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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Feb 01. 2022

'아무튼 출근'할 나의 마음가짐

퍼레이드 공연기획감독 유상근 님의 에피소드를 보고


 명절마다 본가에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TV를 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주로 넷플릭스 같은 OTT로 즐겨보는 프로그램을 골라볼 때와 달리 본가에 있으면 케이블 채널에서 틀어주는 대로 방송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어릴 적엔 이게 너무 자연스러운 TV 시청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색다르다 못해 어색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편성표에 내 시간을 맡기면 내가 평소 보지 않던 프로그램에서 갑작스러운 깨우침을 얻을 때가 종종 있다.


 이번 설 연휴에는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밥벌이 브이로그라는 방송 컨셉처럼 일반인이 자신의 직업을 밝히며 직장 브이로그를 찍는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적 성향이 있는지라 유튜브에서 몇 차례 클립 영상을 보긴 했어도 이렇게 방송 전체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롯데월드 퍼레이드를 기획하는 유상근 님이 출연한 회차를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 즐거운 일을 하는 것 같아 부러움과 동시에 어릴 적 나의 꿈을 건드리는 듯한 간지러움을 느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가 있을까? 그러다 보니 내가 할 일은 테마파크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나 공연을 만들어서 행복을 줘야겠다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유상근


 남녀노소 모두가 걱정 없이 즐거움만 가득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는 유상근 님의 이야기에 갑자기 심장이 말랑해졌다(나는 이 느낌을 죄 짓고 들킨 느낌이라 말한다).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다니며 게임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나의 어릴 적 꿈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도 콘텐츠를 만들 때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노력하는데, 고등학생 때도 이러한 다짐 덕분에 내 이름이 실린 게임은 퍼즐 게임과 같이 비교적 잔잔한 게임들이었다. 쑥스럽게도 가족이 참여하는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하고 싶은 꿈도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온게임넷에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경쟁하거나, 힘을 합쳐 스테이지를 깨는 장면이 나오면 제법 신선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아마 당시만 해도 게임은 나쁘다는 인식이 강했고, e스포츠 대회 역시 스타크래프트나 서든어택 같은 게임에 한정되어 있을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꿈을 가졌지 않았나 싶다. (예린이와 곧 태어날 예린이 동생이 가족과 함께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너무 귀엽다.)


저는 (퍼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게 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되고, 보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유상근


 어쩌면 스타벅스에서 일했던 1년 6개월이 더 보람차고 즐거웠던 이유는 내가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향적이지만 초록 앞치마, 검정 앞치마를 입으면 조금은 용감해졌고, 커피라는 매개체로 낯선 사람을 고객님이라고 부를 수 있던 현장에 매력을 느꼈다. 파트너 일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나 깨달았던 점은 하는 사람이 100 만큼 즐거워도, 보는 사람에게는 100 만큼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적어도 150 만큼은 즐겁게 일하기 위해 회사의 사명과 주어진 일에 깊이 몰입했다.


 창문을 닦다가도, 테이블을 닦다가도 고객님이 지나가시면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넸다. 컨디먼트 바를 정리할 때 고객님이 정리하러 오시면 맛있게 드셨는지 물어보는 등 내 성격에는 쉽게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스타벅스 파트너로서는 너무나도 쉽게 해냈다. 뒤늦게 점장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역 매니저(DM)님이 이런 내 모습을 유심히 보시고 칭찬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생각보다 이 정공법은 쉽게 통했고, 아마 내가 죽기 전까지 평생 일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출근에 출연하신 유상근 님을 보고 (동갑으로서) 진심으로 대단하고 존경한다는 생각과 함께 어릴 적에 내가 하고 싶었던 꿈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더불어 다시 한번 내가 요즘 일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에 적당한 긴장을 주게 되었다. 나는 커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게임을 만들 것이라는 어릴 적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당장 내일부터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보는 사람에게 150 이상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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