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루기록 앱 ‘하루콩’ 블루시그넘 윤정현 대표
‘Z세대’로 불리는 요즘 10~20대는 흔히 ‘개인주의’란 말로 치환된다. 자신의 욕구와 영역을 지키는 게 중요하고, 외부의 부당한 개입은 용납하지 않는다. ‘킹받는다’라며 불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어쩔티비’라고 상대방의 참견을 천진하게 맞받아치는, 미디어가 소비하는 Z세대의 모습들은 궁극적으로 ‘개인화’의 단면인지도 모른다.
지극히 내밀한 개인의 기분을 관통하면서도 Z세대에게 사랑받는 모바일 앱 ‘하루콩’의 궤적은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그날그날의 기분을 기록하는 일기 앱 하루콩은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10~20대 유저들에게 합격점을 받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Z세대의 기분을 어루만지는 중이다. 지난달 28일 블루시그넘 윤정현 대표를 만나 하루콩과 일상 속 기분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콩은 부담감이나 의무감을 주지 않으면서 유저가 스스로 꾸준히 일기를 쓰도록 유도한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심플한 UI를 통해서다. 하루콩의 일기에 정해진 분량은 없고, 채워 넣어야 할 항목은 최소화되어 있다. 이런 '쿨함'을 발판삼아 1년이 채 안 되어 누적 다운로드 수 120만 건을 넘겼고, 지금은 한 달에 25만여 명, 하루 5만명 이상이 앱을 사용하고 있다. 프리미엄 상품을 이용하는 유료 구독자만 해도 1만5000명에 달한다. 스스로도 Z세대인 윤 대표가 또래 유저들의 마음을 톡톡히 사로잡은 셈이다.
“제 주변 친구들만 봐도 우울증 등 기분장애를 겪으면서도 병원이나 상담 센터를 찾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적 장벽이 있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실제 우울증 환자도 자신이 정신질환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에요. 하루콩은 이런 분들을 위해 일상 속에서 스스로 자기 기분을 알아챌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예요. 기분을 5단계로 나눠 그날그날에 대해 기록하고, 날씨와 대인관계, 식사, 직장생활, 취미 등 활동을 체크하는 것만으로요.”
얼핏 보면 숙제(?)가 많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최소한으로 기록해야 하는 건 하루에 대한 일종의 ‘별점’ 뿐. 활짝 웃는 표정에서 슬픈 표정까지, 완두콩 모양의 다섯 얼굴 중 하나를 선택하기만 해도 그날의 일기 작성이 마무리된다. 추가 기록이 가능한 세부 항목들 역시 간단한 아이콘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더하고 뺄 수 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짧은 글로 기록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하루콩의 일기는 ‘객관식’이고, 그래서 정량화된 분석을 받아보기에 용이하다. 유저는 캘린더에 기록된 매일의 컨디션을 기반으로 월, 연 단위의 기분 추이와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평소 어떤 감정을 많이 느꼈는지, 무슨 활동을 자주 하는지 순위를 매기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곧 외부적 요소들이 각각 자신의 기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려주는 빅데이터가 된다.
“하루콩에서는 현재 활동 별 기분 점수, 기분-활동 간 관계 분석 서비스를 제공해요. 어떤 유저가 운동할 때 기분 좋은 날이 많았다면, 그 사람은 꾸준한 운동으로 우울증을 개선할 수 있는 거죠. 앞으로는 유저 데이터를 다각화해 우울·불안 이상 징후를 포착하거나, 심리 상태에 따라 개인화된 심리 콘텐츠를 제시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할 예정이에요.”
하루콩에 기록된 데이터는 유저 개개인에 있어서도 우울증 극복의 주요 동기다. 달력에 하루하루 ‘콩’을 붙이다 보면 ‘슬픈 콩’보다 ‘웃는 콩’이 많아지는 게 일종의 목표가 된다. 유저 입장에서는 우울증을 치료하려 하루콩을 사용한다기보다, 하루콩을 쓰다 보니 우울한 날이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우울증을 극복했다”거나 “게임처럼 재미있게 쓰고 있다”는 등의 유저 반응은 인지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하루콩의 인지치료 기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윤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건 AI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의 정서적 부분을 채워주고 싶다는 목표에서였다. 1인 가구를 위한 펭귄 반려로봇 개발 프로젝트 팀으로 시작해 하루콩 애플리케이션을 서비스 중인 지금, 그리고 앞으로 뻗어나갈 여러 프로젝트들까지. 이 철칙은 블루시그넘이 변함없이 추구하는 가치다.
“저희는 이번에 모바일용 인터랙티브 게임 ‘당신의 상담소’를 론칭하기도 했어요. 플레이어가 심리상담사가 되어 내담자들을 치료하는 형식의 게임이죠. 객관적 시선으로 타인의 심리 상태를 바라보게 되면 스스로의 문제도 쉽게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거든요. 게임을 즐기면서 셀프 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거죠.”
블루시그넘은 올해 말 목표로 감성형 AI 보이스봇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구글의 기술 지원을 받아 개발 중인 이 제품은 심리치료에 특화된 일종의 AI 스피커다. 기분과 생활 패턴에 따라 사람들의 유형을 분류하고, 세분화된 유형에 따라 개인별로 적합한 조언과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하루콩’에 하루하루의 기분을 기록하듯, 침대 머리맡에 놓인 보이스봇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AI 스피커는 많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제품은 없어요. 음악이나 영상을 추천해 주는 AI 서비스들도 각자의 알고리즘대로 콘텐츠를 제공할 뿐이지, 정작 인풋(사용자가 어떤 사람인지)을 유의미하게 여기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저희는 기분과 감정에 대한 말에 반응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사용자가 ‘나 오늘 기분이 안 좋아’라고 말하면, AI가 ‘운동을 해 보는 건 어때?’라고 말할 수 있고, 나아가 개인 데이터에 기반한 추천 운동 종목과 운동량을 제시할 수도 있는 거죠.”
나날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가는 요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독립적이고, 그만큼 고독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밝고 쾌활한 누군가라도, 집에서는 혼자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을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기거나, 다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윤정현 대표와 블루시그넘이 그리는 청사진이 2022년 현재 유독 선명해 보이는 건 그래서다. 모두 괜찮은 척 하지만 실제로는 곪아 썩어가고 있을지 모르는 ‘코로나 블루’ 3년 차, 그리고 이른바 4차 산업 시대. 어떤 이가 어떤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건 주제넘는 일일지 모른다. 개인화된 심리치료가 가능하다면, 그건 아마 지금의 ‘하루콩’과 닮아 있지 않을까.
“누구나 조금이라도 지치거나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사람들이 우울해 보이는 주변 사람에게 병원이나 상담을 권하기는 조심스러워도, 저희 제품이나 서비스는 마음 편하게 추천할 수는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유능한 의사나 상담사보다, 먼저 편한 친구가 되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