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남미, 두번째 이야기
여행이 많이 힘들었다. 돈이 없고 몸이 추워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찾기 위해 여행한다고 했지만, 나는 '나'를 왜 찾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이라니, 아니 그럼 여태껏 살아온 나는 가짜 나였나 싶었다. 그 어딘가에서 헤매기만 하다가 돌아온 것 같다. 수필보다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 들여다본 여행 코너에 있는 책들엔 그들이 여행 중에 진정한 자아를 찾거나, 행복을 알게 되거나,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내용이 가득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나를 찾았을까.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얼 얻은 것일까?
남미에 도착해 나는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나만 믿고 따라간 남자친구는 늘 옆에서 묵묵히 나를 쳐다보며 기다렸다. 일단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남자친구까지 끌고 남미를 가긴 갔는데, 무언가 텅 빈 것만 같았다. 아빠에게 그려주기로 약속한 성당을 반 의무적으로 보고, 사람들이 맛있다는 식당엘 가서 둘이 말도 없이 밥만 먹었다. 아마 초반에는 억지로 잡은 바쁜 일정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힘이 들 때 나를 업어주고 때로는 무거운 것을 들어줄 것이란 암묵적인 약속 때문인지, 나는 나 스스로 우리에게 멋진, 그러나 쓸모없었던, 일정을 선물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이게 무슨 여행이야. 좀 쉬어가자..
일주일쯤 됐을까, 남자친구는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숨 쉴 틈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심지어 그렇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더 정신이 없었다. 출발한 지 일주일 만에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이과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 도착했다. 짐을 풀자마자 바로 다음 날 또다시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말에 남자친구는 "그럼 여권에 그렇게 원하던 도장도 찍었겠다 오늘 가버리자."라며 극단적으로 나왔다. 결국 다음 날 칼라파테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해놓고 우리는 블로그에서 본 맛집을 찾아 또다시 지도만 응시하며 길을 걸었다. 그런 그의 원을 하늘이 듣기라도 했을까. 다음 날, 비행기는 기상악화로 결항되었다.
아홉시쯤은 되어야 해가 뜨는 바닷가에 아침 일찍 둘이 손을 잡고 나가 달이 둥둥 뜬 바다에서 물개를 보았다. 아침 산책이라도 나왔는지 우릴 보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두 마리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리 앞을 맴돌았다. 그 달빛 아래 물개가 지나간 바다를 배경으로 처음으로 삼각대를 놓고 둘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이 고맙고, 소중했다. 아마 그때부터 내가 가질 수 있는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던 것 같다.
'필름남미'라고 하지만, 남미처럼 보이는 사진을 보기 힘든 까닭이다. 몇몇 사진을 미리 본 가까운 지인들은 "그냥 동네에서 찍었을만한, 정말 네가 좋다고 느낀 순간을 찍어왔구나."라고들 입을 모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첫날, 엄마가 내게 "어디가 제일 기억에 남니?"라고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가 떠올린 것은 카카숭카Qaqasunka였다. 해발고도 6,088m인 와이나 포토시 설산 트래킹에 도전했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남자친구 어깨 위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나는 우습게도 수크레 길 어딘가 전깃줄에 매달린 먼지 먹고 자라는 식물이 그리웠다.
* 카카숭카Qaqasunka : 남아메리카 중앙 안데스 산맥 고지에 사는 아이마라족이 사용하는 언어로 '수염이끼'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염 틸란시아로 불리며, 흙과 물이 없이도 공기 중의 수분과 먼지 속에 미립자를 자양분으로 자라는 식물인 틸란시아의 한 종류이다.
엄마의 수술 일정에 맞춰 예정보다 한 달 일찍 귀국했고, 척수종양으로 고생하는 엄마 곁을 지키느라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채로 나흘 밤을 꼬박 새웠다. 돌아오니 좋지, 묻는 이모들과 엄마의 질문에 "그럼!"하고 웃어 보였지만, 내게는 달랐던 적이 없다. 한국에서의 삶도, 환철을 만났던 보홀에서의 시간도, 지독히도 추웠던 남미도 그저 나에겐 내가 살아가는 시간일 뿐이었다.
작은 것들에 집중하며 살아야 해요.
언젠가 돌아보며 그게 큰 것이었다고 깨달을 테니까요.
우리는 찬란한 순간들, 자연의 즐거움, 꽃이 피는 걸 그냥 지나치고, 놓칩니다.
삶의 페이스를 늦춘다는 건, 느려지거나 야망을 버리는 것이 아니에요.
회복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활력을 되찾고 재충전을 하는 것이죠.
느닷없이 새벽 4시에 "그래서 너는 전깃줄에 걸린 꽃이 떠오르는가 보다."라며 나를 꽤나 아끼는 언니가 문자를 보내왔다. 함께 온 링크에는 동기부여 철학자 제이 셰티Jay Shetty가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사는 우리네들의 삶에 대하여 사소한 것들에 관심 가질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렇게나 좋은 순간들을 담아와 놓고선, 또 이내 '나는 도대체 이 여행에서 얻은 게 뭐지?'라며 자책하던 나를 들킨 것만 같았다. "너는 사소한 걸 지나치지 않고 볼 줄 알아서."라는 그녀의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차마 부끄러워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 했다.
나는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카카숭카들이 무럭무럭 자라겠구나.'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