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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국적 소녀 Sep 22. 2023

언제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너무 사랑하기에 상처받는 가족이라는 관계



아빠는 평생 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불쑥 불쑥 아빠를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20대를 보냈다.


아마 그것은 내가 지독한 이상주의자이고, 아빠는 뼛속까지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이리라.



내가 처음 중학교를 들어갔을 때 나는 방송반에 들어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혼자 독학으로 툴을 배워서 사진 편집과 동영상 편집을 하는게 취미였고,

그래서인지 나는 막연하게 나중에 영상이나 사진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건 날라리들이나 들어가는거야'라면서 나의 바람을 일축해버렸다.

내가 왜 방송반에 들어가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15년 이상 지난 지금 아빠는 그 말을 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나는 그후로도 계속 PD가 되고 싶었다. 

대학 입시를 할 때가 되자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아빠는 신문방송학과는 네 점수로는 어렵다며 끝끝내 국어교육과를 추천했다.

한번은 진지하게 나는 교사가 아닌 PD가 되고 싶다고 강조하면서, 차라리 국어국문학과를 가겠다고 했는데,

아빠는 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국어교육과를 가는게 '안전'하다면서, 나에게 말하지 않고 나 대신 대학교 입시 원서를 넣어버렸다. 

이것이 내가 느낀 두번째 좌절이었다.



대학교에 가서도 아빠는 계속해서 나의 진로 컨설팅을 멈추지 않으셨다.

PD가 될거라고 할 때마다 PD는 경쟁률이 높아서 어렵다면서 도전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몇 년이나 공부하고 고시낭인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면서 불안을 주었고,

로스쿨 또는 대기업에 가는게 좋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당시의 나는 그때까지도 아직 아빠의 의견을 무시할만큼 스스로의 불안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취준 끝에 S사 계열사에 입사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나는 1년만에 대기업 조직생활이 내게 맞지 않단 걸 느꼈다.


다시 한번 나는 아빠에게 퇴사를 하고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조용히 진로에 대한 생각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름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고 차라리 워킹홀리데이 등을 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나름 계획을 말했다.


하지만 아빠는 여자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냐면서 끝끝내 반대했고,

나는 그 설전 이후 눈물 콧물을 짜내며 다시 회사로 향했다. 

그렇게 5년을 더 일했고, 머리를 써서 여행 대신 아빠가 그나마 허락해줄 것 같은 해외 유학을 떠나왔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아니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쳐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내 인생에서 정말 많은 영향을 주어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아빠에겐 '위험하고 무모한 것'이었고,

나는 끝끝내 아빠의 뜻을 꺾지 못하고 타협하거나 순응했다.


나에게는 갈 곳 없는, 실현되지 못한 '욕망'이 남아 내 안을 가득 채웠고

그것은 내 안에서 조금씩 나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그 결과는 '원망'이었다.



어느날 문득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보면 언제나 그 끝에 '아빠'가 있었다.

그때 아빠가 날 막지 않았더라면, 그때 아빠가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또는 내가 차라리 아빠의 뜻을 꺾을만큼 강했더라면, 하고 원망과 후회만이 계속됐다.


어느날은 그렇게 원망을 하는 내가 마치 불효를 하는 것 같아서, 아빠를 용서하려고 어떻게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나아지는 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온힘을 다해 아빠와 멀어지는 것.

물리적으로 멀어지니 아빠의 영향력이 줄었고, 내 영혼도 조금씩 돌아오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끔씩 아빠가 나에 대해 한 얘기를 엄마한테 전해들을 때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대표적인 말이 '아빠가 그러는데 너는 이상과 현실의 갭이 너무 크다고 하더라'라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가 다시금 나를 20살의 자존감 바닥이었던 나로 되돌려 놓았다.

다시 나에게 힘을 주고 자기신뢰 모드로 돌아오는덴 시간이 걸렸다.


언제 나는 스스로를 온전히 신뢰하고 

그 누가 - 그사람이 가장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 나의 선택을 의심할지라도

스스로를 믿고 선택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직은 내게 물음표로 남아있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언젠간 사랑과 용서 감사로만 가득찰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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