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속에 빠져버린 나를 구하는 일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게 많은 아이였고, 부모님께 그리도 혼나기를 반복하면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절대 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뭘 아무것도 안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10대에는 축구에 빠져 하루 온 종일을 축구 연습과 축구 공부에 빠져 살았고, 20대에는 공연에 빠져 여기저기 공연 현장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어렸을 때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스무살 무렵에는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물론 지금도 나는 하고 싶은게 많다. 브랜드를 만드는 브랜드 디렉터가 되고 싶고, 투자자로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병행하고 싶다. 하지만, 스무살 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쉬웠던 내 뜻대로 사는 삶이 앞자리 하나 바뀌었다고 덜컥 무언가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사회의 시선과 기준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사회는 서른이 넘은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지도 그리 달가워하지도 않는 듯 보였다. 그냥 지금 하는 거나 잘하고 살라고, 지금 속한 조직에 순응하고 맞춰가며 살아가라고 등 떠밀었다. 그럼에도 나는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다며 발버둥쳤지만 결국 무엇하나 제대로 한게 없었다. 워낙 성격 자체가 유별나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해야만 한다고들 하는 것)을 8시간 동안 하고나면 집에 돌아와서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었다. 그다니 내키지 않는 걸 억지로 억지로 참아내며 해야하다보니 집에 돌아오면 에너지는 이미 방전 상태가 되곤 했다.
그렇게 2년 차에 접어들었고, 나의 하루는 보통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리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분노가 말 그대로 치밀어 올라왔고, 종종 스스로 주체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로 화가 가득해졌다. 뿐만이랴, 평화롭고 행복해야 할 주말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다음의 한 주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토요일의 시작은 더 가까워진 월요일을 두렵게 했고, 일요일의 아침은 이미 시작된 것만 같은 한 주에 대한 생각으로 우울했다. 그나마 헬스장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고강도로 운동을 하고 그 마저도 모자라 해가 지고 나면 다시 밖으로 나가 동네를 뛰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기획도 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최대한 나의 지금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마저도 얼마가지 못해 손을 떠났다. 억지로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했다. 아니 받고 있다. 어쩔 도리 없이 내 앞에 놓여진 지금의 상황에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와중인 지금. 대체 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심연 속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나를 구할 방법이 있을까? 구렁텅이에 빠져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발버둥 칠 수록 더 깊게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계속 해 나아가다보면 방법이 보인다는데 나에게는 그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움직일 수록 더 벽에 부딪혔고, 발목이 꺾였으며,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하..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여느 때와 같이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약간의 멀미감을 느끼며 잠들었다가 깬 퇴근길. 어느 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는지 해가 많이 짧아져 이미 밖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게 싫어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상 밖을 바라보는게 싫어 억지로 눈을 꼭 감았다.
버스는 계속해서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달렸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리기 시작하며 버스 안이 어수선해졌다. 눈을 떠 창밖을 바라보다 정말 문득 '글이라도 써볼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뭐 대단한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지금 내 이 답답한 상황을 어딘가에는 털어놓고 싶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 답답하고 두렵고 우울한 이 감정을.
그래, 글이라도 써보자. 어떤 이야기를 쓸지, 언제 쓸지 이딴 건 고민하지도 말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내려 가 보자. 그냥, 글을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