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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브라운 Aug 26. 2020

94점으로 합격했습니다


필기시험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모의고사 1000문제 중 못 풀어 본 문제가 100개 정도. 나머지 900개는 한 번씩 다 풀었는데, 남은 100개가 진짜 너무 풀기 싫어서 패스. 


1000문제 한번 보고 틀린 것만 다시 보는 정도면 되겠지 나름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날 학과 교육 들으면서 강사님이 최소 2-3번은 봐야한 다는 말에 마음이 쪼금 쫄렸다. 

"필기시험 언제 봐요?"

교육을 다 듣고 나가는데 강사님이 물어보셨다. 

"내일이요." 

"아이고 오늘 밤새워야겠네"


'어, 그런 건가' 싶어 졌다. 공부는 싫어하지만 모범생이었던 과거의 기질이 어김없이 발휘되어서, 선생님이 말하는 건 되도록이면 지키고 싶어 지는 그런 거. 차마 밤은 못 새우고. 그래도 하룻밤이지만 꽤 열심히 공부를 했다. 기출문제집을 풀기 전, 운전 앱으로 모의고사 몇 개를 풀어봤을 때도 공부 하나도 안하고도 최소 60점은 넘길래 사실 안심하고 있었는데 막상 문제집을 풀어보니 더 쫄린다. 어려워. 커트라인이 60점이라 떨어지기가 쉽진 않을 것 같지만(?) 앞으로 실제의 운전을 위해서라도, 이론 공부는 꼼꼼히 하는 게 맞겠다 생각했다. 역시 (마음은) 모범생. 


_


셔틀버스 약속시간에 맞춰 집에서 나갔다. 오전 8시 25분. 시험장이 함께 있지 않은 동네 면허학원이라 근처 지역으로 이동을 해서 시험을 본단다. 쪼르르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데 같이 필기 시험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다들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다. 앱으로 문제 풀이 중이겠지 싶어, 나도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 틀린 문제를 다시 보려고. 핸드폰을 잡고 앉아 있는 20대 사이에서, 기출문제집을 펼쳐 든 30대는 나 혼자. 운전면허 학원에만 오면 자꾸 나이 생각이 났다. 시작이 중요한데, 처음부터 30대라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연타로 듣고 나니 자꾸 의식됐다. 껄껄. 


너무 일찍 일어나 그런지, 긴장을 했는지 속이 약간 울렁거렸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놈의 긴장병. 


_


갑자기, 접수대 쪽이 소란했다. 한 수험생이 안경을 안 가져왔단다. 시험 전 신체검사를 할 텐데 그때 기준 시력이 안 나오면 시험을 볼 수가 없어서 안경이 꼭 필요하다는 설명에 수험생은 누구에겐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다 같이 시험장으로 이동해야 하는거라 우리는 다 같이 그 수험생의 안경을 기다렸다. 학원의 유리문이 열리고 수험생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홈드레스(?) 차림으로 급히 들어오셨다. 긴박하게 안경을 받고, 출발 예정 시간이었던 9시를 조금 넘긴 뒤에 출발할 수 있었다. 다 같이 승합 차에 올라타 우선 근처 병원으로 이동, 신체검사라기보단 시력 검사. 시력검사를 마치고 문진을 하는데 의사가 눈 한 번을 안 맞춰 준다. 

"괜찮으시죠? 팔다리 뭐 불편한 곳 없으시죠." 정말 이렇게 말하고 끝. 


_


신체검사가 먼저 끝난 사람들부터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렸다. 한참 지나도록 한 분이 차에 타지 않았다. 기사님이 몇 번 초조하게 바깥을 살피다가 급기야 차에서 내리셨다. 확인해보니 (아까 그분 말고) 또 안경을 안 가져오는 바람에, 안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아니 이 사람, 아까 접수대가 그렇게 소란스러웠는데 그땐 뭐 하고. 아마도 핸드폰에 코를 박고 에어팟을 귀에 꽂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일단 다 같이 기다려보기로 했다. 째깍째깍. 20분쯤 기다리다가, 더 기다릴 수는 없어서 그냥 그분이 집으로 돌아가는 걸로 마무리하고 우리끼리 출발. 내일 또 시험이 있으니까. (필기 시험은 매일 볼 수 있다고 한다. 면허 신체검사 시, 다들 안경 꼭 챙기시길.) 나도 혹시 놓고 온 게 있을까, 괜히 불안해져서 지갑에서 신분증을 한 번 확인해봤다.  


_


시험장에 도착해서 또 접수를 했다.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틀린 문제를 봤다. 설마, 서얼마 떨어질까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한편에 계속 있는 것이 자격시험이지.  


필기 시험이 있기 며칠 전 용인 자동차학원 직원분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단다. 방역 작업하고 다시 운영 중이라 다행히(!) 더 먼 지역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며칠만 빨리 시험을 봤어도 어디에 가서 봤을지 모른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오고 가는 곳에서 확진 환자라니, 들어오고 나가고 할 때마다 더 열심히 손소독제로, 열심히 열심히 소독하고 비누로 박박 손을 닦았다. 한 시간 남짓 시험장에 머무는 동안 대 여섯 번은 그렇게 한 듯. 




시험장에 들어가서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화면을 터치해서 시험을 봐야 했다. 뭔가 기계치는 이것도 불안하다. '아 종이 시험지에, 펜으로 표시하고 싶다.' 강렬한 욕구. 


시험 시작 전, 주변을 한번 둘러봤는데 대각선에 앉은 머리가 희끗한 아주머니께 눈이 갔다. 화면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안경을 코 끝에 걸치고 아주 신중하게 시험을 보고 계셨다. 내 눈 앞에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고 시험 시작. 천천히, 서둘지 말고. 다 풀고 나서 검토도 한 번 했다. 15분쯤 지나 있었다. 


마지막 합격 여부 확인 버튼을 누를 때는 별 수 없이 심장이 쿵쿵거렸다. 94점 합격. 훗 재밌었다. 하하, 이제 와서 허세. 가방을 챙겨 일어날 때도 대각선의 아주머니는 같은 자세로 화면에 얼굴을 박고 계셨다. 나가면서 슬쩍 문제 번호를 봤더니 아직도 22번. 내적 파이팅을 외쳐드렸다. 


_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해도 기준인 60점 정도는 그냥 붙는다고, 주위에서 다들 그랬다. 그렇지만 뭔가 열심히 하고 싶었달까. 너무 생소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운전에 대해서는 겁도 워낙 많아서 돌다리를 열심히 두들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직접 운전대를 잡아서 차를 굴리는 감각에 대해서는 도통 자신할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시험 공부는 열심히 해야만 했다. 


그렇게, 94점 합격이라니. 마음에 드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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