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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리 Mar 22. 2021

쇼핑의 세계, 내겐 아련한 향수의 세계

쇼호스트 임세영의 첫 책<쇼핑의 세계>를 말합니다


“내가 책을 낼 건데, 혹시 내 원고 보고 피드백 좀 줄 수 있어?”


나이 차가 꽤 나는 혈육인 내 큰언니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약 30년간이나 우리 언니와 절친사이인 언니는 내가 꼬마일 적부터 단발머리의 교복차림으로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다. 당시 큰언니는 그 언니와 그룹과외를 했기에 과외가 있는 날이면 내가 직접 고사리손으로 우유와 떡이 담긴 간식쟁반을 나르기도 했다. 언니의 다른 친구들도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건만, 유독 키가 크고 멋스러운 차림새에 시원시원한 말씨를 가졌던 그 언니가 놀러오는 날이면 언니들은 도대체 방문까지 걸어잠그고 뭘 하고 노는지 꽤나 궁금했던 기억이다. 궁금증에 몸이 배배 꼬이던 호기심 많은 다섯살의 나는 찻잔에 오렌지 쥬스를 가득 따라 쟁반에 받쳐들곤 부들부들 팔을 떨며 언니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대장(당시 큰언니를 부르던 말), 엄마가 이거 마시래.’  주스를 핑계삼아 ‘중학생의 공간’에 입성한 나는 언니 친구가 가져온 방 안 가득 펼쳐진 한무더기의 패션잡지 더미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알록달록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이 가득한 잡지를 오려 다이어리에 붙이고 새로 산 옷을 함께 입어보던 중인 것 같았는데 내 눈엔 그 장면이 별천지 처럼 보였다. 친구와의 재밌는 여흥의 시간을 깨버린 막냇동생의 티 나는 거짓말이 성가셨던 큰언니는 ‘그냥 음료만 두고 빨리 나가.’ 라며 방문을 열어 날 내쫓으려 했고, 언니 친구는 ‘왜~ 애기가 고생해서 가져왔는데. 빨리 마시고 보내주자.’며 내가 가져온 오렌지 주스를 천천히 원샷했다. 언니 친구의 센스있는 배려 덕에 난 주스가 언니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짧은 틈을 타 눈동자를 굴려 재빠르게 언니들의 금단의 방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언니 친구는 종종 당시 한글을 익히던 내 공책에 받아쓰기 문제를 내주기도 했는데 ‘가방, 나비, 바둑이’ 같은 단어가 아닌 다섯살에겐 꽤나 컨템퍼러리한 단어인 '패션','무드','파격' 등을 문제로 제시했다. ‘연애인’이 아니라 ‘연예인’ 이 맞는 맞춤법이라는 건 이 언니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문제의 출처는 옆에 있던 패션잡지였다는 사실을 좀 더 큰 후에 알게 됐고.... 언니 친구는 세월이 흘러 내게 내주었던 받아쓰기 단어대로 ‘연예인’ 에 준하는 스타 쇼호스트가 되었고, 그시절 가나다를 익히던 난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내게  한글을 가르쳐 줬던 언니의 절친이 삼십 년이나 흘러 내게 원고 피드백을 부탁했으니 세월의 흐름에 따른 역할의 변화가 새삼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 언니 친구는 CJ 오쇼핑의 ‘임세영 쇼호스트’이다.

 

쇼호스트 임세영의 첫 에세이. 샘터출판사 2021년 3월 24일 출간


시간이    흘러 언니들은 대학을 졸업했고, 방송국 피디가 되었다는 소식 정도만 알고 있던 세영언니는 난데없이 같은 방송사의 쇼호스트가 되어 티비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저 그냥 아는 사람이 티비에 나오는  신기한 정도였던 당시.고시 공부 중이었던 큰언니는 피차 공부해야  신세였던 고등학생의 나를 데리고 종종 도서관을 가곤 했다. 어느날 언니 공부를 하다 말고 내게 ‘ 이따 임세 올거야라고 통보하는 게 아닌가. 오랜만에 보는 ‘연예인세영언니가 온다는 소식에 약간 긴장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윽고 도서관에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화려한 차림새의 여자가 카메라 이론에 관한 책을 들고 열람실에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방송을 마치고  세영언니였다. 누가 봐도 연예인같았던 그녀의 포스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주목했음은 당연했고 옆에 있던  어깨는   없는 뿌듯함에 슬쩍 올라갔던  같다. 세영언니는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카메라 이론서를 집중해 읽기 시작했다. 물건 파는 사람이  도서관까지 와서 책을 읽지 싶었는데, 언니가 말하길  카메라를  예정이라 전문지식을   알고 제품을 공부하면     있지 않을까 해서 책을 빌리러 왔다고 했다. 세영언닌 두시간 동안   마디  하고 두꺼운  한권을 빠른 속도로 독파했다. 카메라, mp3 팔던 언니는 조금씩 분야를 넓히기 시작하더니 선글라스, 머플러를 팔기 시작했고  년이 지나자 CJ 오쇼핑 채널의 황금시간대의 패션 전문 메인 쇼호스트가 되었다. 지금은 쇼호스트이자 유튜버로, 인플루언서로 활동의 무대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 언니는  분야에서 열정을 다했던 20여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예정이라고 했다. 언니가 보내준 원고를 읽어보니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언니들의 패션 잡지, 용돈을 모아 거울 앞에서 돌려가며 입던 , 가방과 같은 케케묵은 추억들이 고스란히 현재의 열정과 자산으로 녹아 있었다. 언니들의 넘치도록 화려했던 과거를 근거리에서 동경과 순수의 눈으로 바라본 나야말로  원고의 아낌없는 조언자로서의 역할에 적격이지 않은가!


방송작가로 스튜디오와 야외 할 것 없이 온 데를 누비며 홈쇼핑 촬영 현장도 가 본 나였지만, 언니가 쓴 초고를 읽으며 쇼호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깨졌고 오히려 새롭게 알게 된 계기가 됐다. 화려한 패션 산업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물욕과 허영의 파도 한가운데서 가장 중심을 잡아야 하는 직업이야말로 쇼호스트라는 직업이라는 것. 새로운 물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생산되고, 유행이란 눈을 떴다 감으면 뒤바뀌고 있으며 사방에선‘우리 물건이 제일 좋다’고 외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어떤 점이 이 물건의 소구 포인트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소개하는 일은 단순히 타고난 끼와 말빨로만 해결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쇼호스트 임세영은 쇼호스트라는 직업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입의 약 절반을 투자해, 자신이 판매할 물건과 같은 카테고리의 다양한 물건을 경험했다. 그렇게 써 본 물건들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버티고 성장해 온 20년의 세월이 언니의 글에 충분히 녹아 있었다. 본인이 경험한 쇼핑의 사연들을 양분삼아 소비자에게 최고의 쇼핑 경험이 되도록 하겠다는 직업관은 언니를 명실상부 최고의 쇼호스트로 만들었을 것이다. ‘물건을 사는 행위’ 안에는 소비자의 고단하고 녹진한 일상 경험과 주머니 사정이 담겨있다. 그 모든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 판매자이자 소비자로서의 역할 또한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는 진솔한 이야기들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나를 근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질문이 되기도 했다. ‘과연 이순간 글을 쓰는 직업의 나는 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해해보기 위한 노력을 했던가.’


쇼호스트 임세영은 물론 티비 속에선 명품을 팔기도 하지만, 그녀의 책 속에선 새로운 물건, 무조건 비싼 물건만을 찬양하지 않는다. 엄마의 오래된 롱치마, 올리브영에서 파는 검정 머리끈, 스페인 여행에서    작은 손거울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어떤 명품의 가치보다도 귀중한 물건이자 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녹아있는 물건의 ‘진짜 가치’에 대해 얘기한다. 패션 잡지를 사 모으고 친구와 방바닥에 엎드려 스크랩하던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패션의 자유를 맘껏 누리기 시작한 대학생 시절,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알바 퀸이자 과외 퀸으로 서울 전역을 누비며 모은 돈으로 생애  명품백을 가졌던 웃지못할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다양한 물건을 접하며 가지게  ‘정말 좋은 물건 알아보는 안목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없는 재미 포인트였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물건과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우리의 현재를 만든 이 물건들과 너무 의미없이 만나고 또 속절없이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찬장 속에서 묵고 있는 할머니가 남겨주신 고리타분해보이던 미제 그릇과 어린 시절엄마가 직접 손뜨개로 짜주신 스웨터가 불현듯 떠오르는 회상의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비록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내가 지인이자 작가로서 준 도움이라곤 글의 구성,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언니와 얽힌 과거의 추억, 에피소드의 아이디어 정도로 미미하나, 내가 좋아하고 선망하던 한사람의 인생에 얽힌 물건 속 이야기들이 종이 위의 활자가 되고 잉크가 찍혀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즐겁고 흥분된다.  샘터 출판사를 통해 3월 24일 출간될 책 제목은 <쇼핑의 세계>, 누군가에겐 아련한 첫 소비의 기억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잊고 싶었던 끔찍한 상품의 추억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나에겐 한글을 익히던 다섯살 그시절의 나와 청춘의 시절을 함께 보낸 언니들과의 추억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 향수의 세계다. 독자에게는 티비 채널을 돌리며 보았던 쇼호스트 임세영의 몰랐던 진면목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샘터 출판사 블로그에서 온라인 연재로 책의 일부를 읽어볼 수 있으니 이곳에서 즐겨보셔도 좋을 듯하다. http://naver.me/5B165M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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