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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숩숲 Feb 25. 2023

헝그리 정신으로 쓰는 6일 단식 일기

염증에 좋다는 단식,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이게 이렇게 오래갈 병이 아닌데. 또 하루에 만 보씩 걷고 다니신 건 아니죠? 이거 참 원인을 모르겠네. 이상하네요."

정형외과 과장은 몇 개월 째 차도가 없는 나의 절뚝이 발목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너 너무 걸어 다닌 거 아냐? 의심의 눈초리를 느낀 건 지속되는 통증에서 비롯된 나의 못난 망상일까.

‘지금 조롱하는 거야? 의사인 네가 모르면 내가 어떻게 알겠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끓는 마음을 누르며 진료실을 나왔다. 발목 염증으로 8개월간 병원에 들락날락했다만 차도는 없었기에, 의사가 병을 고쳐주리란 기대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진료 보는 의사마다 제각각의 해석을 놓는 것도 한몫했다.

일정 상 집 앞과 회사 앞 두 개의 병원을 번갈아 다녔는데 한쪽 병원에서는 몇 주간의 비급여 치료와 함께 후경골염 진단을 내주었고, 다른 병원에서는 단순 염증성 질환인데 나이도 젊은 분이 잘 낫지 않는다며 효과는 모르겠는 염증약과 물리치료 처방을 내주었다.


백만 원을 웃도는 병원비는 둘째치고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평일 2시간씩 병원에 내야 하는 일은 직장인에게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다. 점심시간을 빼거나, 일을 5시경 급하게 마치고 병원에 가는 일을 5달간 반복했지만, 좋아졌다가도 평소보다 조금만 더 걸으면 다시 돌아오는 염증에 질려버렸지 뭐야.
바닥난 신뢰를 핑계 삼아 병원도 잠시 끊고 상급 병원 예약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형외과 족부 전문의는 수가 턱없이 부족한지,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에 예약을 잡았지만 4개월 후에나 방문 가능했다. 그래도 전문 병원에 가면 과잉 진료가 많아, 가급적 교수급의 전문의에게 진단을 한 번 받아보라는 한의사 가족의 조언에 따라 재활운동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재활운동도 큰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상급병원 예약일 이틀 전, 오후 5시쯤 병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전화가 왔다. 예약일에 진료가 어렵게 되었다고. 사유는 교수의 퇴사.

나의 병원 일기는 왜 이리 하극상인가…

언제 다시 예약이 가능하냐는 나의 말에 새로운 교수가 올 때까지 예약이 불가능하단다. 새로 오면 예약을 일찍 잡아준다나 뭐래나. 그래도 그걸 진료일 이틀 전에 알려주면 어떡하냐는 나의 말에 접수원은 “환자분도 짜증 나고 화나시겠지만, 저도 이 사실을 어제 알게 됐어요.”라 말했다.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뚫다 못해 맨틀 근처로 가고 있었다. 대응하는 방법도 참... 밥 굶을 일 없는 기관은 이렇게 일하는구나… 좋겠다… 진짜… 상급 병원에 가면 6주 깁스를 권한 것이라는 1차 병원 의사 말에 빨리 깁스하고 후딱 끝났으면 했는데.

 

오랜 시간 낫지 않는 병을 두고 가족을 포함한 지인들의 새로운 소견이 추가되었다.

“그냥 써, 몸이 적응할 때까지.” “잘 아는 재활 병원이 있는데, 추천해 드릴까요?” “인대병원 가봤어? 인대 전문 병원으로 가보라니까!” “전문 병원은 과잉 진료가 많아서, 상급 병원 교수님한테 진단받아봐.” “그럼 물리치료라도 꾸준히 받아봐.” “물리치료, 충격파치료 그거 다 효과 없다는 논문을 읽었어.” “여기서 차도가 없으면 주사 치료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주사치료는 그래도 가급적이면 하지 마. 정형외과에서 주사 놔준다 해도 거절해!” “도수 치료 해보는 건 어때?” “체내에 피가 맑아야 해. 내가 추천하는 영양제 있는데 먹어볼래?” “염증 좀 없애는 한약 쓸게요.” “한약? 그런 쓸데없는 데다 돈을 버리고 그래요. 아무 상관없어요.”

다들 걱정하는 마음으로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주는 거라지만, 내 맘대로 걸을 수도 없는 일체 불만족 상태에서 서로 충돌하는 지식들을 듣고 있자면 가끔은 불쑥 화가 나기도 한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있는 건데, 당신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닌데, 이것저것 치료받아봤지만 효과가 없을 뿐인 건데'라고 말이다.


단식은 그중 하나의 잔소리였다. 단지 예전에 신경성 관절염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멀쩡해진, 일주일에 한 번은 보는 큰 이모의 잔소리여서 더욱더 피하기 어려웠을 뿐.

염증에는 단식이 정말 좋은데.
병원 다녀서도 안 낫는 거면 단식 프로그램 한 번 해봐.

하루도 굶어본 적이 없는 나인데 6일이나 단식할 수 있을지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자유롭게 산책하고 싶은 마음 반, 매주마다 듣는 잔소리 피하겠다는 마음 반으로 그렇게 6일 단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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