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베이트는 박사과정의 필수
배움의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지혜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확산되고, 이를 통해 내가 세상에 의미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 만물(萬物) 속 나(我)의 의미를 찾고 싶은 것도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인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롭고 낯선 상황에 적응하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내 주장과 의견을 발표하고 상대방이 제공하는 정보에 질문할 기회가 점점 늘어나는데, 외향적이었던 성향이 집순이로 바뀐 것만큼이나, 포디움(podium) 앞에만 서면 두려움이 앞섭니다.
영화 ‘킹스 스피치'. 영국 신사와 매너의 아이콘 '콜린 퍼스'가 말더듬이 국왕 조지 6세로
관중 앞에만 서면 말 더듬는 습관과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던 조지 6세
피할 수 없던 전쟁의 상황 속에서 성공적인 대국민 연설로 국민의 단합 이끌어내
영국 대표 배우 ‘콜린 퍼스’하면 어떤 영화가 생각나세요?
그를 타임리스‘신사와 매너’의 아이콘으로 만든 영화는 아무래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였을 거 같지만, 저는 콜린 퍼스의 다른 영화 [킹스 스피치 (2010)]를 꼽겠습니다. ‘킹스 스피치’는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이기도 한 ‘말더듬이 국왕’ 조지 6세가 타고난 웅변가였던 히틀러에 대항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지키고자 했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개인 언어치료사까지 두며 지속적으로 치료받아 왔던 조지 6세는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온 국민이 알고 있는 말더듬이 콤플렉스를 극복해 내고, 또한 전쟁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국민들이 하나로 뭉쳐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가진단: 디베이트 (Debate) 공포증
이 영화를 꼽은 이유는, 그는 국민 앞에서 연설을 해야만 하는 환경적으로 부여받은 역할이 있음에도, 이를 저해시키는 선천적인 약점이 있다는 점이 제 현재 상황과 비슷해서입니다.
자가진단을 해보자면, 저는 디베이트 공포증이 있습니다. 디스커션(discussion)과 같이 ‘토론’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디베이트(debate)는 좀 더 대립적 의견을 가진 쌍방이 서로 의견을 개진하고 상대방과 청중들의 질문에 방어 및 설득하는 면이 더 크지 않나 싶은데, 저는 그런 디베이트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또는 예상치 못한 의견이나 질문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큽니다. 필기해 놓지 않으면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지며 준비한 메시지를 잊고 (심하게는 바로 몇 초전에 한 말이 생각이 안나 다음 말을 이어 나가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당황한 기색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럴 때를 대비한 행동들을 연습하기도 합니다.
제 과거를 돌아보면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향에 남녀공학을 줄곧 다니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무리없고 금방 친해지는 성격이었지만, 한편 상대방이 나와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어요. 아래로 남동생이 있지만 크게 싸워본 적이 없고, 누군가와 말싸움을 해본 적도 없어 사실 그런 상황이 오면 피했던 거 같아요. 말보다는 글이 편했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미리 왜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조목조목 메모해 전달했던 거 같아요. 회사 경력으로, 경영기획실에서 회장님 신년사, 축하 및 격려 등 사내/사외 메시지 작성도 제 업무 중 하나였고, 방송작가와 칼럼니스트로 일한 것을 보면 객관적으로도 글을 못쓰는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고요.
박사 과정, 그리고 박사가 된 이후: 디베이트는 나의 동반자
PhD는 'Doctor of Philosophy'의 약자로 ‘박사’ 학위를 의미하고, 이를 수여받은 사람들은 Dr.라는 호칭이 이름 앞에 붙습니다. 나라, 학교, 전공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대학원 과정의 기간이 상이하지만, 일반적으로 박사과정은 석사를 마친 후 약 3-5년 정도, 석박사 통합과정이라면 5-7년 정도 소요되는 것 같아요. 빠르면, 2년 반 정도 안에 박사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학위를 취득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PhD를 취득한다는 것은 박사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진행하는 논문 심사과정이자 구술시험, 즉 ‘논문 디펜스’를 통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사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인 거죠. 한국에서는 디펜스(defense)라고도 불리는 이 구술시험을 영국에서는 Viva Voca의 줄임말인 Viva(바이바)라고 흔히 부릅니다. 영국의 바이바 심사는 보통 전공지식과 연구방법, 전반적인 유학생활을 관리하고 지원해 주시는 지도교수님(principle supervisor)의 참석 하에 심사위원으로 외부에서 초청한, 해당 분야 전공 교수님 두 분과 함께 “구술(verbal)” 디스커션을 통해 논문의 타당성, 깊이를 점검합니다.
또한, 영국에서는 (한국과 미국도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요) 일반적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2년 차 (9-18개월 내)에 “upgrading”이라는 구술 프레젠이션을 통해 현재 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가 계속 박사과정을 통해 심화연구를 진행해도 되는 지를 심사합니다. 즉, 대학원에 입학 후 약 1년여간 연구주제와 방법론 등 논문의 개괄적인 구조와 진행 예정인 내용을 다듬는 데 집중하게 되고, 이를 담은 업그레이드 페이퍼를 지도교수에게 제출해 평가받는 시간을 갖습니다. 업그레이딩 과정도 학교와 전공 학과에 따라 평가방법이 상이한데, 보통 업그레이드 페이퍼와 이를 기반으로 한 질문 또는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합니다.
또한, 연구가 진척되고 결과물이 어느 정도 나오게 되면, 그와 관련된 주제의 컨퍼런스, 심포지엄, 학회 등의 발표자로 참석해 아카데믹 경력을 쌓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에는 박사 과정에서, 그리고 아카데믹 경력을 쌓는 데에 있어 ’디베이트’와 ‘디스커션’은 필수적입니다.
나의 약점 = 디베이트 = 박사과정의 필수 덕목
그럼 저는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아가고 있을까요?
(2) 퍼블릭스피킹이 두려워 인문학부 학생회장이 되다 에서 저의 극복 경험담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