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준비하고 있는데 중고 거래 사이트 당근에서 메시지 하나가 왔다.
- 안녕하세요. 클레이 키건의 푸른 들판을 걷다 구입 가능한가요?
중고 책 몇 권을 처분하려고 당근에 올려 두었는데 한참만에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게시글 올려두고 잊고 있었는데 반가웠다.
- 네 가능합니다
- 좀 급해서요. 지금 가능할까요?
- 이쪽으로 오실 수 있으시면 가능합니다
거래 장소를 집 앞으로 설정해 두었고, 새끼발가락을 다쳐서 여행을 위해 3일 동안 무리하게 걷지 않고 집콕 중이었으므로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면 바로 응할 생각이었다.
- 네 지금 갈게요
15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집에 있다가 클레이 키건의 책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이 책은 새 책이나 다름없다. 3분의 2 지점까지 보다가 하차한 클레이 키건의 단편 소설집이다. 클레이 키건의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소설을 좋아했기에 기대했던 신작이었는데 단편 소설이었다면 구입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제목이 딱 봐도 같은 계열의 소설이리라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나는 일정 시간 동안 적응기가 필요하다. 특히 소설은 등장하는 인물을 파악해야 하고 이야기의 시작과 분위기를 적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단편 소설은 이야기에 적응할만하면 다음 소설에 적응해야 하고 한참 이야기가 재밌는데 갑자기 마무리되기도 하니까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단편 소설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에 열두 권 정도 읽은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는 괜찮았던 것을 보니 단편 소설집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래서 클레이 키건의 단편 소설집을 중도 하차했다. 그리고 고이 모셔두었던 그런 책이다. 당근에서 판매되지 않아 온라인 중고 서점에 판매할까 망설이던 책. 새 책에 가까워 되팔기 아까웠지만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가면 기쁠 것 같다.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보다. 잘 가렴, 좋은 주인 만나렴. 그러면서 책을 괜히 넘겨 보고 표지도 쓰다듬는다.
집 앞 아파트 후문으로 나와 기다리는데 다시 당근에서 메시지가 왔다.
- 죄송합니다. 거의 다 왔는데 딸이 책을 구했다고 연락이 왔네요.
나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선뜻
-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라고 답변을 남기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 저를 욕하셔도 돼요. 정말 죄송해요.
라고 메시지가 다시 왔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이 메시지로 충분히 전해졌다. 나는 다시 한번 괜찮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사람을 이해하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상황을 이해하면 사람을 이해하기도 한다. 나는 사람과 상황을 모두 이해했는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지 않은 평정심이 유지된 상태. 이것이 약간은 낯설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럴 때 나의 좋은 면을 발견한 것 같아서 그렇다.
나는 나와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대다수 호의적이다. 본성은 내향적이면서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타입이다. 아마 앞서 그런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났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괜찮다고 말했을 것이다. 타인들에게는 관대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사람이 나다. 그러나 요즘 책에서 무수히 이야기했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나는 자기애가 강해서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자기애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자기애도 하나의 결핍이라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타인으로부터 충족이 되지 않으니 스스로라도 자기애라는 명목으로 인정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지 않나 생각한다.
진정으로 자신을 돌볼 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 충족되었기 때문에 자기 안에서 만들어진 좋은 것들을 가지고 밖으로 향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너그러움이 생긴다. 자신만 사랑하는 것도 타인만 사랑하는 것도 아닌 어떤 균형을 가지고 나아간다. 오랫동안 사색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랑’이다. 내가 쓴 시에도 그 마음이 표출되기도 했는데 예전에 나에게는 사랑이 소멸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메말라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내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암 환자가 되고 바뀐 것은 나를 사랑하고 돌보게 된 것이다. 자유로워진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쏟으면서 나를 알아가고 나와 친해지고 있다. 실수해도 ‘괜찮아 그럴 수 있지’하며 다독이고 처음이라 용기가 필요할 때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하며 응원도 한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내가 충분히 채워질 때까지 자유를 주리라 다짐도 한다.
20년을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병원 서비스를 제공하며 타인에 대한 친절이 몸에 베어 있기도 했다.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친절을 베풀며 오랫동안 살았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친절하지 못했던 그리고 우선순위를 뒷전에 두기 일쑤였던 삶 속에 나는 나의 삶을 살면서도 많이 행복하지 못했다. 그저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던 때를 돌아보면 나를 사랑할 마음의 공간도 시간도 부족했다. 많은 일을 겪은 지친 하루 속에 나를 들여다볼 여유가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니 사랑하지도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다. 암 진단을 받고 그런 나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왜 그렇게 밖에 살게 하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그래서 암과 함께 달라진 나의 삶에 전과 같은 인생을 답습하고 싶지는 않아서 천천히 하나씩 나를 사랑하기로 한다. 원하지 않는 일은 웬만해서는 피하려 한다. 하고 싶은 것만 마음껏 하면서 살고자 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기에도 내게 남은 인생이 짧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그 언젠가 하겠다며 미뤄두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거창하지 않고 소소하다. 그래서 실행에 옮기기 좋고 그때그때의 경험으로 남겨둔다. 되도록이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경험으로 자신을 채우기를 바란다. 그 어느 때나 나의 편이 되어 주고 나에게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타인에게도 다정할 수 있다. 나는 나에게 사랑과 다정함을 곱게 심어 이제는 아주 작고 작은 열매라도 나누고 싶다. 사랑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소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최근에 한 사색의 결론이다. 소멸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랑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그래서 가장 먼저는 나를 채우는 나를 위한 사랑과 다정을 심는 중이다. 나에게 먼저 다정하자. 그리고 가까운 이들에게도 익숙해서 당연한 것 말고 다정함을 주자.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다정하느라 나와 가족들에게 무심해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