열심히 봉사하라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는 나 자신이 사기꾼 같아 더 이상 강의도 못해먹겠어요.


다시 태어나면 김건희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번 사는 인생 세상 맘대로 주무르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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