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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Sep 22. 2018

홀로 걷는 비렁길 (하)

금오도 비렁길

 보폭을 줄여 천천히 걸었다. 내리막에서는 미끄러지는 것이 두려워 걸음을 빨리할 수가 없었다. 3코스의 명소인 출렁다리를 지나 종점인 학동에 이르러 곧장 구멍가게를 찾았다. 입구에 초인종을 누르라는 안내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미닫이를 열고 들어가 아무도 없는 가게의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에 나타난 여주인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했다.


 - 막걸리가 읎는디!

 - 예? 막걸리가 없다니요!

 - 기계가 고장이 났다나, 어쨌다고 당분간 막걸리를 못 만든다는디유.

 - 아이고, 그거 마실 생각으로 부지런히 걸어왔는데.


 하는 수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차가운 캔맥주로 힘듦을 달래고 다시 일어섰다. 다섯 시간 반이 걸리는 1, 2, 3 세 코스를 네 시간 반에 끝낸 셈이었다. 다시 4코스에 접어들었다. 힘도 들었지만, 발가락 통증으로 발걸음을 더 늦출 수밖에 없었다.


 비렁길은 일반 등산과는 달라서 시작점과 끝점이 바닷가인 포구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다. 짧게는 3.2킬로에서 길게는 5킬로인 단일 코스도 벼랑 위에 낸 길이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시로 나타난다. 삐죽빼죽 제멋대로 생긴 돌을 깔아놓은 길도 발걸음을 힘들게 한다.


 4코스의 3분의 2 지점에서 박 선생 댁으로 가려면 왼쪽의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 그곳에서 마지막 진을 소진했다. 45° 보다 심한 경사를 오를 때 입에서 단내가 났어도 애초의 계획을 완수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 도착하자마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대자로 드러누워 숨을 골랐다.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면 시간이 분초 단위까지 파일 이름에 기록되기 때문에 시간을 따로 기억할 필요가 없다.


 샤워하고 박 선생이 따라주는 약초로 담근 술을 두 잔 먹으니 노곤해져서 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들어 바닥에 누웠다. 곧 잠이 들었다. 스스로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꿀잠을 잤다. 박 선생은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집 주변의 밭을 돌아보며 변한 것을 찾아보았다. 감나무에는 작은 조약돌만 한 녹색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고, 요란스럽게 짖어대며 극성스럽던 애꾸눈 강아지는 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태양열 발전기 설치장소에 땅을 고르느라고 많은 일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찬이 맛있었는지 몰라도 이른 저녁을 정말 맛나게 먹었다. 청정해역에서 딴 돌미역과 홍합을 듬뿍 넣어 끓인 미역국이 다디달았다. 냄비 바닥을 긁어서 비웠다. 소화를 시킬 겸 밖으로 저녁 산책을 나왔다. 가로등이 없는 섬마을의 초저녁은 깜깜했다. 시멘트 길의 밝은 회색이 그나마 밝은 탓인지 메뚜기와 귀뚜라미 같은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하늘에는 얇은 초승달이 걸렸다. 저 달이 꽉 들어차면 추석이다.


 대화는 주로 섬마을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였다. 여러 채의 집을 가진 사람이 하루아침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겨우 회복되어 간신히 걸음을 옮길 정도라는 것, 60도 전에 어떤 부인이 파킨슨병으로 어렵게 되었다는 것,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노인들이 대부분이어 5년만 지나면 인구가 많이 줄 것 같다는 것, 내년에 65세가 되어 국적을 회복하면 10만 원 넘게 내던 의료보험료가 2~3천 원으로 떨어진다는 것, 한국 정부에서 주는 노인수당 혜택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섬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여수에서는 한국 국적을 회복하더라도 의료보험료가 4~5만 원은 된다고 들었다. 시골 인심이 후해서 여기저기서 주는 음식도 처치 곤란이라며 웃었다. 환하게 불이 켜진 곳은 언덕 위의 교회였다. 마침 예배를 보는 수요일이었다. 내려갔던 언덕을 되돌아 올라오니 꽤 서늘한 밤 기온이라도 적당히 땀이 났다. 여섯 시간 가까이 걸었던 다리도 무거웠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돌아와 약술을 몇 잔 더한 덕분이었을까, 모처럼 깊고 깊은 단잠을 잤다.


 1부와 2부로 나뉜 잠을 잔 것은 꽤 오래되었다. 자다가 반드시 요의를 느껴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탓이다. 저녁에 수분을 많이 섭취한 날은 3부나 4부까지도 나뉜다. 1부는 깊이 자도 2부는 잠을 설치기 십상인데 그날은 2부까지도 깊이 잠들었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박 선생은 한 번도 안 깼다고 했다. 잘 먹고 잘 싸는 일에는 문제가 없어도 잘 자는 것은 내게 쉽지 않은 일이라 캐물었다.


 그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미국 버지니아에 살 때는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을 겪었으며 나처럼 매일 저녁 위스키에 의존했다. 자다가 두세 번을 깨는 것도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병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3년 6개월 금오도에 사는 동안 건강이 좋아졌다. 야뇨증도 저절로 고쳐졌으며 눈도 밝아져 지금은 작은 글씨도 잘 보인다. 농사 경험이 없어서 시행착오를 겪기는 하지만, 운동 삼아 시나브로 밭을 일구고 남을 돕다 보니 군살도 없어지고 건강에 자신이 생겼다. 농약이나 제초제 일절 없이 키운 싱싱한 채소와 자연산 음식만 먹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웃이 줬다는 닭고기를 삶아 아침을 먹었다. 밖에는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마음이 참 편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고즈넉함과 편안함을 더했다. 마당 건너 텃밭에 빨갛게 매달린 고추가 한적한 시골의 평화로움을 웅변했다. 봉지 커피를 한 잔 더 청해 향기를 음미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바로 평화와 안식 그 자체였다. 모르긴 몰라도 박 선생과의 우정은 오래도록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다.


 금오도에 박 선생이 계신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점심까지 맛있게 먹고 반찬거리까지 받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리는 듯 마는 듯 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 주말에는 사람이 북적이는 출렁다리를 혼자 건넜다.


▼ 3코스의 끝점인 학동이 보인다. 이때까지는 시원한 막걸리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 4코스에서 마주친 풍광들.


▼ 온금동 가까이 가서 박 선생 댁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벗고 찍었다. 파일 이름에 20180912_135023이라는 숫자가 들어간 것에서 13시 50분에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침 8시 10부터 걸었으니까 5시간 40분을 걸은 셈이다.


▼ 돌아오는 배에서 바라본 금오도 산봉우리에 구름이 일었다.


▼ 어선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선실 내의 형광등에 빗물이 차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 집에 도착하니 박 선생께서 카톡을 보내셨다. 사모님이 우리 먹으라고 해놓은 김치찌개와 생선찌게이었다. 몰라서 못 먹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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