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카피캣 한국에 트럼프를 닮은 대통령이 없을 수 없다. MB가 그랬다. 세상 사람들 모두 DAS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해도, 서울시장이었을 때 부시장으로 측근이었던 고(故) 정두언 전 국회의원이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도, 심지어 그 회사 사장이나 조카까지도, 실소유주가 MB라고 증언했어도, MB 혼자만 현재까지 끝끝내 부인하고 있다. 거짓말에 있어서 트럼프와 MB는 막상막하다.
두 사람에게 닮은 점은 또 있다. 전임자에 대한 질투심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 오바마 대통령의 치적을 지우는 데 열심이었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각종 정책을 헐뜯었으며 오바마케어를 무력화시키려 들었고, 오바마가 체결한 각종 국제조약을 폐기하거나 탈퇴했다. 엠비는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간 노무현 대통령의 대중적 인기가 상승하자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국세청을 동원하여 주변 인물을 세무 조사했고, 국정원을 동원해서 ‘논두렁 시계’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게 했다.
트럼프가 북한의 김정은과 친한 척하는 이유는 하나다. 하찮은(?) 오바마도 받은 노벨평화상을 받아서 오바마의 치적을 뛰어넘겠다는 속셈이다. 어떤 이유로 그들은 전임 대통령을 그토록 시기하고 질투했을까? 순도 100%의 개인적 추측이지만, 그들의 마음에 가득한 탐욕이 전임자에게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늘과 자신만큼은 속일 수 없다. 어쩌면 그 둘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기술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부(富)와 명성, 둘 다 가진다는 것은 불과 물을 동시에 소유하겠다는 것만큼 모순이자 허황한 욕심이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고행을 택해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스스로 실천한 부처님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루카 18장 25절)’라고 설파한 예수님이 일찍이 인류에게 가르침을 주었음에도, 엠비는 부와 명성을 동시에 쫓았으며 트럼프는 현재 진행형이다.
- 귀촌하려고 시골도 다녀보고, 집을 얻으러 다니며 한국이 참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물질 만능의 사고가 옛날보다 심해지고, 사람들 사이의 불신이 심해진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오랜 이민생활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어떤 분이 한 말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물질 만능의 사고’다. 왜 한국이 이렇게 변했을까? IMF를 겪은 한국의 변화다. MB 정권 시절, ‘부자 되세요!’라는 TV CF 카피가 유행어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남재여모(男財女貌)’가 사회 전반에 걸쳐 최고의 가치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이야 어떻든 돈 많은 남자는 여성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지명 수배된 여성이라도 얼굴만 예쁘면 뭇 남성들로부터 동정을 받거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시사인(人) 주진우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엠비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당선 축하금이라는 명목으로 닥치는 대로 돈을 받았다. 심지어 스님이나 제과점(뉴욕제과)에서 주는 돈도 챙겼다고 한다. 이것은 이팔성 전 우리 금융지주 회장의 비망록으로 사실로 굳어졌다. 부와 명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엠비는 유사한 부류다.
후진국이었던 과거에는 권력을 돈이 따라다녔다. 재벌 총수들은 앞다퉈 현금을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 최고의 권력이 되면서 권력이 자본을 따라다닌다. 지난 10월 말 MBC가 방영한 ‘PD수첩 검사 범죄’ 2부작이 그것을 입증한다. 20여 년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O. J. Simpson’ 사건도 ‘유전무죄’의 대표적 사례다.
자본을 따르는 것은 법만이 아니다. 민주사회의 대표적 기득권인 언론과 종교도 자본의 노예가 된 지 오래다. 트럼프 지지로 명성을 쌓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 목사 ‘Mark Burns’가 있다. 그는 트럼프를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2016년 유세 당시 흑인 지지율이 0%에 가까웠던 트럼프를 위해 흑인 유권자 유세에 참여했던 번즈는 학력과 경력을 위조한 것이 들통났다. 그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한국의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세습도 다름이 아니며, 대표적인 치부로는 재벌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 가족이 있다.
엠비도 소망교회 장로로서 개신교의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고, 트럼프는 ‘나는 성경을 사랑한다’, ‘성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라는 발언으로 기독교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종교적 편향성으로 타 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비판적임은 물론이고 언행 또한 기독교 교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 교우님은 교회에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재작년 여수로 이사한 후, 근처의 성당을 찾은 적이 있다. 낯선 곳에 잘 정착하는 비결 중의 하나가 교회에 다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주일미사에 참석해서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성당 사무실을 찾아 신부님과 면담 약속을 했다. 비교적 젊어 보이는 신부님은 평일 미사에서 개그에 버금가는 강론으로 많지 않은 신자들이 듬성듬성 채운 성당을 웃음으로 가득하게 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과 마주 앉았다. 이혼으로 인한 조당을 풀어 달라고 요청하며 지난날들을 그에게 고백했다. 조당에 걸린 것이 나는 무척 억울했다. 결혼 당시는 신자도 아니었으며, 이혼도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뉴저지에서 2천 년에 교리를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을 뿐이다. 몇 차례 조당을 푸는 시도를 했으나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받는 것으로, 그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30분가량 이야기를 듣던 신부님이 한 말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느낌은, ‘나는 행복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즐겁게 지내기에도 바쁩니다. 당신 같이 골치 아픈 사람은 상대하기 싫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성경 속의 고달픈 목자가 아니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지내기를 원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면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시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선진화된 정치제도를 가진 모든 민주체제의 국가를 움직이는 양 날개는 자유와 평등이다. 소위 우파라고 불리는 보수는 자유에 가치를 두고, 좌파라고 일컬어지는 진보는 평등을 중요시한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하는 나라에서 최근 벌어지는 모든 갈등은 양극화로, 다른 말로 바꾸면 경제적 불평등이다. 돈이 힘이자 권력이 되는 자본주의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