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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Aug 24. 2020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면허를 땄다. 차를 샀다.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내 인생에 꽤 많은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다. 그중 제일은 운전이었다. 사는 곳을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긴 것보다, 책을 한 권 만든 것보다, 사실 내게 제일 새롭고 낯선 일은 내가 운전을 시작하게 된 일이다. 


서른 후반에 시작된 일. 남들보다 많이 늦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그런데 뭐 '운전하기 알맞은 나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늦을 건 또 뭐고 이를 건 또 뭔가. 그동안 주변에 운전을 하지 않거나 차가 없는 사람은 꽤 있었지만, 면허 자체가 없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 당연히 면허를 따고, 운전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한 건 아닌데, 나도 그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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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 방송인 타일러가 나왔다. 환경에 관한 책을 쓰고 작가로 출연한 그가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선택지가 넓어지고 자신에게 알맞은 걸 추구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얘길 하며 운전을 비유로 들었다. 미국 사람이면 운전을 해야 한다고, 누구나 생각한단다. 강세를 주며 당연히, 무조건, 이라는 말을 연거푸 써 강조했다. 얼마나 당연하냐면 주마다 발급하는 신분증은 면허증이 기준이 된다는 것. 사회자가 이 말을 듣고, "아- 사람이면 운전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자 타일러가 대답한다. "사람이면 운전을 해야 하고, 신분증은 곧 면허증에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약간 놀라웠다. 미국에서 면허증이 아닌 신분증을 원한다면 따로 가서 신청을 하고, 비운전면허 신분증(nondriver licence: 정식 명칭은 아닐 거다, 뭐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 설명한 부분) 같은 것을 발급받아야 한단다. 신분증의 기본은 운전면허이기 때문에, 아닌 걸로 하고 싶으면 특별하게 새로 발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 미국인에게 운전은, 기본 세계관 같은 거라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거리며, 교통편이며, 실제로 운전을 하지 않으며 살기 어렵다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타일러가 그런 미국을 떠나 한국에 살게 됐다. 한국은 어떤가. 여기서 잠깐, 타일러가 '한국'이라고 말했지만 정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타일러는 한국 중에서도 특별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서울은 어떤가. 서울에서 운전은 필수가 아니다. 하고 싶으면 하는, 조금 더 편해지기 위한 선택 같은 것이다.


타일러는 말한다. 다른 나라에 정착해 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무조건이 아니라 모든 것은 선택이구나 라는 것.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 반드시라고 생각했던 것조차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깨달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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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에게 운전은 필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서울에서 나는 거의 평생을 살았다. 그러니 나에게 처음부터, 운전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학교도 직장도 늘 집에서 한 시간 안짝의 거리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2004년 시작된 대중교통 환승제도 이후 심지어 대중교통 이용은 편안함을 넘어서 만족스럽기 까지 했다. 평생 살아온 서울에, 앞으로도 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앞으로도 아마 내가 운전을 하게 될 일은 없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남들이 '그 나이가 되도록 어째서 면허를 따지 않았냐'라고 물어봤을 때 답하는 공식 답변이고. 


대중교통이 편한 서울에 산다는 이유 말고도, 조금 더 따져보면 운전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있었다. 운전면허를 따는데 드는 비용이 꽤 비싸다더라, 운전면허를 따고 바로 운전을 하지 않을 거면 결국 운전할 때 다시 연수를 받아야 한다더라, 차를 사면 돈을 못 모은다더라, 유지비가 꽤 많이 든다더라 같은 이유들. 결국 다 돈이랑 연관이 있는 이유들. 

어차피 바로 차를 사서 운전을 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혹시 면허를 따게 된다면 운전이 꼭 필요할 때, 그때에 따는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운전하지 않는 삶에 점점 최적화돼가는 인간에게, 면허가 필요한 순간은 딱히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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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갑자기 시골에 살게 된 것이다. 경상북도 상주, 무려 '시'지만 시골은 시골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는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처럼 못 가는 곳 없이 다녔다. 그렇게 한 6개월 살아보니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주에 처음 와서 6개월 동안, 나는 내 평생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자주 "운전 안 해요? 면허 안 따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시골은 운전이 필수라고 했다. 운전도 못하는 사람이 겁도 없이 시골에 살러 왔냐고 했다. 한 번씩 고민이 시작됐다. 필수라는 말 앞에 피어오르는 거부감으로 끝(?)까지 좀 버텨볼까? 6개월 동안도 안 하고 잘 살았는데 뭐, 오기를 부리다가 그러지 말자 마음 먹었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운전을 하고 안 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은 일에 돈을 들이는데 익숙하지 않고, 경험하는 것에 다소 인색하다는 것을(자주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곳에 살아보기로 쉽게 결정하는 사람이 무슨 소리냐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에게는 나만 아는 그... 마지노선이 있다). 그 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건, 내가 나 자신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나은 환경으로 변화시키는데 좀처럼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나아지고 싶었다. 달라지고 싶었다. 내가 앞으로 운전을 하며 살건, 하지 않고 살아가건, 그건 두 가지 삶 모두를 경험해보고 선택하고 싶었다. 


미국인 타일러가 한국에 와서 운전을 하지 않고 일상을 사는 선택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듯, 

도시 사람인 나는 시골에 와서 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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