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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국적 소녀 Feb 15. 2023

계속 해보겠습니다

매순간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럼에도




나는 어렸을 때 학원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통 학원을 다니기 시작할 때 1개월 정도를 끊고는 하는데, 그 이후로 그걸 다음달로 '갱신' 해 본 적이 손에 꼽는다. 대부분 한달 내지는 2-3개월 이내에 그만뒀다.


거듭된 수강 거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술, 피아노, 춤, 영어, 한문, 웅변, 서예, 주산, 수영 등 각종 학원들의 문턱을 드나들었지만 그 중 오래간 것은 없었다. 나는 '지속하는 힘'을 잘 알지 못했다.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가장 쉬웠다. 그리고 조금 해보다가 다시 난관에 부딪히면 다른 걸 다시 시작하면 됐다.


나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마저 자주 등교 거부를 했다. 무언가 역경이나 실패가 있을 때 내게 가장 쉬운 선택지는 '그만 두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내게 '유종의 미'를 수차례 강조하셨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나는 결국 중학교마저 자퇴하고 미국 유학을 갔고, 그 미국 유학마저 '그만두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나는 할 일이 없었다. 10대 청소년이 학교에 가질 않으니 친구도 없고 놀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무한한 자유 속에서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그제서야 나는 이렇게 계속 도망만 가서는 안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 결과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어느정도 구속하는) 소속감을 위해 일단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남들은 철저한 관리를 받으며 학교 커리큘럼을 따라가면서 공부를 하는데, 제도권 밖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입시생활은 고독했고, 외로웠다. 수십차례 포기하고 싶었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여기서 내가 나를 포기하는 순간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의고사 점수 하나에 울고 웃었다. 한 문제 한 문제 맞추고 틀리는거에 연연했다. 자주 일희일비 했다. 대학이라는 것에 맹목적으로 사고했다. 결심을 한 이후부터 "그래서, 대학을 가는게 맞아?" 같은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외로운 시간을 보낸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누군가에겐 흔한 입시 스토리로 들릴 수 있지만, 이건 내 인생에서 내가 '계속 해 본' 일 중 거의 최초의 일이었다.


그 이후 나는 대학을 졸업하는 일도, 직장 생활을 지속하는 일도, 전보다는 덜 버겁게 해낼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버거운 순간이 더 많았지만 '계속 하는 근육'은 전보다는 아주 조금 더 자라나 있었다. 나에게는 거의 없던 근육이었다.


그럼에도 그 이후로 나에게는 각종의 일들을 그만두고 싶은 아주 다양한 순간들이 존재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만두거나, 아니면 조금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순간까지 계속하거나, 아니면 그만두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하는 것을 선택해왔다.


여전히 나의 계속하는 힘은 미약하다. 매순간 무언가를 '리셋'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런 리셋 충동과 그럼에도 계속하는 힘과의 줄다리기 속에서 내 인생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며 흘러왔다. 그만 두겠다는 내면의 나를 부여잡고 한 발짝씩 떼어가며 갈 수 있는 만큼만 가자고 타일렀다.


그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시간을 인생 안에 쌓아가면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1. 계속하는 힘은 중요하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사업을 5000억에 엑싯 한 래디쉬 창업가 이승윤 대표의 인터뷰를 보았다. "Every startup is an overnight success. But it happens on 500th night." 즉 밖에서 볼 땐, 한 스타트업의 성공이 벼락성공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성공이 500일째에 나온다는 거다. 그리고 이승윤 대표는 사업의 엑싯까지 2200일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링크: EO채널 - '이것은 실패와 용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TjVP4cICwGE)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원지의 하루'를 봐도 그렇다. 7년 전부터 유튜브를 시작해서 3년 6개월만에 첫 수익이 났으며, 2020년까지는 구독자가 6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3년사이에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 50만 구독자가 됐다. 전형적인 J곡선의 성장을 그린 것이다.


계속해보는 힘 없이는 인류 또한 존재할 수도 발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업적이나 성과는 계속하는 힘이 쌓이고 쌓여 발현된 것이라고, 이제는 알 수 있다.




2. 무엇을 계속해야 할지는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성찰 없는 지속은 도태 혹은 파멸을 낳을 뿐이다. 자신의 내적 동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왜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인만의 철학과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개개인의 성격, 성장배경,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외적동기가 아닌 내적동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최근 읽은 존스홉킨스 대학에 재직 중인 지나영 교수의 <본질육아>를 보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그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외적동기인 '돈'을 주면 된다.


어느 날 어떤 노인이 집 앞에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워 어떻게 하면 그곳에서 못 놀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 노인은 아이들이 공터에서 놀 때마다 1달러씩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미안한데 앞으로는 공터에서 놀아도 돈을 못주겠다"라고 하자, 아이들은 더 이상 공터에 와서 놀지 않았다고 한다.


즉, 외적동기에 의해 하는 일은 그것이 사라지면 더 이상 지속할 힘을 잃는다. 반대로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내적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일은 비교적 오래간다. 계속할 수가 있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것을 무작정 계속하려고 노력하기 보단, 계속할 수 있는 내적동기를 발견하고 그걸 실행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대표적인 내적 동기에는 '사랑'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인간관계에 끊임없이 상처받고, 연인과 헤어지고 상처받으면서도 계속 관계를 맺어가고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강한 '내적동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글을 계속 쓰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고통이다. 따라서 인간은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생을 사랑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계속 해보겠습니다"를 외친다. 비록 아직도 내 근육은 약해서, 자주 포기하고, 자주 리셋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계속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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