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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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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Sep 01. 2019

내년을 기다려라, 이 주인 놈아

We will be back, 우리는 죽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행복했습니다. 이 한옥에는 우리가 딱 좋아하는 서식지가 있지요. 바로 세탁소 밑 웅덩이입니다. 마당 한 켠에 세탁실이 딸로 있는데 하루에 한 번은 빨래를 돌리다 보니 불볕 더위가 며칠째 계속되지 않는 한 축축할 때가 많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나도 태어났습니다. 


요즘 저는 비행 훈련을 마치고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따로 무기는 필요 없습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 주둥이만 있으면 됩니다. 요걸 맛있어 보이는 살색 피부에 꽂고 쭉쭉 피를 빨아들일 때의 쾌감은 아, 너무도 달콤하고 짜릿합니다. 아빠에게 들어 알고 있는 드라큐라가 이 맛에 사나 싶을 정도지요. 사람들은 우리를 모기라고 부르더군요. 


이 한옥 주인들은 멍청한 건지 어쩐 건지 여덟, 아홉 시까지 마당으로 연결된 거실 문과 주방 문을 열고 삽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아무런 경계나 제지도 없이 방으로 날아가지요. 우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될 때도 아니어서 우리는 잠시 눈도 붙이고 게임도 하고 집 구경도 합니다. 


밤 10시는 각별히 몸 조심을 해야 할 때입니다. 살이 허연 이 집 주인 놈은 작은 책을 한 권 들고 이 천장 저 벽면 훑어보며 우리를 죽이기 위해 눈을 희번덕거립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최종 점검을 하는 거지요. 그렇게 쉽게 당할 우리가 아닙니다. 그 주인 놈이 천장이나 벽면만 유심히 살피는 걸 아는 우리는 옷가지 사이, 바닥에 있는 책 커버 모서리 한 쪽에 은폐 하듯 몸을 숨깁니다. 잠시 그러고 있으면 이 놈은 마침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듭니다. 


우리는 그 놈이 깊이 잠들 때까지 1시간 정도 기다립니다. 어떤 때는 금방 곤한 잠에 빠져들어 바로 행동 개시를 할 때도 있지요. 이 집 주인 놈이 마음에 드는 건 여름이면 팬티 같은 속바지하나 입고 벌러덩 대 자로 자기 때문입니다. 우리 입장에선 아주아주 거대한 음식이 ‘나 한 번 시식해 줘’ 하고 누워 있는 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족은 취향이 제 각각이어서 아빠는 발가락을 엄머는 젖꼭지를 나는 뱃살을 물어댑니다. 


그런데 이 날 우리는 방심을 하고 맙니다. 시간차를 두고 밤새 느긋하게 뜯어먹어야 했는데 점심에 하도 오랫동안 굶어서 우리 가족 모두가 그 몸뚱아리를 한꺼번에 물어 뜯은 겁니다. 주인 놈은 으~ 이 쌍놈의 모기 새끼들 하고 갑자기, 벌떡 일어났습니다. 당황한 아빠는 서둘러 은신처로 날아갔는데 배가 무거워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주인 놈은 불을 켜자마자 반사적으로 책을 집어 들었고 벽을 향해 날아가던 아빠를 향해 책을 휘둘렀습니다. 책은 굉음을 내며 벽면에 탁 붙었고 아빠는 그렇게 압사했습니다. 아…아버지…저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주인놈을 물어뜯고 싶었지만 엄마가 제 손을 붙잡았습니다. 안 된다 아가야. 너까지 죽어. 


그 주인놈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습니다. 주인 놈 책장에서 박완서라는 작가가 쓴 글을 읽은 적이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고 한 여름 밤 모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살기가 깃든다…는 내용이었던 듯 한 데 딱 그 눈빛이었습니다. 화가 많이 나 있었지요. 5분 넘게 한참을 구석구석 살피던 주인놈은 물파스 같은 걸 찾아 우리가 공격한 곳을 문질렀습니다. 아 씨 간지러 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리고 마침내 이제 됐다 싶었는지 불을 끄고 다시 누웠습니다. 


그런데 참으라고, 너까지 죽는다고 했던 엄마가 느닷없이 그 주인놈 머리통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습니다. 엥~~~그렇게 큰 프로펠러 소리는 처음 들었습니다. 주인놈은 아 진짜! 하면서 자기 얼굴 주변을 손을 휘둘렀습니다. 공중곡예를 하며 몇 차례 몸을 잘 피한 엄마는 가미가제처럼 다시 한 번 공격을 했습니다. 그때 주인놈이 다시 몸을 일으켰고 엄마도 아빠와 같은 방법으로,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주인놈이 휘두른 책에 즉사했습니다. 어머니의 시신이 꽂힌 곳은 천장이었지요. 잡았다, 짜릿한 표정을 지은 주인놈은 휴지에 물을 묻혀 돌아와 천장에 낭자한 어머니의 피를 닦았습니다. 개자식.


졸지에 부모를 잃은 나는 자리를 박차고 그 놈에게 달려갈까 생각했지만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분노를 억누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녘부터 그 놈을 밤새도록 물어 뜯었지요. 배가 불렀지만 계속 물어뜯었습니다. 그렇게 맹렬한 공격이 계속됐고 저는 너털너털 벽면 한 쪽으로 날아가 엄마 아빠를 부르며 흑흑 흐니끼다가 까무룩 잠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침 6시 무렵이 됐는데 아침잠이 없기로 유명한 이 놈이 마침내 불을 켰고 저는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하고 그 놈에게 발각돼 결국 그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천장 서까래가 높아 비행하는 맛이 남달랐던 그 집. 마당으로 옥상으로 놀러 갈 곳이 많았던 그 집. 열린 문으로 편하게 드나들던 그 집. 

  

저는 이렇게 가지만 제 친구들, 제 종족의 공격은 끝내 계속될 것입니다. 부르르 온 몸이 떨리는 이 분노를 제 종족들이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기다려라 이 놈. 내년에 보자, We will be back! 

에필로그 : 유치하게도, 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썼는지. 어젯밤 모기를 서너마리 잡았는데 중간에 제 머리를 향해 미친 듯 날아오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벽면으로 책을 날려 한 마리를 통쾌하게 잡은 직후였지요. 가족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력이 겨우 이렇습니다. 그렇게 아침에 또 한 마리를 잡았는데 이 놈은 미처 몸통이 여물지 못하고 작고 가늘었습니다. 이런 놈들이 몸을 물면 유달리 더 간지럽죠. 그렇게 그 놈까지 상상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옥에서의 여름은 모기와의 전쟁입니다. 밤새 모기 잡느라 수면의 질이 확 떨어지죠. 우리 어머니는 잠을 방해하는 모기를 향해 “저 사자 같은 놈들 좀 보소” 하고 말했는데 모기에게 왜 사자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그 말에는 분노가 가득했지요. 

모기 없이 편히 자면 정말 좋겠다,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지는데 그러다 어느 날, 진짜 모기 한 마리 없이 아늑하게 밤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은 새벽에 선잠을 깨 “어? 오늘은 모기가 없네, 아 좋다, 정말 좋다” 생각하지요. 여름이 한창일 때 써놓은 글인데 바야흐로 선선한 바람이 바람이 불고 모기의 공격도 뜸해지네요. 그렇게 또 한옥에서의 한 계절이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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