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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타토리 Feb 15. 2024

나에게 다이소란,
작은 도전을 응원하는 브랜드

브랜드라는 이야기꽃을 찾아 나풀나풀 나는 나브이

제가 중학생이던 2004년은 필기를 열심히 하는 것이 수행평가에 적극 반영되던 시대였습니다. 나름대로 필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듣던 차, 저는 예쁜 노트에 예쁘게 쓰는 것으로 수행평가 만점에 쐐기를 박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쁜 노트란 바로, ‘하드커버’로 된 공책.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흔한 줄 공책만 팔았습니다. ‘이런 걸로는 만족할 수 없어...’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모닝글로리 그리고 알파문구. 제일 먼 교보문고부터 갔는데 문구 판매점에 제가 원하던 하드커버 공책이 딱 있더군요. 하지만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1만 원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필기용 공책으로 1만 원짜리를 산다? 갓 초등학생을 벗어난 아이에겐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모닝글로리, 알파문구에서 찾은 공책도 비슷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와... 이거 예전에는 되게 비쌌는데...’ 가끔 다이소를 들를 때마다 공책 코너를 맴돕니다. 이제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니까, 더 이상 공책이 필요하진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소에 갈 때마다 하드커버 공책과 가죽 표지 다이어리를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아마 그때 ‘그 공책’을 사지 못한 일이 어린 마음에 상처로 남았었나 봅니다.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넣는 학생들과 어린아이들을 보면 왜 부러운 마음이 들까요? ‘나 때는 말이야. 다이소 같은 곳이 없어서 예쁜 공책도 못 샀다, 이 말이야.’     

 

지금 5,000원이 있다면야, 공책 사느니 여유롭게 커피 한 잔 사서 마시죠. 그 말은, 다이소에서 파는 물건쯤이야... 이제 껌이다? 아니요, 지금도 다이소 갈 때마다 큰 맘먹습니다. 어릴 적 ‘하드커버 공책’을 사러 갈 때만큼 비장하진 않죠. 다만, 저에게 다이소는 ‘작은 도전’을 위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만년필 멋있던데, 한 번 써보고 싶다’, ‘스티브 잡스처럼 나도 캘리그래피 배워봐?’, ‘도전! 나도 유튜버다! 삼각대에 스마트폰 설치해서 영상을 찍어보자!’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건 많고, 그만큼 사야 할 것도 많아집니다. 비싸도 좋은 물건 사야 한다죠. 그런데 카드를 꺼낼 때 가장 두려운 게 뭔지 아시나요? 10만 원, 20만 원이 넘는 가격? 뽑기 운 실패? 배송 오류? 전부 아닙니다. 가장 두려운 건, ‘다 샀는데 중간에 그만두는 것입니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며칠 혹은 몇 달 갖고 놀다 결국 서랍이나 창고 구석에 넣는 일... 이런 일을 반복하면 돈은 돈대로 낭비고, 자신감은 자신감대로 떨어집니다. 자신감이 없으니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습니다. 목표가 사라지니 삶이 갑자기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럴 때 어떻게든 우울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대신 다이소로 천천히 산책을 갑니다.           


다이소는 발음처럼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 있죠.’ 어릴 적 사고 싶었던 ‘어른스러운 공책’부터 만년필, 삼각대, 스케치북과 캘리그리피 펜까지 전부 다 있습니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다이소에 가면 백화점 VIP가 어떤 기분인지 이해되기도 해요. ‘에헴, 다이소에선 나도 큰 손이지.’     


다이소는 말합니다. ‘천 원의 가치도 소중하게’ 이 말이 저한테는 이렇게 들립니다. ‘얼마 안 하잖아? 그러니까 한 번 써봐. 안 좋으면 버리면 되고, 괜찮으면 나중에 더 좋은 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하면 되잖아?’ 그렇게 구입한 만년필은 지금 서랍에 있고, 삼각대는 오래전에 망가졌네요. 하지만 다이소에서 산 볼펜 덕분에 저는 예쁜 필기체를 지니게 되었고, 무선 광마우스로 불편함 없이 포토샵을 하고 있습니다. 다이소에서 파는 물건이 누군가에겐 싸구려이고 돈 낭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다이소는 ‘잃어버린 도전 정신’를 되찾는 곳입니다.   

    

어제 유튜브에서 스마트폰으로 책을 사진 찍어서 E-Book으로 만드는 영상을 봤습니다. 마침 제가, 책값이 너무 비싸서 E-Book으로 바꿀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300쪽이 넘는 책을 사진 찍기 위해서는 삼각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2만 원에서 3만 원... 비싸네요. 그래도 한 번 시도해 봐야죠.    

 

다이소, 갔다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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