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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Feb 05. 2022

괜찮아, 홀로 격리해도

언제 어디서고 행복을 만드는 방법


이번 설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 고향인 제주에 내려왔다. 서울에 있으면서도 연구 리서치나 친구들의 경조사로 제주를 빈번히 오갔던 나지만, 코로나가 도래한 이후로는 아무래도 어려웠다. 부모님과 보냈던 명절의 기억이 어느새 희미해져서 이번 설에는 엄마의 떡국이 간절히 먹고 싶었다. 사실 떡국은 좋아하지도 않지만. 후식으로 식혜와 한과를 나눠 먹으며 설특집 TV프로그램에 후하게 웃어주는. 심심하고 무용해서 진정한 휴식으로 말할 수 있는 그런 명절을 엄마 아빠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제주에 내려온지 사흘째 되는 날, 밀접접촉자로 격리가 필요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며칠 전 함께 식사한 모임에서 한 명이 미열이 있었고 불안한 마음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고 전해왔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던 터였다. 헤프닝으로 그치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코로나가 코 앞까지 불쑥 다가와있었다. 그게 하필 설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 일요일 저녁이었다.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 격리를 할 수는 없었다. 생활공간을 분리하기 거의 불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날 밤 자가격리를 할 숙소를 급히 구하고 다음날 아침 간소하게 짐을 쌌다. 제주시 부모님댁에서 서귀포시의 숙소로 격리 장소를 옮기는덴 시청과 보건소의 승인이 필요해 수월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보건소 선별진료소가 여는 시각에 맞춰 가 검사를 받고 곧장 서귀포의 숙소로 이동했다. 운전석의 아빠, 보조석의 엄마, 그리고 뒷좌석의 나는 각각 마스크를 꼈지만 내심 형식적인 치례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 증상이 없었다. 심지어 이틀전 한라산 백록담 정상을 6시간 30분만에 올랐다 내려왔어도 근육통 하나 없이 멀쩡해서 나는 내 건강에 확신이 가득한 상태였다.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몇 가지를 대신 사와달라는 나의 청을 들어주신 후 부모님은 집으로 출발했다. 엄마는 끝까지 숙소의 찬 바닥을 걱정하다 돌아섰다.   


거실 통창으로 멀리 서귀포 앞바다가 보였다. 빛도 하늘도 바다도 너그럽게 담아주는 창이라면 격리된 외로움을 충분히 달래줄 수 있었다.


작은 부엌을 한켠에 둔 거실에는 4인 가족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소파가 놓여 있었다. 그 소파 때문에 숙소는 더 적막했다. 음악을 틀어보기도 하고 뉴스의 소음으로 채워보기도 했지만 소리는 공간을 겉돌았다. 결국 난 고요와 대면하기로 했다. 짐을 풀었다. 격리는 고작 5일이여서 많이 챙기지도 않았다. 백팩에 항시 담겨있는 노트북과 책들(제주에 내려와 집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린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여벌옷을 빼고 격리를 위해 따로 챙겨온 짐은 단순했다. 과일, 커피, 그리고 와인. 좋아하는 사과와 키위, 바나나를 고루 먹을 욕심으로 챙겼고 5일간 커피를 내려마실 드리퍼와 필터, 원두. 그리고 부모님께 편의점에서 레드와인 중 가장 근사해보이는 라벨로 집어주길 부탁했던 와인까지. 이 아이템들을 부엌에 쪼르르 세워놓고보니 웃음이 났다. 나 정말 소박하구나. 먹고 마시고 읽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구나.

 


챙겨온 과일과 엄마가 더해준 몇가지 음식거리들. 커피, 와인잔이 없어 소주잔(..)에 마신 와인.


행복이 여기 아닌 저 너머의 예외적인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려본다. 특별하지 않아도 일상의 평화가 이어진다면 그 무탈함이 바로 행복이라고. 그렇다면 내게 무엇이 가장 '일상적'인지를 안다면 일상의 시공간에서 튕겨져나와도 나는 언제 어디에서고 일상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새로움과 낯섦을 동경하고 어딘가 기이하고 극적인 경험을 열망했다. 그런 자극을 삶에 들이는데 혈안이었고. 지금도 호기심 많고 겁없는 여행가 기질은 여전하지만, 스스로에게 안정을 주는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 그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들을 간추릴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일상이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세상의 넘쳐나는 자극에 휩쓸리기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응시할 때 삶은 간결해진다. 취향과 습관은 시간이 축적될수록 선명해지고 그래서 확실해진다. 어떤 혼란이나 불행 속에서도 내게 가장 익숙한 행복을 되찾아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아빠가 곱게 갈아준 커피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붓자 삭막한 숙소 안에 다정한 향이 퍼졌다.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남향의 창 앞에 앉았다. 저물어가는 오후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커피향처럼 빛의 온기도 거실 온 공간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기대했던 가족과의 명절은 물거품이 됐고 설레며 계획했던 일정들도 포기해야 했다. 홀로 격리하는 시간동안 무의미한 잡음보다 적막한 고요을 택하게 될거란 걸 짐작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나의 행복의 모양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것에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었으니까. 무섭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 오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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