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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팀목 Jan 08. 2024

드디어 아버지를 버리고 왔어요.

우연히 사전장례의향서라는 것을 알게 되어 바로 작성했습니다.


내 죽음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


장례식은 치르지 말 것


조의금은 받지 말 것


시신은 해부용으로 기증할 것


염습은 하지 말고 죽었을 당시의 옷을 그대로 입힌 채 화장할 것


관은 가장 싼 것으로 하고 장례차도 가장 싼 것으로 할 것


분골은 화장터에서 가장 가까운 적당한 곳에 뿌릴 것


삼우제를 비롯한 어떠한 제사도 치르지 말 것


재작년 장인어른 돌아가셨을 때에도 부고를 알리지 않았어요.


어떤 이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해 시채팔이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저는 부고가 시체팔이라고 생각합니다.


풍습을 무시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지만 정승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모여도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안 간다고 하는 말이 생긴 이유가 있겠죠.


내친김에 세종에 있는 납골당으로 냅다 차를 끌고 가서 아버지 유골을 반환받아 와서 방금 강에 뿌리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어차피 나도 나이 들어 죽어가는 마당에 불필요한 짐을 아이들에게 남겨두기 싫었어요.


요즘 세상은 부모덕에 태어나서 행복합니다라고 하기보다는 부모가 낳는 바람에 참 힘들게 살아요라는 말이 더 많이 나오는 세상이니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래서 죽은 육신마저 짐이 되기 싫어 사전장례의향서도 쓰고 아버지도 버렸어요. 왠지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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