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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Aug 12. 2019

잠과 꿈

 깜깜한 새벽에 깼다가 다시 든 잠에서 꿈을 꾸었다. 깨고 나서도 꿈이 아닌 것처럼 실감이 날 정도로 생생했다. 회사의 구매 담당인 내게 누군가 물건을 팔러 왔는데, 상품은 리모트 비디오 카드였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가벼운 태블릿이나 노트북이 있는 현실에서는 상품성이 전혀 없는 제품이었다.

   

 버릇된 탓에 운동하지 않는 날도 4시가 지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아니, 나이가 들면서 소변을 참지 못하는 탓이 더 크다. 자는 중에도 화장실 욕구로 서너 시간마다 깨는 것이 여간 귀찮지 않다. 새벽에도 25℃가 넘는 덥고 습한 날씨에 운동을 나갈 수 없어서 뒤척이다가 깜박 잠이 들었고, 그사이에 꾼 개꿈이었는데 개꿈 치고는 리얼했다.     


 전공과 관련된 일터를 떠난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도 일에 관련한 꿈을 꾸는 것이 신기하다. 현역 시절, 골치 아픈 문제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던 중에 꿈에서 실마리를 찾은 기억도 있기는 있다. 심지어는 꿈에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해서 깨자마자 메모해둔 적도 있는데, 메모해 둔 곳을 잊어버려 없던 일이 된 적도 있다.


 기억나는 소년 시절의 개꿈은 쫓기는 꿈이 많았다.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우주를 나는 기차까지 타고 도망가도, 끝까지 쫓아오는 괴물로 힘들어하다가 깨곤 했다. 청년 시절에 가장 기억나는 악몽은 1983년 미국 연수 중에 꾸었던 개꿈으로, 말다툼 끝에 백인을 살해하고 미국 경찰에게 쫓기는 꿈이었다. 미국인과 영어로 싸우고 경찰과 영어로 말하는 꿈속에서 영어가 술술 나오는 나를 대견해했던 기억이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Newton’이라는 과학잡지를 보았는데, 수면을 과학적으로 풀이한 기사를 특집으로 실려 있었다. 젊었을 때는 24시간보다 길었던 수면 주기가 5~60이 넘으면서는 24시간보다 짧아져서, 젊었을 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Evening Person’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Morning Person’으로 바뀐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잠을 자는 동안 REM(Rapid Eye Movement)과 NREM(Non-REM) 수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REM과 NREM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사이클은 보통 90분에서 120분으로 서너 번의 사이클이 하룻밤 자는 동안에 나타난다. 꿈을 기억할 수 있다면 REM 수면 상태에서 꾼 것이다. NREM 상태에서 꾼 꿈은 기억할 수 없으며, Non-REM은 수면의 깊이에 따라 서너 단계로 나뉜다. 1단계보다는 2단계가, 3단계보다는 4단계가 깊은 잠이다.     


 REM 상태에서 깨면 개운하지만, Non-REM에서 각성이 되면 잠을 잔 것 같지 않아 기분이 찜찜해진다. 따라서 꿈을 꾸다가 깼다면 좋은 잠을 잔 것이 된다. 네 시가 넘은 것을 보고 일어나 화장실에 들리고 나서 엎치락뒤치락하다 깜박 잠이 들어 7시 넘어 깼는데 매우 잘 잔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두꺼운 구름이 낮게 깔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상쾌했다.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하면 잠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단칸방에서 밥상을 책상 삼아 밤새워 시험공부를 할 때, 부친은 코를 심하게 고셨고 가끔가다 숨을 멈추기도 해서 아버지의 코를 잡았다 놓기도 했었다. 건강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시절이라 그게 수면무호흡증인지도 몰랐다. 32년 전, 지금의 내 나이도 안 된 아버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협심증의 원인을 나는 그때문이라고 믿는다.     


 옆에서 탱크가 굴러가는 속에서도 잠에 떨어졌던 군대 시절도 있었는데, 어찌 된 탓인지 지금은 바스락 소리에도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 이민 생활 중 힘들었을 때는 위스키 도움 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나마도 서너 시간뿐이었으나 요령 덕분인지는 몰라도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많이 좋아졌다.     


 별것도 아닌 요령을 말하자면 이렇다. 우선, 취침 전에 귓구멍 속에 마개(Ear plug)를 넣는다. 이물감 때문에 잠이 안 올 것 같다는 사람도 있지만, 습관이 된 지금은 없으면 귀가 허전해서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다. 큰 소음은 몰라도 속삭이는 것 같은 작은 소리는 완전히 차단된다. 다음은 블라인드로 빛을 차단하여 주위를 컴컴하게 만든다. 그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안대를 착용한다. 따라서 여행할 때 안대와 귀마개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다음날 근무할 생각에 불면이 고통스러웠으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일찌감치 양치질을 끝내고 있다가 하품이 나오는 즉시 침대로 가고, 잘 때를 놓쳐 잠이 안 오면 졸음이 쏟아질 때까지 책이나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보다는 종이로 된 책이 효과적이다.     


 잠을 방해하는 요기(尿氣)가 불편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나을 수 있다는 의사의 그럴듯한 이론과 장담과는 달리 몇 달 동안 약을 먹었어도 효과가 거의 없었다. 수면 중에 요기를 억제하는 호르몬의 불균형 탓이라는 의사의 설명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 증세에 맞춰 자다가 일어나 한두 번 화장실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니 불편할 것도 없다. 증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할 때는 많이 괴로웠었다.


 젊었을 때 머리를 기댈 곳만 있으면 어디서나 잠에 떨어졌던 잠꾸러기가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대입 수험생 시절에는 밀려오는 잠을 쫓느니라고 입술을 깨물고 허벅다리를 꼬집어도 견딜 수 없던 잠이었다. 깜박 5분 정도 존 것 같은데 깨어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었다. 그때는 한두 번만 읽어도 잊지 않을 만큼 기억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성 들여 읽은 책도 며칠이 지나면 제목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이래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이런가!

 이제야 옛사람이 했던 말들을 이해한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지나고 나서야.

 세월은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순응하는 것일 뿐.

 세월이 주는 변화도 마찬가지다, 변화를 거역하지 않고 순응하면 몸도 마음도 편하다.

 꿈에 20년을 살았던 엑스 와이프나 아이들, 부모님과 형제들은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주로 나타나는 일은 과거의 직장에서 경험했던 일들이다.

 그게 오늘 꿈을 꾸고 나서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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