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례는 언제일까
지난주 여느 때처럼 링크드인 (LinkedIn) 을 보는데 회사 동기 중 한명이 "Open to work" (구직 의사 있음) 포스팅을 올렸다. 자신이 이번 해고(Layoff) 대상자가 되었으며 자신의 직무 관련 일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때아닌 해고 소식에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 정해진 시기 없이 그냥 하는 거구나.
다음날 출근을 하고, 마침 옆자리 동료와의 1:1 미팅이 잡혀있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해당 해고 소식 관련해서 이 포스팅을 보았냐고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다. 그 친구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기도 봤다면서 이 상황이 너무 스트레스 (Seriously, it's SO STRESSFUL)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도 잘린거 같다며 알려 주었는데 그 친구도 이름을 검색하니까 아직 뜨긴 뜨는데 조직도를 클릭하면 거기에선 사라져있었다. 내 포스팅에 계속 등장하는 이 '옆자리 동료'는 참 이런 거에 빠삭하다.
올해만 4명째다.
작년에 9명이서 시작한 우리 기수는 딱 1년 만에 5명으로 줄었다.
올해도 새로운 기수를 뽑지 않았고 내년도 뽑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얼마나 Hiring Freeze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매출과 이익이 줄고 있는 이때 더 뽑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기에 Hiring을 재개 하지 않는 건 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3월-4월에 한차례 해고가 있었고 이번달에 또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모양이었다. 이번주 월요일 CEO 레터에는 관련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다.
"In our recent Town Hall, I discussed the measures we've implemented to right-size our production and staffing levels throughout the enterprise to match our customer demand while maintaining our long-term strategic objectives." (최근 정기회의에서 저는 회사의 장기 전략 목표를 유지하는 동시에 줄어든 소비자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우리 생산팀과 스태핑을 적정하게 조절하는 수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즉, 소비자들이 물건을 안 사서 사람 잘랐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내 차례는 언제일까' 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 수 밖에 없다. '내년 2월에 고과평가가 있으니까 3월에 또 한차례 인력 조정을 하겠구나' 하고 예상하게 된다. 물론 그 전에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으면서 계속 집중력이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꾸역꾸역 앉아서 데이터 분석하고 장표를 만들어야 한다. 뭐 하나라도 더 해야 덜 불안하니까.
사람이 극도로 불안해지면 어느정도 자신의 스트레스 레벨을 조절하기 위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플랜 B부터 Z까지 세우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실제로 매번 여러 플랜들을 점검하고 시뮬레이션하고 다양한 세부 전략과 일정을 짜는 일이 어느새 루틴이 되어버렸다.
근데 그러다보면 '그래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하면서 해탈하는 순간도 온다.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그랬지 않나.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게 없어서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그렇게 다시 조금은 이완된 마음으로 눈 앞에 할 일을 해 나간다.
그래도 최근에 좋은 소식이 하나 있었다. 올해 4월에 잘린 내 최애 동기 (나랑 밥도 자주 먹고 매일 채팅도 해서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를 해주던 인도인 친구) 가 3개월만에 새로 직장을 구했다. 그것도 우리 회사보다 훨씬 유명하고 글로벌한 테크펌으로 연봉도 엄청 잘 받고 갔다. 몇 주 전엔 그 친구의 송별회 겸 저녁 식사를 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내 친구야, 널 보며 내가 많은 위안을 얻었다는 걸 넌 알고 있니.
인생이 어떻게 될 지 몰라서 불안하지만 또 그래서 멋진 것 아닐까? 금융위기가 휩쓸었던 2008년 해고된 인력을 적극 채용해서 우버와 에어비앤비 같은 엄청난 유니콘, 데카콘들이 탄생했듯. 비 온 뒤엔 땅이 굳고, 진흙 속에서 연꽃 피는 거겠지. 삶이 언제는 평탄하기만 한 적이 있었나. 굳이 과하게 자기연민 갖지도 말고 굳이 과하게 오들오들 떨지도 말고, 조금은 의연하게 남은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