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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Jul 13. 2019

아베의 일본

일본의 수출규제를 생각한다.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졌을 법한 가젯(Gadget)이 있다. 그 시절 버스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영어회화나 음악을 들었던 소니의 워크맨이다. 친구가 가진 자그마한 그 기기를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탐이 나던지 그것만 갖고 있으면 영어회화가 저절로 될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소니(Sony)’라는 이름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나는 70년대 대학에서 전자공학과 유무선 통신공학을 공부한 전자공학도다. 졸업 후 동기들 대부분은 삼성이나, 금성(지금의 LG) 또는 현대나 대우 같은 대기업 계열의 전자회사에 입사했다. 그들은 일본에 출장을 다녔다. 냉장고, 세탁기, 마이크로 오븐, TV, 비디오 같은 가전제품 제조법을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이 아무리 싫어도 일본제품은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글로벌 회사로 성장한 삼성전자는 설립된 1969년에, 일본의 SANYO와 합작하여 출발했다.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1909~1987)의 정신적 스승은,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며 추앙받던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였다. 요점은 1970, 80년대는 일개 사원부터 재벌총수까지 일본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것이다.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었다고 해서 일본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 체제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우리를 가르쳤고, 일본을 위해 일했던 군인과 경찰, 관료들이 여전히 우리를 통제하고 다스렸으며, 일본에 전투기를 헌납하고 천황에 충성을 맹세했던 친일 인사들이 이 나라의 경제를 여전히 틀어쥐고 있었으니 더 말이 필요 없다.     


 2014년 12월 말 경기도 부천의 현대백화점에서 그 유명한 갑질 사건이 발생했다. 차를 빼달라는 알바생 주차요원의 말을 듣지 않자 주차요원은 차량 뒤에서 주먹감자를 날렸다. 이를 백미러를 통해 본 모녀가 해당 알바생뿐만 아니라 다른 주차요원까지 무릎을 꿇린 뒤 2시간 이상 욕을 하며 난동을 피웠다. 이때 갑질 모녀가 한 말이, 몇백만 원어치 물건을 산 VIP 고객이라는 것이었다. 1년에 3,500만 원 이상 소비하는 VIP 고객인 자스민 회원이라는 것이 난동의 이유였다. 즉, 고객은 왕이지 않으냐고 따진 것이다.     


 이처럼 물건을 사는 - 돈을 쓰는 - 사람이 ‘갑(甲)’이고, 물건을 파는 - 돈을 버는 - 사람은 ‘을(乙)’이 되는 게 자본주의의 이치이자 현실이다. 현대백화점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당신들 같은 진상 고객에게는 안 팔아도 좋으니 오지 말라고 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백화점 측에서는 갑질 모녀의 편을 들어 그들의 행패를 축소하고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그만큼 무엇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바야흐로 세계는 국가 이기주의가 최우선인 무역 전쟁의 시대다.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구호로 미국 대통령에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더 심해졌다. 미·중 무역갈등이 대표적이다. 내용이야 복잡해서 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수입과 수출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게 요지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송두리째 뒤집는 사건이 목하 진행 중이다.     


 일본이 몇 개의 품목을 제멋대로 지정해서 한국에 수출하지 않음으로써 피해를 주겠다는 협박이 그것이다. 수입이 아니고 수출이라니 기막힐 노릇이다. 어떤 나라가 미우면 그 나라 제품 불매(不買)운동을 벌이는 게 보통의 상식이다. 소위, 보이콧(Boycott)이다. 그런데 불매(不買)가 아니라 불매(不賣)운동이라니 난생처음 듣는다. 타인을 괴롭히기 위해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자해에 가깝다.     


 이번 일로 일본 정치인들이 한국을 보는 의식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들은 아직도 한국을 경제 식민지로 생각해서 일본이 아니면 한국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일제 치하의 36년 동안 그들이 한국을 수탈해간 방법은 쌀 같은 농수산물과 광물 등 1차 상품을 일본으로 가져가서, 가공한 후 2차 상품을 한국에 파는 것이었다. 한국만 아니라 모든 식민지의 목적은 그런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 철도를 놓고 항구를 건설한 것도 경제적 수탈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지 한국의 산업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넋나간 일부 친일 역사학자들도 있다. 


 10년 전인 2009년 말 강제노역에 끌려갔던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벌인 피해보상 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99엔 보상을 결정했다. 그들은 이를 연금탈퇴 수당이라고 불렀지만, 소송을 벌인지 11년 만에 결정된 보상치고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확실히 증거한다. 당시의 이명박 정부는 일본을 비난하는 어떤 성명도 내지 않았으며, 뒤를 이은 박근혜 정부의 사법부에서는 피해자들의 국내 소송을 지연시키며 그들이 모두 사망하기만을 기다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법원은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한국정부의 사법적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 아베 정권의 일본기업 - 신일본제철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자 한국정부는 신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한 것이 아베 정권의 보복을 불러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 정부는 한국이 더는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가 아님을 증명할 차례다. 그래야 이번 일본의 조치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 자해로 남는다.     


 세계 역사상 최단시간에 IMF를 극복하며 국제적 경쟁력까지 확보한 나라답게, 이번에도 일본이 만들어준 기회를 이용하여 경제적 독립까지 이루어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국제사회의 상식을 깨뜨린 것은 일본이다. 오죽하면 자해까지 하면서 이웃 나라를 괴롭히려고 했을까. 국제질서를 지키든지, 자기들만의 억지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든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후기>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맞고 폐허가 된 일본이 회복하여 오늘날의 부를 이룰 수 있던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었습니다. 군수물자 공급으로 경제가 급속하게 살아납니다. 우리의 처참했던 불행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행운이 되었습니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무척 얍삽하고 비겁하다는 것입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민족이라는 느낌이지요. 트럼프와 라운딩을 할 때 벙커에서 급히 나오다 자빠지는 아베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트럼프에게는 굽실대면서 다른 약소국에는 자기에게 굽실대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을 잘못 보았습니다. IMF 때처럼 이번의 위기가 기회로 반전되어 일본의 경제적 지배를 벗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민족의 힘을 믿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50년대에 태어난 저희는 일본을 우러러보는 잠재의식이 있습니다. 오래되어 이젠 이름도 까먹었습니다만, 학생 때는 무슨 반도체를 발명한 일본인의 이름까지 외워야 했으며, 직장에서는 도요타 자동차의 비용 절감과 업무개선을 그대로 따라 했으니까요.     


 40년대에 태어난 분들은 저희보다 더하고, 그 전에 태어난 분들은 일본을 거의 숭배할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는 한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기는 힘들겠지요. 작금 한국의 언론에서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소란스러운 것을 보면 아직도 그런 분들이 많은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바로 아베가 원하는 모습이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정부를 믿고 조용히 있을 수는 없는 걸까요? 그것만이 일본의 간사한 흉계를 저지하는 올바른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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