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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um Mar 02. 2020

불청객 03

“바퀴벌레가 어떻게 방 안에 들어왔을까?” 나는 창문을, 아내는 화장실 하수구를 의심했다. 그날 이후, 나는 창문을 함부로 열지 않았고, 아내는 화장실 하수구 뚜껑을 절대로 열지 않았다. 이런 예측과는 다르게, 죽은 두 마리 바퀴벌레는 애초부터 방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방 안에 퍼진 죽음의 향기를 맡은 걸까? 동족의 피 냄새를 느낀 걸까? 피도 눈물도 없는 살충 인간이 등장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진 걸까? 한동안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 두 사람 눈에는 포착되지 않았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아침마다 망고를 꾸준히 먹는 호사를 누렸고, 얼려 먹는 두리안은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반 위에는 4종류의 바나나가 각각 다른 색을 뽐내며 익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 놔두어도 노랗게 변하지 않는 바나나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고, 익지 않는 바나나는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야 하는지 몸소 익히기도 했다. 과일의 여왕이라는 망고스틴은 겉모습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었고, 애플 망고는 애플과 망고를 합친 맛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과일들이 세상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치앙마이에 와서야 알았다. 덕분에 식당에 가서 마이싸이팍치라고 외칠일은 없었다. 한국에서부터 익혀 온 몇 안 되는 태국어 중의 하나였지만, 쓸 기회가 전혀 없었다. 또한, 누구나 고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내의 고수는 나의 고수가 되었고, 나는 점점 고수의 고수가 되어갔다. 자기보다 고수를 더 좋아하는 남편이 못마땅했던 아내는 결국 고수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질투는 때때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고수를 싫어했던 아내조차 고수를 좋아하게 만들었으니까. 적어도 고수를 좋아했던 남편을 이해할 수는 있을 만큼, 아내는 고수 맛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태국의 모든 음식에 마음을 열었던 건 아니었다. 여행 첫날 먹은 카오소이는 치앙마이에서 단 한 번만 먹을 수 있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음식점이 카오소이 전문점이었다는 것이 죄라면 죄였다. 한국의 카레와는 살짝 다른 맛일 거라는 막연한 추측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카레라면 뭐든지 다 좋다는 아내의 말이 만용이라면 만용이었다.


카오소이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음식이었다. 그 강렬한 첫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와 다르게 아내는 첫입부터 그 맛을 못 견뎌 했다. 한 번 각인된 음식의 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후로 아내는 카오소이라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도리질부터 쳤다.


태국 음식에 호기심이 많았던 난, 빠르게 거리의 음식으로 눈을 돌렸다. 거리의 음식은 싸고, 다양했고, 때때로 비위생적이었다. 살짝 덜 익은 꼬치를 먹었던 날, 망고에 연유를 뿌린 밥을 먹었던 날, 유난히도 살점이 없었던 닭튀김을 먹었던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거리 음식의 향연을 마음껏 즐겼던 그 날 이후, 결국 아내는 탈이 났다. 똑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나는 멀쩡했고, 아내는 아팠다. 장염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배가 아프고, 바나나만 먹어도 설사가 나오는 병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게 화장실에 갔던 아내가 황급히 뛰쳐나왔다. 얼굴이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몸이 너무 아파서 공포에 짓눌린 사람 같았다. “많이 아파?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눈치 없던 나는 아내에게 이제 더 참지 말고 병원에 가자고 다독였다. “아으아! 아아아!” 아내는 괴상한 신음을 내면서,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르쳤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신음이었다. 나는 아내의 다음 말을 더 기다리지 않고, 화장실로 달려가, 활짝 문을 열어젖혔다.


사방이 온통 하얀 타일로 되어 있는 화장실 안. 평소와는 다르게 들어서자마자 기분 나쁜 축축함이 온몸을 와락 껴안는다. 단순히 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통 하얗게 보여야 했던 벽, 순백의 벽, 그 한가운데 구멍이 있었다. 누군가가 콕 찍어놓은 듯한 방점이었다. 지금껏 까맣게 잊고 있던 존재였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제껏 본 것 중에 가장 큰 바퀴벌레였다. 순간, 내가 바퀴벌레를 제압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머뭇거리는 순간, 벽이, 하얀 벽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화선지에 먹이 번져가는 것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더 번지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화장실 벽이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 차기 전에 뭐라도 해야만 했다. 당황한 나는 빗자루도 없이, 빗자루를 잡을 생각도 못한 채, 벽을 내리쳤다. 맨손으로 벽을 철썩 때렸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내 오른손이 화장실 벽에 마주치자마자, 다행히도 벽은 더 물들지 않았다.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손바닥 안에서 뭔가 꿈틀대고 있었다. 뜻밖에도 바퀴벌레는 아직 살아 있었다. 나는 그것이 더 꿈틀대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지긋이, 여러 번 누르기 시작했다. 벽을 내려친 내 손바닥이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늘 밤 또 악몽에 시달릴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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