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보지 보고 싶어요
'남에게 폐끼치지 말아라'. 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이게 내 첫 자기소개서의 첫 문장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늘 그 말씀을 나에게 종종 하곤 하셨다.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오신 삶의 철학이 온전히 담겨 있는 말 인 것 같다.
어제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입관을 하기 전 바라본 할아버지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향년 90세.
내가 최근에 본 표정 중 가장 편안한 표정이셨다. 그 앞에서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그렇게 아들을 데려가면 좋아하셨는데, 못 찾아뵈서 죄송해요'. 그렇게 말을 하곤 눈물이 났다.
코로나란 이유로 가족 방문에 제한을 두고 있었고, 그 시기가 길어질 수록 할아버지는 점점 더 쇠락해 가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사진으로 밖에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30년을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는 두부 장사를 오래하셨기에 난 늘 '두부집 손자' 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 별명도 순두부였다. 그 별명도 참 싫었는데, 할아버지 곁에 없다보니, 그 별명 조차도 그리워졌다.
두부는 늘 새벽 5시에 신선할 걸로 받아서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두부종을 치시며 두부를 팔러 다니셨다. 지금이야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어렸을 때는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시며, 리어카 하나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셨다. 그런 부지런한 할아버지는 유일한 낙은 늘 정확한 시간에 소주 반병과 안주 하나 놓고 드시는게 유일한 낙이셨다. 또 학교에서 돌아오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늘 리어카에 태워주시곤 했다. 그게 참 이제는 그리워졌다.
몸은 성인인데, 이제는 탈 수도 그리고 태워줄 수도 없다. 기억에 대한 추억만이 남아 있다.
할아버지 더 좋은 곳에서 평안히 쉬세요. 늘 고생만 하셨잖아요.
할아보지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