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시간

by 별하열음

난생처음으로 불면에 시달리는 중이다. 잠을 전혀 자지 못하는 것은 아니므로 불면이라기보다는 입면이 힘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잠만 들면 세상모르게 깊이 오래 자니까 입면이 힘든 상태이다. 유방암 환자의 호르몬 억제제가 불면증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주변에 유방암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듣기는 했었다. 우울증에 불면증에 골다공증이 생길 수 있고 기타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온다. 희한하게도 살려고 하는 치료인데 뒤따르는 부작용이 더 많다. 처음 반년은 잠을 잘 자길래 평소 잠을 잘 자는 나에게는 역시 해당 사항이 없나 보다 했는데 반년이 지나고 입면이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잠이 드는 시간이 새벽 1시, 2시이다.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는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시간이라서 건강을 위해서 꼭 자야 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잠이 드니 진정한 잠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3주에 한 번씩 표적 항암 치료를 하러 가면 교수님 진료를 먼저 본다. 교수님은 그간에 불편한 것이 있었는지 물어보시고 물음에 답해 주신다. 우리 교수님은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이시다.



나: 요즈음 잠이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식물성 멜라토닌을 복용해도 되나요?



교수님: 네 복용해도 됩니다. 잠을 몇 시에 자나요?



나: (사실 12시 근접해서 자지만 혼날까 봐 11시라고 답한다) 11시요...


교수님: 너무 늦게 잠을 자네요. 그 시간에 자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일 때문에?



교수님은 늘 아무 변명도 못할 질문과 말씀을 하신다. 현 백수가 무슨 일이 있을까요. 하루 종일 혼자 사부작거리다가 잠이 드는걸요. 다만 습성상 오후 5시 30분부터 기분이 좋아지면서 그때부터 활발히 움직이며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보니 늦게 잠드는 거예요. 아무래도 정신을 덜 차린 듯합니다. 암 환자 되고 초반에는 10시부터 자는 루틴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많이 느슨해졌나 봅니다.



나: 제가 운동하는 것 외에는 활동량이 적어서 덜 피곤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교수님: 그래요? 그럼 수영하는 시간을 더 늘리면 되겠네요. (당시는 여름이라 주 6일 한 시간씩 수영을 다니고 있었다) 10시에는 잠들어야 해요 12시를 넘기면 잘못하다가는 날밤을 샐 수도 있는 거라. 멜라토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찍 자도록 하세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반성을 하며 일찍 자리라 하지만 참 사람이 그게 뭐라고 그거 하나 고치기가 그렇게 힘들다. 결국 나의 몸은 새벽 1시에 잠드는 것으로 습관이 들었고 그전에는 잠이 들지 않으며 교수님께는 식물성 멜라토닌(수면에 도움을 주는 영양제)을 먹어도 되는지 물어 놓고는 그것조차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다. 나는 수면 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머리만 대면 자고, 낮에는 낮잠도 자고 밤에 또 자던, 커피를 마셔도 아주 푹 자던 나였는데 나란 말이다. 아마도 이 수면 부심으로 인하여 내가 현재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의 의지대로 잘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방암 환자 중에 불면증이 와서 수면제를 처방받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상황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전에 같은 직장에 다니던 동료 선생님들이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안 되었는데 잠을 자야 하는데 못 자는 것은 고통이다. 이제는 밤에 제대로 수면에 들려면 낮에 졸려도 낮잠을 자서는 안 되고 커피도 끊었지만 간혹 마시는 커피도 안된다. 몇 번 실험을 해봤는데 커피를 마신 날은 정말 날밤을 샜다. 이제는 카페인은 나와 정말로 바이 바이 해야 하나 보다.



암 환자 이전에 이런 상태였다면 즐겁게 밤을 새웠을 것이다. 나는 새벽의 시간을 사랑하는 새벽 러버였으므로. 새벽에 신나게 혼자 사부작대고 다섯시에 잠들고 아침에 쭉 자다가 한낮에 일어나는 패턴을 지닌 사람이다. 나에게 쉬는 날이 주어지면 이런 패턴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 날밤 까기를 하는 일 따위는 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강박이 생겼다. 잠이 오지 않지만 안 자면 안 된다는 강박. 강박이 생기자 더 잠을 잘 수 없었고 수영을 주 6일 한두 시간씩 빠짐없이 하고 한 시간씩 걷기 운동도 하고 밤에는 요가도 했더니 체력은 더 좋아졌는데 운동 외에는 방에서 꼼짝을 하지 않으니 밤이 되어도 멀뚱멀뚱할 수밖에.



요즈음은 일주일에 한 번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겼는데 다시 먹지 않기로 했고 잠에 들기 한 시간 전에 멜라토닌을 복용하고 잔다. 뭐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날밤을 새면 안 된다는 철칙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에 수면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니. 그간에 소홀했던 건강 기록 다이어리를 다시 작성하기로 했다. 사람은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 암 환자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 건강 기록을 한다. 건강 기록 다이어리에는 하루 동안 먹은 음식, 운동한 시간, 수면 시간, 체중 등이 기록된다. 이렇게 기록하면 나를 체크해 볼 수 있고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 밤 10시에 잠들어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갖는 날까지 부단히 노력해서 건강한 루틴으로 만들리라.



잠이 오지 않을 때 입면에 들기 위한 나의 노력에는 요가 니드라를 할 때 배웠던 것으로 숨 한 번에 숫자 하나를 새는 것이다. 숨 들이쉬고 내쉬고 하나, 숨 들이쉬고 내쉬고 둘 ... 이렇게 숫자를 세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든다. 아무래도 숫자 세기보다는 호흡을 통한 마음이 편안해짐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노력은 어차피 잠이 오지 않는 거 조명 하나만 켜두고 독서를 하는 것이다. 이때 좀 난해한 책이나 지루할 것 같은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재밌는 책을 읽다 보면 재미있어서 날밤을 샐 수 있으니까. 세 번째는 앞서 말했던 식물성 멜라토닌의 도움을 받기. 수면제처럼 이것을 먹어서 잠을 잔다기보다는 수면에 도움을 받는다. 입면이 쉬워지고 자는 동안 깊이 잠들어 푹 잔 것처럼 느껴진다. 멜라토닌의 역할은 잠을 자야 하는 시간임을 알려주는 역할이라고 들었다. 뇌에게 지금은 밤이야 잘 시간이야라고 알려주는 용도. 그래서 잠들기 전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밤늦게까지 밝은 불빛 속에 있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형광등을 끄고 은은한 조명으로 바꾼다. 그리고 되도록 한 두 시간 전부터는 핸드폰보다는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쓴다. 핸드폰을 보며 도파민으로 뇌를 각성시키기보다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서이다. 수면 애착 인형 ‘뽀오’도 요즘 나의 머리맡을 함께 한다. 말랑말랑 퐁신퐁신 한 것이 촉감이 좋다. 내 얼굴만 한 빨간 사과 인형인데 베개 위에 올리고 살짝 같이 베고 자면 기분이 좋다.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늦게 잠든 사람은 늦게까지 자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수면 패턴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으로 자리 잡는다. 간혹 병원에 진료받으러 갈 때 아침 일찍 진료 예약 시간이라서 아침 6시에 강제 기상을 하는데 그날은 오후 2시부터 너무 피곤하다. 그리고 밤에 일찍 잠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방법 중에 무엇이 확실하다고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세상에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을 찾아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테니까. 입면과 수면 패턴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잠을 잘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것도 10시간을 꿀같이 자니까 감사한 일이다. 오 신이시여 부디 이른 입면과 건강한 수면 패턴을 주소서. 이 세상에 잠들지 못하는 일들에게 꿀같은 단잠을 선사하소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