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들어가서 공부해!
# 따라하는 삶의 시작
어린시절 나는 공부를 꽤 잘한 편이었다. 적어도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수학경시 대표도 했었고, 영어듣기 시험을 치르면 반에서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었다.
내 주변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로 가득했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공부를 잘 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시키는 걸 했을 뿐이다.
'잘 한 것'이 아니라 시키는 것을 '따라한 것' 뿐이다.
# 어머니의 바램
어린시절 우리 어머니는 바짓바람이 심했었다. 학부형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가셨고,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모임에서는 아이들의 성적비교를 줄곧 하셨다. 아마 지금 어머니(현재 55세)는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다.
그 때의 내가, 그때 어머니의 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당시 그녀가 내게 가장 많이 한 말
방에 들어가서 공부해!
그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모두 나에게 투영시켰다. 그녀의 어린시절 꿈은 선생님이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를 만나고, 나를 얻으시면서 그 꿈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 멀어져간 꿈을
나를 통해 붙잡으려 했다. 그녀의 꿈은 선생님. 그녀는 나의 전담 선생님이 되었다.
그녀의 꿈을 대신 붙잡아줄 학생으로서. 뒤에서 나를 밀어당겼다.
그렇게 나는 그녀가 당기는 힘에 이기지 못해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의 말을 '따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한가지 기억이 있다.
각도기 활용한 수학문제를 풀던 중, 화가인 작은 큰아버지가 텔레비전에 좋은 일로 나온 적이 있었다.
너무나 들뜬 마음에 계속해서 텔레비전을 보았고, 수학문제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내주었던 과제를 다 해내지 못했고 엄청난 꾸중이 나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이 말을 듣게 되었다.
방에 들어가서 공부해!
가족의 좋은 소식보다, 나의 수학 문제가 더 중요했다. 어린시절 나는 좋은 것 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계속해서 들었던 것이다. 나의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따라하는 삶은
그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이 아닌,
그녀의 곁에서 그녀와 함께 웃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