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쓰던 전화번호를 바꾸고 나니 일상이 고요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오로지 홀로 남았다는 느낌이 들어 외로움이 몰려 오더군요.
그러한 시간이 반년 정도 흐른 후에는 타인에 의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 자신의 효용과 가치에 대해 가감 없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참 별 볼일 없다는 생각으로 귀결되더군요.
그 깨달음은 정말 고통스러웠고 반세기를 소모하며 살았다는 자괴감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런 자괴감이 반복되어 뼛속까지 파고들면 나라는 사람은 평생을 남들보다 잘 살아보고자 발버둥 쳐 왔지만 본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지금의 나는 사람을 괴롭히지도 않고 연봉에 욕심 내지도 않으며 잘나고 싶은 욕구마저 없는 고요함 그 자체입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인간이 현대 의료의 혜택을 받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살면 평균적으로 38년을 산다고 합니다. 나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평균적인 인간보다 3분의 1을 더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 자체로 감사함을 느껴야 마땅합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축복이 없어도, 과거에 나를 둘러쌌던 인간관계가 모두 사라졌어도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