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tion - 누구로부터? 얼마나? 무엇을 위해서?
안녕하세요, 신세계에서 신사업으로써 대안(대체)식품 미국 사업을 맡아 추진하고 있는 김용우입니다. 투자 유치 업무에 관한 내용을 이어갑니다.
오늘은, 투자 유치의 준비를 다룹니다. 대부분의 회사, 특히 스타트업에서 인지하지 못하시는 단계인 Originati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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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유치는 까다로운 일입니다. 제가 글은 이렇게 쓰고 있지만 당연히 저에게도 그렇습니다. 매우 까다로운 이 일을 대하기 위해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혹자는 말합니다. 투자 유치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수없이 많은 거절의 아픔을 딛고, 후회의 강을 건너고, 한 때 전우였던 동료를 떠나보내며 그 시체를 넘고 넘어 비로소 고지에 이르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삶에서, 특히 창업자 또는 창업 팀의 삶에서 시간과 에너지의 분배는 곧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직접적 요인이 됩니다. 투자 유치를 위해 모든 우선순위를 해당 업무로 채워 넣는다면 과연 우리 사업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공들여 준비한 제품의 업그레이드는? 격변하는 마켓 타이밍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경쟁사와 최신 버전의 제품은?
그래서 투자 유치를 준비하면서, 조금이라도 그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화하기 위해서 Origination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Origination 이란, Targeting 으로 부르시기도 하는 개념인데 1) 누구로부터 2) 얼마의 규모로, 3) 무엇을 위해서 투자를 받는 것인지 의사결정하고 명확하게 구체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말씀 드린 Origination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해 하나씩 살펴봅니다.
투자 유치 뿐 아니라 사업의 전 영역에서, 어떤 순간에 전력질주를 하다보면 시야는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위 Crunch의 시동 전에는 반드시 목표 지점과 중간 영점조정을 위한 마일스톤이 명확해야 합니다.
투자 유치를 추진하기로 했을 때, 누구를 찾아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사치라고 여기실 지 모르겠습니다. 얼른 피치덱 만들어서 아는 VC 전부 보여줘야지, 도대체 저런 한가한 소리 하고 있을 때인가? 싶으시더라도, 아래 그림 한 번 같이 보시죠.
모든 자본은 각기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달하고자 하는 자본은 어떤 배경과 사연을 가졌을까요? 이하 "자본의 성격"으로 칭해보겠습니다.
자본의 성격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면 LP(심사역 또는 매니저가 담당하는 자본의 주인), 요구 수익률, 목표 회수 기간, 펀드의 성격, 선호하는 업종 등입니다.
투자를 검토하는 주체들, 즉 심사역 또는 매니저란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결정에 따라 투하되는 자본의 성격을 그 틀로 하여 밀려들어오는 투자 안건을 재단하기 마련입니다. 본질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이 높은 목표이고 가치입니다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은 본인이 담당하는 자본이 크게 잘못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은 자본의 성격을 매우 거칠게 요약하여 평면화한 수준입니다만,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하우스/펀드가 위 그림에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하우스/펀드인가? 우리가 그리고 있는 투자 유치의 그림에 맞는 하우스이고 펀드인가? 하는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사역은 잘 준비된 투자 안건을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럴 듯 하다, 했으면 좋겠다. 할 수 있을까?' 심사역이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기 위해서 1) 우리 하우스가 지금 선호하는 업종에 해당하는지, 2) 우리 하우스가 커버하는 성장 단계에 있는 회사인지, 3) 담당 펀드의 기대수익률이 본 건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마지막으로 4) 담당하고 있는 펀드에 드라이파우더(펀드 결성액 중 아직 투자가 진행되지 않은 금액)이 있는지를 생각해 본 뒤에 진행해볼 지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비극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만약 심사역이 '했으면 좋겠지만 이번에는 어렵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할 때 어떤 경우에는 바로 drop 의사결정에 대해 안내하고 추후 어떤 부분이 해소되면 재검토가 가능한지 안내하게 되겠습니다만 어떤 경우에는 다른 목적에 의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검토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회사는 매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만약 회사에서 투자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놓는다면 이러한 에너지의 누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투자 유치를 위한 발걸음은 매우 급박하고 초조합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어디로 향하는 걸음인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VC 인맥에게 - 우리 회사에 투자 해주세요 - 하는 부탁보다 - 저희 업종이/제품이/기술이 A 하우스에서 선호하는 영역일까요? B 하우스가 / C 펀드가 저희랑 fit이 괜찮을까요? 드라이파우더가 넉넉한 상태일까요? - 같은 내용을 확인하는 용도로 활용하세요!
엄밀히는 누구로부터 받는지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이 역시 누구로부터 받을 지에 대한 고민에 또 다른 단초가 되기 때문에 별도로 분리합니다. 숨만 쉬어도 자금이 유출되는 법인이 생겨났으니 투자를 받아야 합니다. 얼마나 받으면 좋을까요?
이 문제는 사실 투자 유치를 받자는 의사결정 이전에 답이 나와 있어야 합니다. 투자 유치를 받자 > 얼마를 받을까? 의 순서가 아니라, 자금이 X만큼 필요하다 > 투자 유치를 받자 순의 고민이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업의 탄생으로 되돌아가 짚어보겠습니다.
창업 팀이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장을 조사합니다. (1) 시장에 대한 판을 정리하고, 우리 제품이 시장 내 어디에 위치할지 판단합니다. (TAM - SAM - SOM의 식별) (2) 경쟁 현황을 분석하고 자사 제품 또는 기술의 차별성을 확립한 뒤 달성하고자 하는 시장 점유율을 파악합니다. (3) 인력과 자산을 확보하고 제품을 런칭합니다. (4) 시장 검증을 마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Seed 투자를 유치, 정식 버전의 제품을 제작합니다. 정식 제품 발표 이후 J-curve가 연상되는 단계에 돌입하는 것으로 생각되면 Pre-series 투자를 유치, 우리가 공들여 만든 성장 로켓에 연료를 주입하고 폭발적인 상승곡선에 올라탑니다.
(4)번 이후에 Seed 투자를 유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럼 (4)번 시점에서 투자를 얼마나 받을 지 결정하면 될까요? 아시겠지만 아닙니다. (3)번, (2)번도 아니고 (1)번입니다. (1)번 이전에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풀고자 하는 시장의 문제와 풀어내고자 하는 방법론, 이를 구현한 제품에 대한 컨셉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업 아이디어 도출 단계에서 이미 MVP를 만들 때 필요한 인력/자금 등 resource와 이를 통해 달성할 수 있어 보이는 기대 효과 (예를 들어 확보할 수 있는 사용자 수), 그리고 투자 유치가 필요한 시점 (Run-way) 까지의 기간이 도출되어야 사업 준비가 잘 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우리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어떤 시점까지 얼마의 자금이 필요한지 추정했다면, 투자 유치 규모를 정하기 위한 정보의 한 면을 채웠습니다. 다른 한 면은 우리 사업의 가치를 추정해보는 것입니다.
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회사의 일부, 즉 지분을 판매해서 사업 자금을 조달하는 것입니다. (기업재무에서는 자기자본 조달이라고 부릅니다.)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정했는데, 그 만큼 조달하기 위해 지분을 40% 넘겨야 한다면 진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다고 해도 투자자가 마찬가지로 못합니다.) 그래서 역시 (1)번 단계에서, 늦어도 (2)번 단계에서 우리 사업이 어느 정도 가치로 평가될 것인지 고민해본 뒤 그 가치를 결정하는 데 어떤 부분이 핵심적인 driver로 작동하는지 (다시 예를 들면 활성 사용자 수, Transaction 수, 매출액 등) 파악합니다. 이 정보를 기반으로 우리가 투자 유치를 진행할 때 사업의 가치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실적을 관리해서 투자금 규모와 그에 상응하는 지분의 양을 맞닿도록 해나가는 것이 투자 유치 업무의 핵심입니다.
요약하면, 누구에게 투자를 받을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어느 시점에 각 투자 라운드를 진행할 것인지, 해당 시점까지 우리의 사업 추진에 얼마나 자금이 필요한지, 해당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 얼마의 지분을 해당 라운드에 할당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그 시점에 달성되어야 하는 기업가치는 얼마인지, 기업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관리해야 하는 목표는 무엇이고 얼마인지를 파악해 두는 것이 Origination의 핵심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나 빠진 내용이 있습니다. 사실 투자사를 찾는 과정에서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짚어볼 내용이 있어 분리하였습니다. 투자 유치의 목적입니다.
창업 팀이 각 창업자의 열정페이로 사업의 초석을 닦는 과정을 거쳐 법인화가 진행되면 모든 것에 자금이 필요합니다.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고, 기장도 해야하고, 제품도 만들어야 하고, 자문도 받아야 하겠죠. 위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만 법인은 존재 자체가 비용이기 때문에 정말 숨만 쉬어도 자금이 유출됩니다. 마치 모래시계처럼..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궁금증은 내가 본 투자를 집행하면 예상 수익률이 얼마나 될까에 대한 것일 테고, 이 궁금증은 몇 가지 핵심 질문으로 쪼개져 파악되는데 그 중 정말 큰 부분이 '내가 집행하는 투자금이 어디에 쓰일까' 입니다. 투자자가 이러한 질문을 했을 때,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우리 사업 준비가 잘 짜여져 있다면 아래와 같은 설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해당 투자 자금은 인건비로 얼마, 제품 제작 또는 생산에 얼마, 마케팅에 얼마가 할당되어 쓰일 예정이며 이를 기반한 사업 성과는 매출액 약 10억원 수준입니다. 본 건 투자 라운드로 확보할 런웨이 기간은 (예를 들어) 18개월, 12개월 시점에 추가 투자 라운드 계획 중이며 (역시 예를 들어) 최근 시장에서 통용되는 매출액배수 3배 적용 시 해당 시점 기업가치 30억원 전망으로 본 건 라운드 대비 X배 수준입니다.
만약에 심사역이 위와 같은 질의를 하지 않았다면, 투자를 정말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 보시기 권합니다.
정리합니다. Origination 이란 누구로부터 얼마나, 무엇을 위해서 투자 받을 것인지 명확히 판단하는 투자 유치의 사전 준비입니다. 때때로 눈에 보이는 실행과 성과보다 저평가되는 준비입니다만, 먼 길을 떠나기 전 목적지를 명확히 하고 필요한 도구를 면밀히 챙기는 일에 그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소위 피치덱, Pitching material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