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정지출 통합 관리 서비스 ‘왓섭’ 김준태 대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온라인 구독 상품, 자동 정기 결제가 일상화된 요즘의 소비 현실이 그렇다. 통장 거래내역에는 적게는 대여섯 가지, 많게는 십수 가지 지출처가 다달이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들 지출은 인지하지 못한 사이 관성적으로 지속된다. 음악·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식품·생필품 구독 상품이 그렇고, 보험료나 통신요금도 다르지 않다.
“돈 관리는 곧 소비를 관리하는 것이다.” 고정지출 통합 관리 모바일 앱 ‘왓섭’ 김준태 대표(37)의 말이다. 왓섭은 개개인의 소비 내역을 자동으로 수집, 분석해 제공함으로써 유저가 자신의 소비 행태를 통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돕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눈에 띄지 않는 소액 정기결제 건도 빼놓지 않고 감시(?)하며 ‘눈먼 돈’이 새지 않도록 막아주는 셈이다. 유저는 불필요한 지출을 손쉽게 중단하고,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지출처를 소개받을 수도 있다.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공간 프론트원에서 만난 김 대표는 핀테크 기반 소비 관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중이다.
어떤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뭐가 필요한지 알아보는 법은 간단하다. 그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보면 된다. 많은 핀테크 업체들이 고객의 소비 행태를 기반으로 ‘마이데이터’란 이름의 개인화 금융 서비스를 앞다투어 내놓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소비자의 소비 내역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에 핀테크 기업들이 많지만 소비 데이터를 제공하는 건 대부분 걸음마 수준이에요. 기껏해야 카드 명세서나 결제 내역을 그대로 긁어오는 정도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지출처가 명확하게 규정되기 어렵고, 구매한 상품·서비스를 세부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요.”
왓섭이 지난 2020년 2월 회사 설립 이후 주력한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은행 계좌와 카드 정보만 연동하면 결제·지출처 정보가 직관적으로 리스트업 된다. 정기 구독 상품은 물론이고 대중교통비와 보험료, 인터넷 요금, 저축 등 고정적 지출이라면 결제수단을 불문하고 모두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셈이다.
“개인 소비 내역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AI 솔루션은 왓섭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저희가 자동으로 찾아낼 수 있는 정기결제 상품은 2021년 12월 기준 총 1472개이고, 이를 토대로 소비자 성향을 총 3600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어요. 소비자에게 단순히 온라인 가계부를 써 주는 정도가 아니에요. 소비 통찰을 갖고 소비 결정권을 행사하며 능동적 소비 주체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이용자는 자신에게 적합한 소비 대상을 인지하고, 거기에 돈을 쓸지 말지 빠르고 쉽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소비를 통찰할 수 있다는 건, 곧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왓섭의 궁극적 목표는 이용자에게 소비 통찰을 제공하는 걸 넘어 소비 자체를 위임받는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트렌드에도 민감한 친구가 있다면 기꺼이 믿고 쇼핑을 맡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산관리사가 고객의 금융자산을 운용한다면, 왓섭은 개개인의 ‘고정비용’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소비관리사’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이 토마토를 샀다고 쳐요.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건강 상 이유로 식단 관리 중인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가 며칠 후에 다른 제철과일을 구매했다면 전자, 닭가슴살을 샀다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전자에게는 과일 구독 상품을 추천하고, 후자에게는 식단관리 도시락이나 운동 용품을 추천할 수 있는 거죠.”
개인의 소비 내역이 라이프스타일로 규정되기까지는 병렬적 분석도 효과적이다. 특정 품목에 대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느냐는 단편적 데이터일 뿐이다. 품목과 업종의 경계를 지우고 총체적으로 소비를 바라보면, 드러나지 않던 소비 이면의 욕구와 의도,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매일같이 커피를 사 마시는 20대 여성 소비자가 있어요. 그럼 이 사람은 커피를 엄청 좋아하고, 커피 구독 상품을 추천하면 관심을 가질까요? 그렇지 않았어요. 결제 내역에 어학원이 있었는데, 커피를 사는 카페 위치가 바로 어학원 옆이었거든요. 커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학원에서 배운 걸 복습하기 위해서 카페에 자주 간 거죠. 이 여성에게 필요한 건 커피이기에 앞서 공부하기 좋은 환경인 거예요.”
구독 시장의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걸 넘어, 이제 매번 상품을 고르고 결제를 하는 온라인 소비 방식도 구식이 됐다. 기술적으로 뭐든 ‘구독 상품’이 될 수 있는 지금, 오히려 중요한 건 상품군에 따른 구독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왓섭 이용자들만 봐도 구독 서비스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요. 예전에는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 ‘쿠팡 로켓와우’처럼 할인 혜택이 동반되는 멤버십 구독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퍼블리나 아웃스탠딩처럼 문서화된 콘텐츠 구독도 꾸준히 이뤄지는 편이에요. 구독 상품이라고 하면 디지털 콘텐츠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생필품이나 편의 서비스도 구독 상품으로 인기가 높아요. 샐러드나 건강기능식품, 생수를 정기적으로 배송받기도 하고, 빨래나 청소, 쓰레기 처리까지 맡길 수 있죠.”
왓섭이 다양한 구독 상품과 제휴사들을 발굴하는 것도 구독 시장의 잠재 가능성 때문이다. 도매로 납품되는 공장 생산품, 구독 모델로의 전환이 용이한 일반 상품까지 많은 제휴사들의 제품들이 구독 상품으로 이용자들과 만나고 있다. 이를 통해 왓섭이 추구하는 건 ‘어떤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에 대한, 좀 더 선명하고 구체적인 답이다.
“실제 왓섭에서 구독 상품을 론칭한 제휴사들의 성과가 고무적이에요. 같은 상품이라도 오픈마켓이나 자체 쇼핑몰 사이트에서 결제 전환율이 기껏해야 2%~3% 대였다면, 왓섭에서는 최고 9%가 넘죠.”
왓섭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본격적으로 광고·마케팅을 진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앱 출시 8개월 만에 MAU(월 활성사용자) 3만 명, 1년여 만에 회원 수 10만 명을 넘겼다. 회사에 따르면 이용자 중 약 89.2%는 입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온 이른바 ‘진성 고객’이다. 소비 통찰에 대한 ‘필요’가 ‘수요’로 입증된 셈이다.
“금융(金融)의 사전적 의미는 금전을 융통하는 행위예요. 그렇게 보면 금융의 기본은 소비고, 좋은 소비는 한정된 돈을 최대한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쓰는 거죠. 한 달 간의 소비는 여러 번의 결제가 모인 거고, 개별 결제는 여러 가지 맥락에서 이루어져요. 저희는 하나의 결제 정보를 세분화할 수 있는 만큼 세분화하며 이 맥락을 찾아가고 있어요. 좋은 금융 서비스라면 소비자가 소비하는 맥락을 이해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