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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성준 Sep 13. 2016

안전에는 과유불급이 있다? 없다?

모터스포츠에서 안전의 의미란..

줄스 비앙키. 젊고 유망하던 프랑스 출신 Formula 1 드라이버. 2014 스즈카 GP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출처:Marussia]


*주의* 사고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줄스 비앙키의 안타까운 사고 이후, open cokpit인 Formula 1 의 드라이버 안전에 대한 이슈가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Formula 레이스 카의 경우, 드라이버의 머리가 외부로 노출이 되어있기 때문에 파편이나 기타 구조물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은 드라이버가 쓰고 있는 헬멧 외에는 다른 보호장비가 없습니다. 측면과 후면에는 어느 정도 구조물이 있어 차가 전복되거나 측면에서 오는 파편이나 큰 충격을 감쇄시켜 줄 수 있지만, 정면에서 드라이버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리고 오는 물체에 대해서는 딱히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12번 포스트에서 녹색기가 발령, 구난차와 마셜이 아직 트렉에 있는 상태. 절대 일어나선 안되는 형태의 사고였다.  [출처:  Philip Dabrowiecki]


 줄스 비앙키의 사고는 트랙에서 벗어난 레이스카가 구난작업 중이던 지게차의 카운터웨이트 부분 밑으로 차가 들어가면서 줄스 비앙키의 머리를 직격 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뇌손상을 입은 줄스 비앙키는 결국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충격 에너지가 얼마나 거대한 지 충격 당시, 저 무거운 구난작업 차량이 공중으로 뛰어오를 지경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VSC라는 버츄얼 세이프티 카라는 제도가 신설되었지만, VSC 가 이 사고를 방지하는데 효과가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디자인인 Ferrari 의 Halo 프로텍션. [출처:Formula1]


 FIA는 바로 이런 사고에서 드라이버를 보호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팀들과 의논했습니다. 페라리와 메르세데스는 '헤일로'라고 불리는 일종의 바 형태의 구조물을 설치하는 의견을 보여주었고, 레드불에서는 캐노피 스타일의 윈드 스크린을 제안하였습니다. 스페인 테스트 때, 페라리에서 처음 Halo를 장착하여 테스트를 진행하였고 당시 참가한 키미 라이코넨은 시야가 크게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러시아 소치에서 레드불의 에어로스크린을 테스트 중인 다니엘 리카르도 [출처:Formula1]


 이후, 레드불에서도 자신들이 제안하는 캐노피를 들고 나와 테스트를 진행하였습니다. 테스트를 진행한 다니엘 리카르도는 시야는 만족스러웠으며 바람을 직접 맞지 않기 때문에 느낌이 다르다고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페라리와 레드불은 시즌 중 FP 시간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제안을 직접 대중에 공개하고 테스트를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레드불의 에어로 스크린 타입은 FIA 의 테스트를 통해 적합하지 않음으로 판정이 됩니다.


 이후 2017년 기술규정에 과연 이 halo 장치가 포함이 될지의 여부가 큰 관심사였으나, 결국 12개월의 기다림 끝에 내려진 결론은 2017년 기술 규정에는 누락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장치를 기술적으로 검토하여 규정을 만들기에 시간이 부족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비록 2017년 규정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2018년이나 빠른 시일 안에 이 장비는 도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25km/hr 로 돌진하는 Formula 1 타이어를 방어 하는 테스트 [출처: INTERNATIONALJOURNAL OF THE FIA:Q1 2016 ISSUE #14 ]


  FIA는 FIA Auto 메거진 14호를 통해 지난 12개월 동안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기고하였습니다. Additional frontal protection (AFP)이라고 명칭 하는 이 보호 장비에서 메르세데스가 제안한 halo 타입이 가장 적합한 모델로 평가되었으며, 규정을 위해서 Formula 1 팀들과 더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벨기에 GP, FP 에서 테스트 중인 메르세데스의 halo


 이 halo에 대해서 팬들이나 드라이버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단 모습이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거부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포스 인디아의 니코 휴켄버그는 이 halo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견을 표시한 드라이버 중 하나입니다. 그의 논리는 모터스포츠는 원래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달리는 스포츠라는 것입니다. 반면 메르세데스의 니코 로스버그는 AFP 의 적극적인 지지자 중 하나입니다. halo 의 경우, 정면 지지대와 상단부의 U 형태의 바가 있는 모습이라 벨기에 Spa와 같은 고저차가 큰 트랙에서는 시야를 심각하게 방해할 것이다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니코 로스버그는 지난 테스트를 통해 halo를 주행 중에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시야는 방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저는 한국 기업에서 기계 엔지니어로 근무했었고, 미국에서도 현재 기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계 쪽 일이 그렇듯이, 늘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주기적으로 고용인을 대상으로 안전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을 2010년 이전에만 하더라도, 당시 한국 10대 그룹 안에 드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안전교육이 잘 행해졌다는 기억이 없습니다. 소방 관련 교육이 아마 1년에 한 번 정도, 그 외의 교육이라고 하기 힘든 수준의 몇 번의 교육이 가끔 있었을 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하게도 생각하지 않았고 귀찮은 것으로 생각했었죠. 


 미국에는 오셔(OSHA)라고 꽤나 강력한 조직이 고용장에 대한 안전을 점검하고 교육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안전에 대한 미팅과 교육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고용장의 안전을 OSHA에서 점검합니다. 비록 부끄러운 일이지만, 거의 매번 지적사항들이 나오고 보통 바로바로 수정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벌금도 있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서는 잘 지켜야 하지만, OSHA에서는 단순히 법률대로 딱딱하게 지적하고 안되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고,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와 관계자가 함께 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기 위해 토론을 한다라는 점이 저에게는 큰 차이점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이라 해서 다들 안전 의식이 높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안전교육 중에 주의가 산만해지는 근무자들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이 있습니다. 그럴 때 OSHA 안전교육 진행자가 한 말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듣고 있는 이 내용은 누군가의 피로 의해서 쓰인 내용입니다.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고, 그다음에 후회하면서 쓴 내용들입니다. 너무 당연한 내용 같지만, 절대 가벼운 내용이 아닙니다.


줄스 사고 이후, 2016년 기술 규정에 드라이버 보호를 위한 규정이 더 강화되었다. [출처:Giorgio Piola]


 2018 년 기술규정에 halo 가 되던, 에어로 스크린이 되던, AFP가 도입된다면, 이는 분명'줄스의 피'로 쓰진 규정임을 반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보는 스포츠는 드라이버의 목숨을 담보로 속도 경쟁을 즐기는 그런 야만적인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Formula 1 은 정말 목숨을 담보로 달려야 하는 그런 스포츠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속도를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달리곤 했었고, 그들의 선수 평균 수명은 3년이 채 되지 못했습니다. 소중한 드라이버들이 다치거나 죽을 때마다 비록 사후약방문 일진 몰라도,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오늘날 Formula 1 카는 과거의 Formula 1과 비교하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한 차가 되었습니다.


2016 벨기에 GP 결승, 케빈 마그누센의 사고 장면. 사고당시 기록된 횡G 는 42G 라고 한다. [출처:CANLI TV]


 올해 벨기에 GP에서 또 한 번 가슴 철렁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르노의 케빈 마그누센의 사고입니다. 결승 도중, 오 루주 코너 탈출에서 차가 코너를 이탈하고 베리어에 충돌하였는데, 사고 당시 데이터로거에 기록된 충격은 42G였다고 하니 얼마나 엄청난 충격인지 상상이 안 가는 수준. 하지만 사고 이후, 케빈은 스스로 차를 탈출하여 스스로 걸어 메디컬과 함께 트랙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열린 몬자에서 메니컬 체크를 통과한 체 레이스에 출전하였죠. 과거였다면 의심할 여지없는 사망사고였겠지만, 지금의 Formula 1 은 그가 가진 속도만큼이나 안전한 레이스카 임이 확실합니다.


줄스의 장례식. 페스토 말도나도와 펠리페 마사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AFR/Getty image]


 드라이버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야만적인 스포츠는 없어져야 합니다. 비 인륜적인 행위이며 기술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터스포츠 정신에 반하는 일이죠. 하지만 안전 확보가 중요한 이유는 이런 인본적인 이유뿐 만은 아닙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무대에서는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의 한계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Formula 1 은 정말 야만스러울 정도로 위험한 스포츠였습니다. 하지만 Formula 1 이 발전하면서 점점 안전 수준이 올라가게 되고 안전 수준이 올라갈수록 레이스카들의 속도 역시 놀라울 정도로 상승했습니다. 


 어느 수준으로 안전이 확보되서도 안전에 대한 규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프런트 노즈의 높이가 극단적으로 낮아지고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못생긴 프런트 노즈라면 조롱을 하였죠. 하지만 이런 프런트 노즈의 디자인은 결국 다듬어져 갔고, 어느덧 v8 Formula 1 시대의 lap time을 갱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레드불과 그란트리스모가 함께 디자인한 가상의 레이스카 Red bull X2014. [출처:redbull]


 AFP로 인하여 드라이버의 안전이 확보가 된다면 지금의 Formula 1 의 속도는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가지게 됩니다. 레드불이 그란투리스모를 통해 제안한 미래의 레이스카 X2014나 X1을 보면 콕핏이 풀 캐노피 형태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멋있기만 한 게 아니고, 기능적으로도 드라이버를 보다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이 적용되면 지금의 Formual 1 보다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안전이 확보되는 것이고, 이것이 곧 레이스 평균속도를 더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의 Formula 1 보다 더 빠르다면 이것은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 짜릿하지 않나요. 우리가 일종의 장해물이라고 생각했던 안전은 사실은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이 아니고 더 높은 발전을 위한 주춧돌이 되는 것입니다. 안전에 대해 만전을 가하는 것만이 실질적으로는 더 빠르고 멋있는 모터스포츠를 약속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안전에 대한 사회의 끝없는 관심은 결국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이는 더 발전할수 있는 발판이 된다.


 안전에 대한 고찰은 비단 모터스포츠만의 것이 아닙니다. 몇 달 전 한국을 잠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성장한 모습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세월호와 같은 일을 보니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픈 그들의 투쟁을 보며 저는 이런 움직임이 진정 사회를 더 발전시키고 단단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우리 아이들이 사회를 믿고 의지하며 안전하다고 느낄 때, 바로 그럴 때에 사람들의 능력과 역량이 꽃을 피워 사회를 더욱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마치 Forumla 1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드라이버들이 자기 자신의 안전이 확실하다는 증거의 밑바탕 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을 더욱 한계에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우리 팬들에게 멋진 경기로 돌아오게 됩니다. 


 줄스 비앙키가 우리 곁을 떠난 뒤, AFP 가 Formula 1 에 채택이 된다면 이는 그의 죽음이 바탕이 된 어떤 안전장치가 될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세월호 사건을 바탕으로 보다 안전한 사회, 믿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그 안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는 아마도 세월호에서 죽은 학생들의 아픈 희생 위에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안전한 사회 속에 있다는 것은 저로 하여금, 이 안전 또한 누군가의 피로 일궈진 매우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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