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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숩숲 Feb 05. 2023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는 이유

내 마음 편하자고 쓰는 편지들

(출처: 넷플릭스)

"대한민국에서 유서, 편지 이런 건 제가 제일 잘 쓰거든요"

멋지다 김은숙. 대한민국에서 본인이 편지를 제일 잘 쓴다는 말을 꺼낼 수 있다니. 회당 최소 3천만 원짜리 원고를 쓰는 스타 작가는 편지 부심이 있었구나. 꼭 김은숙 작가뿐만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영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듣는 편지를 접하게 된다. 작가가 극 중 편지라는 소재를 자주 쓰게 되는 건 아마도 편지에 담긴 내용들이 대사와는 다른 내용과 느낌으로 상황을 전달하기 때문일 거다. 주인공의 내면을 가장 세련되게, 은유적으로, 혹은 날것 그 자체로 표현할 수 있어서인지, 편지는 독백을 닮았다.


'글을 쓰는 나'와 '말하는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특별한 루틴이나 직업을 가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대부분 '말하는 나'로 살아가고, 그 모습을 제일 나와 같다 생각하지만. 말하는 내가 꺼내 쓰는 표현과 감정들은 어쩐지 너무 정형화되거나 사회의 때가 묻었다. 그러니까 말하기는 쓰기보다 편하지만, 필터링이 많고 단어와 표현도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정작 말로는 못하는 말들을 편지의 형태로 풀어쓸 때 오히려 '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되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글로리 동은이 연진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들처럼 말이다.(일부 사람들은 이 편지를 연진의 강아지 하예솔이 읽게 될 거라는 추측을 했지만...)

연진아 그거 아니? 네 딸은 거꾸로 보는 세상을 좋아하는 거.
세상이 거꾸로인 순간은 모든 색이 헷갈려도 이해받기 때문일까.
단 하루도 잊어본 적 없어.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
2015년 그해 봄이 난 참 좋았어.
난 두 번의 도전 끝에 임용에 붙었고 넌 고맙게도 엄마가 됐으니까.
가을에 태어날 니 아이의 이름을 난 백 개도 넘게 지어봤어.
건배도 내가 대신했어. 타락할 나를 위해 추락할 너를 위해.


그래서 가끔,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고는 한다. 수신인이 읽지 못하니 정말 솔직하게 마음을 내어 쓰게 된다. 소개만 보고는 사랑하는 마음이 담길 것 같지만, 속이 좁은 나는 주로 밉고 날 선 감정을 적는다.

도대체가 말하지 않고서는 떠나지 않는 생각을 한 자 한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해소가 되는 느낌이랄까. 글로서 감정을 해소하는 테라피가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효과는 탁월하다.

물론 좋은 마음을 담아 쓰는 편지도 많다. 지난주 업로드한 생일 답례사도 주체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써 내려간 글이다. 


 이전 브런치 글이었던 '생일 축하 답례사'


편지를 읽고 너도 나도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편지를 전하고 대부분에게는 전해지지 못했다. 허공에 날리는 글일 수도 있지만, 내 마음만은 어찌 되었든 한결 편해졌다는 후일담.

아, 시행착오가 하나 있는데 다음부터 공대 친구들에게는 보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메신저를 뚫고 나오는 당황스러움이란! 친구야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마음으로만 부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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