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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리 Mar 24. 2021

“오글오글”, 미안하지만 그건 내 진심이야!

 대학 시절 복수전공 과목에서 만나 친하게 지낸 태국인 친구(K라고 부르겠다) 가 있었다. 타 과, 그것도 예체능 출신의 나와 한국어가 다소 서툴었던 외국인 친구를 다들 조별과제원으로 함께하고 싶지 않아하는 바람에 우리는 처음 이어졌다. 깍두기 끼리라도 모여 조별 활동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교수님의 명령에 우린 울며 겨자먹기로 한 조가 되어 숱한 날을 고군분투했다. 우리를 외면했던 헤이러(Hater)들을 향한 일말의 복수심과 반드시 해내보이겠다는 힙합가수 같은 일념으로(그놈의 증명 의식) 우리는 결국 말빨로 난다 긴다 하는 해당 과의 성골들을 제치고 복수전공&외국인학생 조합으로 A+를 받을 수 있었다. 마이너들의 승리였다! K는 그 후로도 내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 주었고, 복수전공에 교직까지 힘겨운 코스모스 졸업을 하느라 과 동기가 거의 없어 외로웠던 나의 4.5학년 하계 졸업식에도 유일하게 참석해 축하해준 친구였다. 우린 졸업 후에도 간간이 연락을 하며 지냈고 잊을만 하면 만나 커피 타임을 가졌다. 몇 년 뒤, 한국의 1군 IT회사에 다니던 그 친구는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다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여유롭고 소박한 방콕 일반 가정 출신의 타국인은 효율성과 극 자본주의의 도시 서울이 버겁다며 다신 이곳에 눌러 앉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의 앞날을 축복하며 우리는 둘만의 송별회를 가지기로 했다.


친구가 자취했던 홍대에서 마지막 짐정리를 마친  우린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학때의 얘기로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우리만의 아름다웠던 송별회가 끝나고 추억에 흠뻑 젖은  집에 돌아온   친구를 처음 사귀게 됐던 일화와 함께 친구를 보내는 섭섭한 심정에 대해 장문의 글을 작성해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대학시절  찍었던 우리 사진을 예전 휴대폰에서 찾아 올리는 정성까지 보인  친구를 슬쩍 태그했다. 글엔  지인들의 수많은 '좋아요'  찍혔고, 태그로 소환당한 당사자 친구도 글을 보곤 댓글을 남겼다. 한국말이 유창했지만 묘하게 서툰 느낌이던 외국인 친구의  다섯 글자 댓글을 보는 순간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 오글오글!"


누가 우리 K에게 그런 말을 가르쳤어? 댓글을 보는 순간 우리의 우정은 나만의 짝사랑인 것처럼 느껴졌고 얼굴이 화끈해졌다. 넌 이런 내가 창피하니...? 쥐구멍이 있다면 달려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유독 장난기가 많고 작은 어색함도 못 견뎌하는 활발한 친구라 내가 이런 글을 쓴 것이 꽤나 고문이었나 보다. 이미 너무 많은 좋아요를 받아서 이제와 글을 내리기도 그렇고, 타격 없는 쿨한 사람인 척 했지만 난 의외로 소심한 인간이다. ‘뭐가 오글거려, 내가 너와의 만남을 추억하고 싶다잖아! 우리 몇 년간 못 본다고!’ 쑥쓰러웠을 친구의 진심을 알지만 그 때부터 새삼 ‘오글거린다’는 단어가 꼴보기 싫어졌다. 그 단어가 없을 때는 다들 뭐라고 말했길래 대체어 조차 떠오르지 않는 거지. ‘낯 뜨겁다’거나 ‘화끈거린다’,’쑥쓰럽다’ 의 감정이 복합된 상황에서 쓸 법한 말들은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압축되면서 어쩐지 간질거리고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을 의미하게 된 것 같다. 나만의 느낌인지는 몰라도 ‘오글’의 어감 안에는 ‘묘하게 촌스럽고 세련되게 표현되지 않은 그 어떤 감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언제 이 말을 자주 썼었던가를 되짚어 보니, 대체로 정제되지 않은 ‘감정 과잉’의 상태일 때를 뭉뚱그려 사용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예컨대 내 취향 안에서 자이언티나 크러쉬의 읊조리듯 일상의 단어를 툭툭 내뱉는 창법은 세련된 것이고 임창정이나 SG워너비처럼 ‘사랑해서 일분 일초도 못견디겠고 죽은 뒤 하늘에서도 만났으면 좋겠고 나 죽어어억’ 하는 류의 야생에서 건져올린 날 것 같은 과잉 감정은 오그라드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의 ‘오글오글’ 이라는 표현이 더 창피하게 느껴졌나 보다.


30대가 되고 보니 일상에 ‘더하기’보다는 ‘덜어내기’와 ‘질’을 중시하게 된다. 작게는 먹는 것, 입는 것부터 크게는 내가 사는 공간까지 덜어내고 비워내지만 대신 조금 더 품격있고 역사가 있고 스토리가 있는 것들에 매력을 느낀다. 입고 먹고 사용하고 누리는 것에 나만의 기준이 생기고, 변화보단 고급스러움과 안정을 중시하게  됐으며 오래 가지만 개성있고 질리지 않는 것들이 내 생활에 주를 이루게 됐다. 한마디로 ‘오글거리지 않는 삶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미래였다. 지마켓과 지하상가에서 7900원짜리 동대문표 티셔츠를 5장 사입던 20대 초반을 지나 나름의 브랜드 가치가 있는 12만원짜리의 티셔츠 한 장을 입게 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진심은 최대한 꽁꽁 숨겨두고 곳곳에 단서를 숨겨두는 것이 세련된 것이며 글을 쓸 때도 뻔한 진행보다 변주나 반전을 두는 것이 치밀한 것이고 떠오르는 감정은 꼭꼭 씹어 삼켜 나 혼자 소화시키는 것이 사회생활에서 더 영리한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때론 이 오그라드는 날것의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진짜 나만의 감정 아닐까. 내가 그토록 열광했었던 ‘아프냐, 나도 아프냐’ , ‘이 안에 너 있다’ 같은 추억속 대사들은 지금 보면 촌스럽고 오그라들지만 그 때 느꼈던 감성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은 없다. 그동안 ‘오글거림’과는 거리가 먼 담백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으며 외면해왔지만 이젠 인정해야겠다. 어느 시점이 됐든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으며 또다시 돌아간다 해도 감정 과잉이 되어 오그라드는 가사에 눈물을 흘리며 소몰이 노래를 목청 터져라 부르는 사람 중 하나는 분명 나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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