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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Oct 11. 2016

사폭 바지 휘날리며 런던으로 간다

런던 여행 1 -  인천 공항 풍경도 놀라운데 영국 첫인상에 더 놀라!


유럽 대륙 끄트머리에서 배 타고 저 너머, 유럽인 듯 유럽 아닌 그런 땅.

그곳은 이상하게도 참 낯설고도 먼 곳이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하면서도 비행기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너무나 멀었던 느낌에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곳이다. 발 밑의 땅을 느끼며 갈 수 있는 곳도 서로 다닥다닥 붙어 유럽 대륙에 많으니 굳이 비행기를 타거나 아니면 해저 터널을 건너 그 섬을 찾아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유학시절을 보내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나서 내 생애 처음으로 영국에 간다. 


이번 여행은 어딘가 뭔지 모르게 한껏 설렌다. 바다 건너 섬나라 영국을 간다 하니 기대감에 어쩔 줄 모르겠다. 뭔가 낯선 것이... 영국인의 악센트 강한 영어에선 타악기 선율 같은 리듬이 들릴 것 같고, 우산을 든 젠틀맨과 영국식 정원과 애프터 눈 티에서는 색다른 향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역에 내렸을 때, 마치 개코처럼 내 코를 벌름거리게 했던 잊지 못할 유럽의 첫 향, 낯선 여행자를 맞이하던 그 구수한 그 빵 향기처럼 런던도 고유의 향이 있겠지? 이런저런 아주 아주 사소한 궁금증이 머리 속에서 맴돌며 흥분을 가중시켜 점 점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다.


얼마만인지... 이런 낯선 것에 대한 설렘!


인천 국제공항에 일찍 도착하여 하릴없이 서성거렸다. 맘은 설레고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그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가야금과 해금, 대금과 장구를 치는 네 명이었다. 한복을 만들고 디자인하다 보니 시선도 달라져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본업 때와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배씨 댕기 한 모습이 참 단아하다. 자세히 보니 여인네 치마와 대금부는 도령의 바지까지 모두 살구색으로 하의 색은 통일하되 색이 겹치지 않게 가야금은 초록색 저고리, 해금은 연노랑색 저고리, 장구는 진한 파란색 저고리로 색을 달리했다. 고름 색은 달리 하나 또한 깃머리 부분을 검은색으로 달리하여 세 개의 금박을 찍어 다시 앙상블의 통일성을 살리고 있다. 특히 대금부는 도령은 연한 회색 답호를 입고 그 트임으로 주황색 바지가 보여서 아주 세련돼 보인다. 본견만이 낼 수 있는 여리려리한 색감은 단아하고 기품 있어 보인다. 뒤의 8폭 병품의 은은한 문인화와도 아주 잘 어울리지 않은가!


전통 국악 연주, 곱게 차려입은 한복의 색감이 참 따뜻하다.
어린이들이 병풍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다.


한국 전통인형도 아름답게 한복을 입혀 놓았다. 쪽진 머리도 단정하고, 진짜 비녀를 꽂고 있다. 풍성한 머리숱이며, 저 손에 든 부채하며, 치마의 꽃마저도 심지어 손자수다. 오른쪽 인형은 나빌레라 춤을 추고 있는데 저 속치마와 하얀 꽃신 좀 보소! 두 인형의 백미는 저 두꺼운 동정! 요즘은 두꺼운 동정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 인형들에서도 두껍고 정확하게 각도를 맞춘 동정이 한복 전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실제 옷 사이즈보다 인형 옷 만들기가 더 힘들다는데 어느 분의 솜씨인지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어가행렬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왕과 왕비가 공항을 행진하며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전통미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가려는 영국에도 여왕이 있는데...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이 여왕의 대관식 장면이라도 재현해 주려나? 그럴 리가 없을 것을 알기에 우리 왕과 왕비가 공항에서 이런 볼거리로 나서는 게 내 눈에는 안쓰럽게 보여 왠지 즐겁게 볼 수가 없다.



하늘색 당의, 배씨 댕기와 뒤꽂이, 노리개와 스란치마까지 모두 이쁘고 이쁘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 차림새를 가만히 내려다보니 600년이 넘는 조선왕조 시대에 선조가 즐겨 입었던 한복의 맥이 왜 끊겼을까.. 박제화된 전통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고 그래서 살아있는 전통이었음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 옥토버페스트에서처럼, 일본의 하나비 축제에서처럼 즐겨서 한복을 입고 나갈 수 있는 축제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나저나 우리 공주님은 그 어여쁜 미소에 한복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이런 afternoon tea 세트는 또 어떤가! 연분홍, 진분홍 진달래가 꽂혀 있는 화병 옆에 유기 삼단 트레이를 놓고 그 위에 또다시 연분홍, 진분홍 진달래를 얹어 놓으니 우아미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전통미에 다시금 감탄하며 삼단 트레이의 기둥 모양을 보니 이건 대나무! 



볼거리 즐길 거리 많은 공항을 떠나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부터는 긴 긴 시간 꺾여져 있을 허리와, 얼굴을 조여 오는 건조함과, 삼시 세끼 제공되는 기내식에 적응해야 하지만 그런 기내 일상 말고도 섬세해진 시선은 색다른 눈을 뜨게 한다. 피곤한 눈을 비비다 가만히 반쯤 불 꺼진 비행기 동체를 쳐다보니 이렇게 곡선이 아름다울 수가 없다. 지금껏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곡선에 마음도, 시선도 뺏겨 한동안 넋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길고 긴 비행기 속에서 죽어도 안 갈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영국 상공으로 진입했다. 비행기 창으로 내다본 영국!

이런! 영국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계획도시! 근대적 질서와 규율, 통제, 감시사회!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등... 


근대와 규율, 통제에 관한 많은 책이 순식간에 머리를 흩고 지나간다. 강의하고 연구하던 본업 내내 읽었던 근대에 관한 모든 책이 점광석화처럼 머리를 휙 흩고 지나간다. 영국이 이렇게 계획적이고 정비된 풍경일 줄 꿈에도 몰랐다. 이 첫인상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내 뇌리에 박혔다. 이 인상은 여행 내내 나의 런던 여행을 동반했다. 왜 어떤 여행자도 이런 인상에 충격을 받지 않았던 걸까? 왜 이런 우리와 다른 낯선 모습에 놀랐다는 말이 없을까? 난 무척이나 놀랬고 그래서 설렜고 이 낯선 나라가 나에게 열어줄 신비한 문을 기꺼이 열고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는 여성미 가득한 치마 저고리 대신에 남자의 옷이었던 사폭 바지를 가져왔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여행할 때 늘 한복을 가지고 왔지만 이번에는 대님으로 동여매고 휘휘 허리춤 접어 끈으로 매는 사폭 바지, 어떻게 보면 참 펑퍼짐해 보여서 스타일 별로지만, 또 어떻게 잘 매치하면 굉장히 아방가르드 해 보일 이 옷을 입어볼 요량이다. 런던에서 보내게 될 이번 여름에 사폭 바지와 가죽 재킷 차림으로 영국을 누비며 과연 사폭 바지가 세상에 더할 나위 없이 편하면서 현대적인 한복 차림에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런던 지하철 역사 안에서 사폭바지 차림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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