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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Aug 29. 2020

첫 번째 기능시험 실격


드디어 기능 시험 날이 됐다. 계속해서 분명, 당연히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험장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점점 자신감이 차올랐다. 거진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험을 봤는데 떨어지는 사람이 손에 꼽혔다. 그러니 점점 확신을 했었나 보다. 아 이렇게 다들 붙는 거구나. 나도 당연히 붙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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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기다렸다가 1시간 반 만에 시험을 봤다. 그 사이 긴장이 다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운전석에 앉자마자 다시 긴장이 차올랐다.


의자를 조절하고 안전벨트를 매고, 사이드미러 백미러를 조절하고. 시동을 켜고. 와이퍼 조작 성공, 기어 변속 조작 성공. 출발이 좋다. 왼쪽 깜빡이를 넣고 출발. 시작하자마자 첫 코스 T자 주차에서 두 번이나 삐끗했다. 감점 10점씩 두 번. 80점이라니, 이제 1점도 깎이면 안 된다는 것에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앞으로의 코스에서는 실수할 일 없으니까 괜찮다 괜찮다 생각했다. 침착해야지, 침착해야지. 


그리고 종료선을 2초 앞에 두고 갑자기 내 차 번호와 실격이라는 안내가 시험장에 울려 퍼졌다. 코 앞에 종료선이 있었는데 실격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는데 시간 초과였다. 아니 시간 초과라니, 그건 예상에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내가 머뭇머뭇 내리지 않자, 선생님이 다가와 얼른 내리라고 재촉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데, 그 순간의 내 감정 상태는 당황에서 화로 바뀌었다. 엄청 엄청 화가 났다. 내가 제대로 못했으니 떨어진 건데 이상하게 화가 났다. 


차에서 내리고 나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기능시험을 보는 도로에는 최소 3-4대의 차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타이밍이 좋지 않으면 앞차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하필이면 나도 출발하자마자 T자 주차에서부터 앞 차랑 타이밍이 안 맞는 바람에, 뒤에 있던 내가 자주 멈춰 서야 했다. 주차가 끝나고 기다렸다가 앞차가 출발하길래 나도 출발하려는데, 기다렸다 출발하려는데 앞차에 돌발 미션, 나도 따라서 급정거를 해야 했다. 그리고 신호등 앞에서 또 한 번, 앞차가 가길 기다려야 했다. 내가 조바심을 내는 게 차 밖에서도 티가 났을까? 도로 옆에 서 계시던 선생님께서 "너무 붙지 말고 공간 잘 확보하고 가셔야 해요" 멀리서 소리를 질러 주의를 주셨다. 


실격의 이유를 곱씹다 보니 앞차 때문에 허비한 시간이 자꾸 생각났다. 아- 종료선까지 딱 2초가 모자라 실격을 했으니, 너무너무너무 억울했다. '그때 멈춰 기다리지만 않았어도 합격인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자 걷잡을 수 없었다. 안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시험을 재접수하러 가서 안내 직원분께 항의를 했다. 처음에는 단지 나의 억울함(!)을 말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내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재접수 안내를 하며 '저희야 모르는 일이죠,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기계로 합격, 불합격 처리를 하는 건데 저한테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에요'라고 이마를 찌푸리며 말씀하시는데 불끈 화가 솟았다. 거기서 또 멈추지 못하고 시험장으로 다시 갔다. 좀 전에 멈춰서 기다리라 주의를 줬던 선생님을 찾아가서 말했다. 


"앞차 때문에 시간을 지연하는 바람에 시간 초과로 떨어진 것 같아요. 아까 보셨잖아요. 간격 확보하라고 주의도 주셨고요."


내 항의에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듯 말씀하셨다. 


"시간 초과고 뭐고, 아까 운전한 거 기억 안 나요? 마지막에 커브 돌며 들어오면서, 옆에 타이어 범퍼 쓸고 간 거. 사실 거기서 이미 실격이에요. 그건 사고라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실격인데 맨 마지막 코스라 그냥 지나가 줬더니 무슨."


그랬다. 흥분하는 바람에 잊고 있었지만, 사실 종료 선 직전 마지막 커브에서 도로 오른쪽에 붙은 타이어 범퍼를 쓸고 종료선으로 진입했었다. 커브에서 핸들을 너무 늦게 꺾었는지... 간격이 안 나와서 오른쪽 옆을 쓸고 지나간 거다. 띠- 하는 경보음이 따로 나지 않길래 '오, 쿵 하고 박은 게 아니라 스치는 정도는 괜찮은 건가 보다' 했더니. 이미 거기서 실격 사유였나 보다. 하긴 실제 도로였다면 그건 사고니까. 


원래 실격이었다는 말을 듣고 기세가 꺾인 나를 보시더니 선생님이 덧붙이신 말씀, "앞에 차 기다리느라 몇 초 지연한 게 문제가 아니라 직선 서행 구간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너무 천천히 주행한 게 문제예요. 거기선 브레이크 때고 그냥 달려야 하는 거예요. 다음 시험 볼 때 꼭 기억해놔요." 

아... 내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도 몰랐다. 


뒤돌아 나와, 다시 접수대로 와서 재접수를 했다.





주차선 위반 1회, 주차 시간 초과로 초반에 20점 감점. 그리고 마지막 종료 글자 코 앞에서 시간 초과로 최종 실격. 사실은 그전에 이미 차가 타이어 범퍼에 닿았으므로 사고 실격이었다고 하고. 아아아 총체적 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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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이 지나야 재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접수했다. 실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음 시험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번 시험처럼 안 하던 실수를 하면 또 떨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 전체적으로 좀 급한 편이라고, 시간 여유가 많으니 천천히 정교하게 운전해보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독으로 작용했다. 


주차도 시간 초과, 코스도 시간 초과라니. 적당히 천천히 했어야지 원. 

첫 번째 기능 시험 결과 실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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