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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Aug 25. 2020

면허 따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지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사이에 두 달 반 정도의 텀이 생겼다. 그 사이에 운전면허를 따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많다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한 달 반이 지나 있었다.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한 달, 한 달이면 충분하지 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집 근처에 있는 면허학원에 찾아갔다. 


접수 직원은 책상에 놓인 탁상달력을 내 쪽으로 돌려 보여주며, 필기시험 날짜와 기능 연습 일정, 기능 시험 날짜를 바로 정하라고 했다. 도로 주행 일정도 궁금했다. "필기랑 기능 둘 다 바로 붙으면, 도로 주행 시험은 언제 볼 수 있나요?" 한 달 안에 시험을 모두 볼 수 있을지, 마음이 조금 급해져서 물었다. 시험에 떨어진다는 생각은 내 머리 속에 없었다. 운전에 대한 자신은 전혀 없으면서도 '두 시험 모두 바로 붙는다' 가정하에 일정을 계획 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주위 사람 대부분 거의 한 번에 붙었으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대강 말씀해 주시는 시험 일정이 내가 다시 상주에 내려가야 하는 4월 중순을 훌쩍 지나 있었다. 한 달이면 충분할거라 생각했는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학기라 그런지 수능을 본 고3학생들이 많은 탓도 있고, 코로나 19로 인해 시험 횟수를 줄이고 정원을 줄이는 등, 평소와 다른 상황인 탓도 있었다.   


"제가 4월 중순부터 지방에 일을 하러 내려갈 예정이라 혹시 조금 빠르게 볼 순 없을까요?" 


한 달 반을 미루다가 이제 와서 이렇게 조른다고? 혹시나 해서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여쭤보니 접수 직원분께서 잠깐 뜸을 들이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신다.  


- 음, 몇 살이세요? 


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물어보시기에 나도 모르게 술술 내 나이를 말했더니, 미안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하신다. 


- 이십 대 초반 분들은 정말 잘하세요. 쉽게 쉽게 붙으시더라고요. 근데 서른 중반 넘어가면 아무래도 조금씩 어려워하세요. 기능 바로 붙으시면 도로 주행 일정은 제가 좀 조정해드려 볼게요. 


아이고 그렇구나. 나이에 따른 반사신경 뭐 그런 건가, 예상치 못했던 나이 공격(?)에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겠으니까. 


_


등록 후 결제를 했더니 모의고사 문제집을 내주신다. 다음 날 학과 교육을 받고, 또 하루 있다가 필기시험을 보고, 그다음 주에 교육을 받고 기능 시험을 보는 일정. 


모의고사 문제집에는 문제가 1000개나 있다. 여기에서만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문제집만 외우면 된단다. 이게 얼마만의 공부냐. 집에 와서 오랜만에 공부를 위해 책상에 앉아, 1번부터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빽빽하게 박힌 글씨 때문에 눈이 팽팽, 갑자기 수험생 모드로 알람을 맞춰가며 문제를 풀었다. 너무 관심이 없던 분야(?)라 단어도 개념도 생소하기 짝이 없다. 문제와 답을 그냥 한 번씩 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진짜 운전의 이응에도 관심없고, 관심없으면 아에 신경도 안 쓰는 편이라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표지판들도 너무 낯설고 용어도 엄청 어려웠다. 그래도... 비보호 좌회전 전조등 상향등 이런것도 아에 몰랐는데, 수개월동안 룸메이트의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게 꽤 많이 도움 된다. 물론 정확한 개념은 모르지만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아 그때 룸메가 사고날 뻔 했던 상황이다. 아 그때 룸메가 소리 질렀던 상황이다. 


필기시험을 위한 증명사진도 찍어야 했다. 이건 또 얼마 만의 증명사진인지. 친구가 보통 면허 학원에 즉석 사진기가 있다고 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학원 직원분께 여쭤보니 목소리에 확신이 없다. 


- 아 즉석 사진기로 찍을 수 있긴 있는데... 이걸 면허증 사진으로 해도 될래나... 하고 싶으려나.


계속 머뭇머뭇거리시길래 뭐 때문에 그러냐 되물으니 “그 뭐냐 포토샵 같은 게 안돼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굳이 포토샵 한, 잘 나온 사진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직원 분의 말에 귀가 팔랑거렸다. 사진관을 검색해서 동네 사진관에서 찍기로 했다. 아마도 포토샵 해주는 사진관에서. 



모의고사 문제집을 좀 들여다봤다고, 사진 찍으러 가는 길 횡단보도 근처에 지그재그 안전표시가 눈에 보인다. 산책하며 자주 건너던 횡단보도인데 처음으로 지그재그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횡단보도 근처니 서행하라는 거구나. 역시, 알면 보인다. 


_


“눈 선명하게 뜨시고요." 이 말에 부릅 부릅 열심히 눈에 힘을 줬는데, 다 찍고 나서 인화할 사진을 확인하니... 

마치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며, 그 순간 작정하고 눈을 치켜뜬 것 같은 얼굴이 두어 개, 그게 또 스스로 웃겼는지 콧구멍이 커지고 입이 오물오물 웃고 있는 사진이 두어 개. 그리고 가만히 다문 입술이 하나. “눈 이런 건 안될 것 같고, 여권 사진은 웃고 계신 건 안되고요.” 분명 이런 건이라고 말했다. (내 눈이 왜! 뭐! 선명하게 뜨라며!) 그러니 고를 게 하나밖에 없었다. 즉석 사진기에서 찍었으면 뭐가 얼마나 달랐을까. 훨씬 더 별로였으려나. 훨씬 더 웃겼으려나. 잘 나왔다 좋아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찍은 증명사진이 좀 즐거웠다. 


며칠 전 부스스하게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내게 엄마가 “무료하면 뭘 좀 해봐.” 하길래, 전혀 무료하지 않다며 발끈했는데. 아니었나. 무료했던 건가. 면허 등록을 하고 증명사진 찍는 것 정도로도 분명 약간 들뜨는 기분이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필기시험 보기 전, 학과 교육받으러 학원에 갔다. 학원 셔틀버스를 타자마자 기사님이 대뜸 말씀하신다. “늦었네” 

나 분명 일찍 나와서 약속 장소에서 5분은 넘게 기다렸는데 무슨 말씀이신가 했더니, “요즘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바로 면허 따는데 늦었네.” 면허 따는 게 늦었다는 말씀이셨다. 아니 고작 삼십 대한테도 자꾸 늦었다 그럴 거면, 운전면허 시험에 20대 나이 제한 두던가. 발끈한 건 아니다. 

그냥 "그러게요" 동조해드렸더니 기사님의 말이 길어진다. “나이 들면 겁이 많아져서 어려워, 애들은 시험보다 어디 부딪혀서 사고 나도 깔깔 웃어.” 그러면서 쫄지 말란다. 옆에서 선생님들이 브레이크 밟아주니 걱정 말고 과감하게 하라신다. 과감하게. 운전이라니. 벌써, 운전석에 앉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슬쩍 무서운데, 과감해야 한 한다니. '노력해볼게요' 말도 겁도 속으로 삼키며 고개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뒤돌아 학원으로 들어가는 내 등에 대고 기사님이 인사를 하신다. 

“잘 할거 같아” 덕담이 감사해 인사를 하려고 뒤를 돌았다. 


"우리 아줌마는 왠지 잘하실 거 같아”

아줌마... 꾸벅 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나도 내가 왠지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운전에 엄청 감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때까지만 해도 진심으로 조금 기대를 하고 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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