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트럼프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요? 나라면 창피해서라도 못 뽑을 것 같은데.
- 그래도 우리나라로서는 다행한 일 아녜요? 저 사람 때문에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통일이 앞당겨진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작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지나는 길에 이발소가 보여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머리를 손질하는 중에 TV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순간 이발사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떠본 말이었다. 혼자 이발소를 지키는 이발사는 온종일 뉴스를 지켜보며 손님들과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으나 생각은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가 우리나라에 다행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북한의 김정은과 대화하는 척하고 싱가포르의 이벤트성 행사를 떠들썩하게 한 것도 세계 뉴스의 존재감 때문이었을 테니까. 그는 ‘The Apprentice’라는TV쇼에나 어울리는 예능인이자 사업수완이 뛰어난 장사꾼일 뿐이지, 세계를 리드할 미국의 대통령으로서는 ‘깜’도 안 되는 저질 중의 저질이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세상을 미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우리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앞선 시대의 트럼프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부동산 시장을 미리 내다볼 줄 알았고, 명성(famous)이든 오명(notorious)이든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꿰뚫었다.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도덕, 정의, 의리, 충성, 수치심과 같은 긍정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거짓말, 허풍, 선동, 배신, 돈, 섹스, 이해타산과 같은 단어가 그의 인생을 지배한 요소들이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이 된 후에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딸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 자문관에 임명한 것이 증거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의 기자에게 ‘Liar’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작년에 하루 평균 15회의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Liar’는 CNN이나 NY Times 기자가 아니라 바로 트럼프 자신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선진국이다.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원조차 자식이나 조카를 보좌관은커녕 인턴으로라도 썼다면 난리가 난다. 자기가 교수로 일하는 대학에서 딸이 표창장을 받았다고 국가가 나서서 수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의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기자에게 ‘거짓말쟁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미국은 정말 후진(?) 나라다.
미국에서 지난달 트럼프는 ‘중대발표’라며 뜸을 잔뜩 들여 광고효과를 극대화한 후, IS의 지도자 알바그다디가 ‘개처럼, 겁쟁이처럼 죽었다’고 발표했다. 그런 극렬분자의 죽음은 세계인으로서 환영해야겠으나, 꼭 ‘개처럼, 겁쟁이처럼’이라고 표현해야 했을까. 그래도 한 단체의 지도자로서 수만에서 수십만의 회교도에게 한때 추앙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들을 다 죽인다면 모를까,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그 치욕과 수치를 견디기 힘들어할 것이 분명하다.
열국지나 삼국지, 초한지 같은 중국 고전을 보면 전장에서 적장을 베면, 그 주검을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 아량과 자비는 사람의 분노를 누그러뜨려 타오르는 불을 꺼지게 만들지만, 수치와 모멸은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아서 죽어가는 불도 다시 타오르게 한다. 살아남은 IS 추종자들의 다음 행동이 더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제거된 뒤, 살아남은 패잔병들이 만든 조직이 바로 IS고, 사담 후세인 정권보다 더 악랄해졌다는 사실을 잊은 것인가.
미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경찰국가로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세계 평화에 앞장서서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그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한국전쟁 참전이다. 그러나 그 이후 국제적 중재자로서 미국의 위치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보다는 미국의 이익에 따라 베트남의 지엠 독재정권이나 이란의 독재 팔라비 왕조를 지지하고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흔들리기는 했어도 미국의 위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빌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 있어서 미국의 이익과 함께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덕분이었다. 국내적으로는 부자 증세를 통해 경제적 약자를 위한 보편적 복지 확대를 추구했고, 국제적으로는 아랍이나 제삼세계, 즉 약자의 목소리와 이익에도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오랫동안 그렇게 쌓아온 미국적 가치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일거에 허물어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들면서 중동 정세를 수십 년 전으로 회귀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강자의 논리로 약자를 무시함으로써 전통적인 우방까지 등을 돌리게 했고, 대내적으로는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통해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오바마케어 무력화로 경제적 약자의 삶을 악화시켰다.
트럼프 정부 들어서 천만 달러까지는 상속세가 전혀 없다는 말을,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포 CPA(회계사)로부터 처음 들었다. 거부(巨富)인 트럼프가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으로 부자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경우 약 300만 불(30억 원)이 넘으면 50%의 상속세가 부과되는 것에 비하면 미국은 부자들에게 천국인 셈이다. 상속세 때문이라도 한국의 부자들이 미국에 이민하게 생겼다.
그러나 세상만사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이란 없다. 부자에게 좋은 일이라면 빈자에게는 불리한 게 당연지사다.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복지는 축소될 게 뻔하고 오바마케어도 애초의 취지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부자가 아닌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업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군중의 무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난 9월 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하면서 해답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의 카페 ‘드몽’에서다. 우리를 안내한 분에 따르면, 월남 보트피플 출신 또는 그 자손으로 카페에서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사람들이 백인들에게는 친절하지만 같은 동양인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백인들, 즉, 기득권이 되었다고 착각한다는 게 그분의 설명이었다.
(글이 길어져 여기서 일단 멈춥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계속하겠습니다. To be continued~.)
▼ 뉴올리언스의 카페 'Du Mo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