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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Jan 27. 2022

나는 왜 일을 :열심히: 할까

지금도 충분히 100점일 것 같은데.


 최근에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몸도 몸이지만, 심적으로 20배는  힘들었던 작년 여름. 원인은 역시나 일과 사람이었다. 생각만큼 내가 일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까지 겹쳐 한없이 작아지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술도 자주 마셨다. 어디 가서 "나는 슬퍼서, 힘들어서  먹는 편은 아니야."라고 말하던 나였는데,  당시에는 술을 먹어서라도 마음을 달래고 싶었나 보다. 술을 마시면 한참을 울었다. 심지어 술을 같이 먹어주던 친구는 달랑  명이었는데, 날만 다를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말하며 울었을 것이다. 덕분에 소주만 조졌더니 주량과 뱃살이 급속도로 늘었다. 이득.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내 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때다. 일을 하며 작업물이 나오면 소심한 관종인 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고, 곧장 지인들로부터 반응이 왔다.

종훈이는 정말 재밌는 일을 하고 사는 것 같아.

너무 부럽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돈 벌잖아.

형, 저도 이런 일 해보고 싶어요. 재밌을 것 같아요.

이런 것도 직접 하는 거예요? 와..

 이러한 반응들.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기에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있다며 쿨하게 이해하면 끝인데, 계속 나를 모질게 긁었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정말 이 일을 재밌게 하고 있는 건 맞을까, 재밌는 일만 골라 하다가 버릇 들어서 머리만 커지면 어떡하지.


 그럴 만도 했던 게 내가 하는 일이 뚜렷하지 않았다. 혼자서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어디 가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말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에 친구들은 자신이 선택한 길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이 났다. 디자인 전공자가 내 작업물을 보고 "이거 직접 디자인하신 거예요?" 물으면 "진짜 허접하네요!"라고 할까 봐 쫄면서 대답했다. 디자인을 비롯한 (필요에 의해서 했던) 개발, 마케팅, 브랜딩까지 구석구석 쫄보였던 나. 아마 그 많은 업무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어도 선뜻 택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성인을 위한 키자니아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일 때문에 우울한 시기였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재밌게 일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고 하니 이 차이에서 묘하게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껏 무슨 일이든 재밌으면 했고, 흥미가 떨어지면 끝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이가 어렸고, 돈에 대한 걱정을 '일단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근데 스물아홉의 나는 슬프게도 나이가 어리지 않고, 돈에 대한 걱정도 '이제는'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너무 바빠서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졌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꼭 답을 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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