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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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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May 19. 2019

한옥과 제비집

한옥에 살면 이야기는 많이 쌓여요

며칠 전 동네 산책을 하다 땅바닥에 떨어진 아기새들을 보니 불현듯 한 옥 살 때 추억이. 특별한 경험이다 싶어 그날 써 두었던 글을 소환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데 밖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뭐지 하고 나가봤더니 처마에 있던 제비집이 떨어진 게 아닌가. 눈도 못 뜬 새끼 네 마리가 힘겹게 고개를 가누며 떨고 있었다. 와이프를 깨웠다. “자기야, 제비집 떨어졌어, 다 죽게 생겼어!” 위급한 호출에 아침잠이 많은 아내가 벌떡 일어나 나왔다. 유이도 덩달아 정신을 차리고 “아빠, 무슨 일이야?” 했다. 아내가 딸을 위해 만든 모레 상자 안으로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아침부터 대참사를 볼 뻔 했다.     


다음부터는 거의 ‘제비 일병(이병이나 훈련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구하기’였다. 서까래 쪽에 제비집을 다시 올려줘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이 안 왔다. 제비집은 풍비박산이 난 상황. 부모 제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당 주위를 공격적으로 날아다녔다. 주변을 둘러보자 밀짚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다리를 끌고 와 밀짚모자를 들고 올라간 후 서까래에 모자 한쪽 면을 고정시키고 주변으로 못 3~4개를 박았다. 쉽지 않았다. 못질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못하는 것 중 하나. 상체를 바깥쪽으로 빼고, 불편한 자세로 하려니 안 그래도 젬병인 못질이 더 엉망이었다. 간신히 성공. 위생장갑을 끼고 새끼들을 한 마리씩 조심히 손에 담아 모자 안으로 넣어 주었다. 이제 부모와 상봉만 하면 오케이. 그런데 부모가 모자에 앉질 못했다. 주변에서만 요란한 날갯짓을 할 뿐 번번이 실패였다.       

(나) “뭐야~ 왜 저렇게 멍청해”

(아내) “무섭나?”

(딸)“새끼들 배고플 텐데…”       

안타까운 말이 한 마디씩 튀어 나왔다. “안 되겠다. 사다리 위에 모자를 올려놓자. 아무래도 모자 안쪽으로 빠질까봐 무서운 것 같아” 아내의 제안으로 구조 계획을 수정했다. 아내는 사다리 다리 두 개를 양쪽으로 벌려 고정한 후 그 위에 모자를 올리고 주변을 박스 테이프로 둘둘 말아주었다. 제법 안정적으로 보였다. 다시 부모와 새끼의 상봉을 기다리는 시간. 이번에는 괜찮겠지 했건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제비가 저렇게 멍청한 가 싶어 포털사이트에 ‘제비 아이큐’를 검색해 보았다. “36 정도”(포털사이트에는 정말 별의별 지식이 다 나온다)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이제 부모 제비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다툼과 원망이 뒤섞이는 것 같았다. 가스 배관에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았는데 한쪽이 다른 한쪽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리로 공격을 했다. 아마도 암놈이 수놈을 원망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 숫놈이면 어떻게든 해봐. 얘들 다 죽게 생겼다고!”     


더 이상 제비 부모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상황. 다시 포털 사이트에 조류보호협회를 검색하고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주말에는 근무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새끼들이 얼마나 배고플까 싶어 직접 ‘사냥’에 나섰다. 아이 손을 잡고. 파리채를 쥐고, 거미든 파리든 모기든 뭔가 식량이 될 법한 것을 찾아 나섰다. 먹이는 생각보다 많았다. 나무 대문 주변에, 감나무 아래, 담벼락 쪽에 거미도 있었고, 파리도 있었다. 아이도 제법 능숙하게 파리채를 휘둘렀다.      

마당 수돗가에 있는 작은 스텐리스 그릇에 파리를 넣고 사다리에 올랐다. 그런데 먹이를 바로 입 앞에 갖다 대도 꿈쩍 않는 것 아닌가. 죽었나? 혹시나 싶어 입 주변을 핀셋으로 툭툭 쳤다가, 갑자기 포악스럽게 입을 벌려 깜짝 놀았다. 제비 입이 그렇게 크게 벌어지는지 처음 알았다. 한 마리씩 깨워 파리를 넣어주었다. 작은 사고도 있었다. 먹성 좋은 놈이 다른 새끼에게 갈 먹이를 순식간에 낚아챈 것이다. 사다리에서 내려 급한 데로 한 마리를 더 잡아 입에 넣어주었다.      

부모 제비의 행동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아예 자리를 떠 창공으로 날아갔다 한 참 후에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 사이 우리 가족도 안정을 찾았다. 파리 사냥은 재밌는 놀이가 되었다. 이렇게 한 마리씩 잡아 입에 넣어주면서 새끼들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다시 돌아온 제비는 여전히 부부싸움 중. 한 번씩 우리 얼굴 쪽으로 날아 들 때는 살짝 화가 났다. 기껏 먹이 줘가며 새끼들 키워놨더니 원망만 하는 부모 같았다. “치, 걱정 말아라. 우리가 이렇게 키운다” 그런데 아뿔싸. 내일 여행을 가는 거다. 제비가 다시 제 새끼한테 갈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가족 편한 마음으로 여행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제비가 밀짚모자 한쪽 귀퉁이에 연착륙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먹이를 갖다 날랐다. 아침 전화 통화를 통해 저반 사정을 아는 엄마, 형, 장모님도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엄마는 “아이고 잘했다. 지 부모는 얼마나 속이 탔으끄나” 하면서 갑자기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자식 키운 부모 마음이 부모 제미한테 완전히 감정이입된 거다. 장인어른은 이러셨다. “정서방, 제비가 내년 봄에 박씨 물어 올란가 아냐. 잘했다”

오후. 부모 제비는 계속해서 먹이를 잡아 나르고 새끼들은 기력을 차렸는지 먹이를 받아먹을 때 마다 제법 큰 소리로 짖어댔다. 평온하고 행복해보였다.     


그날 밤, 아내와 얘기해 로또를 샀다. 그리고 다음 주. 결과는 꽝. ‘그래 겨우 이정도 해놓고 로또를 바라다니 말이 돼?’ 하면서도 아내에게 이랬다. “제 새끼 네 마리를 다 살렸는데 은혜도 모르는 것들!” 진심이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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