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에서 조금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주일 만에 면허시험장에 다시 왔다.
내가 자꾸 시험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실수 때문이라고 여전히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시험을 본다 해도 붙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또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실수도 실력이라는 말이 왜 있겠어. 별 수없이 연습이 더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2시간 교육을 더 받고, 시험을 보기로 했다. 봄이 오고 있어서 날이 너무 좋고, 면허 시험장에는 꽃도 많고. 나는 떨리고. 운전석에 앉은 기분이 여전히 좋지 않고.
2시간 연습을 하고 나니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운전 선생님을 바꿔보라는 조언을 듣고 조금 고민을 했더랬다. 운전 선생님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어서. 운전은 내가 하는 건데, 선생님을 바꾸는 게 뭐 그리 큰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럼에도 10만 원을 넘는 돈을 내며 또 혼나기는 싫었다.
바뀐 선생님께서는 처음 한 바퀴를 휘- 돌고 나서 말씀하셨다.
"뭐 특별히 문제가 없는데."
계속 떨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제발 떨지만 말라고. 그 말이 고마웠다. 끊임없이 고쳐야 할 것을 말해주는 것도 좋지만 그냥 지금 큰 문제가 없으니 이대로만 해도 괜찮다는 말, 그 말이 필요했다구욧! 엉엉. 그리고는 내려서 계속 혼자서 연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바깥에서 차의 위치를 보며 내가 떨어진 T자 주차 코스와 마지막 경사 후 커브 코스를 아주 자세히 봐주시면서 되게 디테일하게 운전을 수정해 주셨다.
알다시피 면허 학원에서 연습하는 T자 주차는 공식을 외워서 해야 하는데 순서 순서마다 조금 더 정확히 공식에 대입할 수 있도록 들어가는 위치, 꺾는 위치를 내 고개 각도까지 봐주셨다. 연습을 마치고는 주차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칭찬까지. 대략 6-7번 정도 전체 코스를 돌았는데 1번 가속 구간 10점 감점을 빼고는 모두 100점이었다. 아니 100점이라니. 선생님께서 이거 기계 고장 아니냐고 너스레를 떠셨는데, 평소 아저씨들의 너스레에 냉담한 편이지만 어제는 달랐다.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꺄르르 꺄르르 웃었다. 긴장이 풀리니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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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마치고 집에 오니 아빠가 신문에서 광고를 봤다며 '안심액'을 먹어보는 게 어떻냐고 권하셨다.
검색해보니 [불면, 불안, 초조, 목마름, 두근거림, 숨참, 신경쇠약, 건망, 번열 등]에 효과가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지. 불안, 초조, 두근거림의 증상이 있으니 일단 킵.
시험 날 아침, 약국에 들렀다. 이게 진짜 무슨 오반가 싶었는데 정말 더 이상 떨어질 수는 없어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심정으로. 안심액은 없고, 똑같은 성분이라며 이런 걸 내주셨다. 아- 보심액이라니. 미치겠다.
시험 보러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앳된 목소리의 응시생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기사님께 물었다.
“T자 주차 코스에 들어가서, 입장만 하고 삐 소리 나면 바로 후진해서 나와도 괜찮아요?”
(*T자 주차 코스에 진입하면 삐 소리가 나면서 시간을 카운트한다. 시간제한 감점이 있어서.)
주차 코스에서 계속 떨어지는 모양이다. 그러니 거기서 감점을 감수하고 과감히 패스해버리고 난 뒤, 나머지 코스에 승부를 걸어 보겠다는 얘기였다. 아니 어쩜 그런 생각을. 요즘 애들 머리 참 기발해. 그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게 아니라 너무 이해가 가서, 속으로 낄낄 웃었다.
이해를 못하셔서 벙쪘던 기사님이 무슨 의미인지를 파악한 뒤, 파안대소. 아유 당연히 안된다며 당돌한 질문을 한 그녀에게 대체 몇 번째 시험인데 그러냐 물었다.
교육만 6시간을 받고, 3번째 시험이란다. 어머, 혹시 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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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할 때는 다 100점인데 시험만 보면 속이 덜덜 떨린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어제의 내 연습이 떠올랐다. 내가 몇 번을 100점 맞았는데 설마 오늘 떨어지겠어? 떨릴 때마다 이렇게 곱씹으며 치얼 업 하고 있었는데 그 얘길 듣고 나니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기사님이 위로를 건넸다.
“어떤 아줌마는 24시간 교육받고 7번째 붙었어. 기능이 그렇고, 도로 주행도 24시간 교육에 5번째 붙고.”
기사님이 계속 위로하신다.
“내가 이름도 안 잊어버려. 2-3년에 그런 사람 꼭 한 명씩 나와.”
위로는커녕, 내가 바로 그 아줌마 다음으로 그런 사람이 될까 더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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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그녀가 첫 번째, 내가 두 번째. 평일 시험이라 사람이 적어 시작하자마자 바로 시험이었다. 그녀가 5번 차, 내가 7번 차에 올라탔다. 그녀가 먼저 출발, 그리고 조금 있다 나도 출발. T자 주차 구간을 빠져나가는 5번 차가 보였다. 안내 방송으로 나오는 5번 차의 주차선 탈선 감점 안내. 안 돼.
그리고 시험 중간, 교차로에 멈춰 서 있는데 멀리서 안내 방송이 들렸다.
“축하합니다. 5번 합격입니다.”
세상에 세상에 내 일처럼 너무 기뻐.
연이어 나도 합격했다. 100점이었다. 연습처럼 100점이었다.
80점으로 한 번에 합격하는 게 더 낫겠지만 이왕 세 번째 보는 거, 100점이라니 또 좋다.
벌써 면허 다 딴 것처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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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마치고 돌아가는 셔틀버스 안, 기사님이 우리에게 물어보셨다.
“합격했어요?”
대학교 새내기라는 5번 차의 그녀가 기쁘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 못 한 내가 연이어 합격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우리 둘을 제외하고, 차에 타 있는 나머지 응시생이 대답도 하기 전, 기사님이 먼저 알은체를 하셨다. “아이고 오늘 피곤하겠네. 배도 고플 텐데.” 아침에 필기시험을 보고, 오후에 기능 시험까지 보는 일정이었단다. 그리고 둘 다 한 번에 합격.
아아- 더디고 더뎠던 5번 차와 7번 차의 합격자들은 입을 닫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기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씀하셨다.
“아이고 저렇게 쉽게 붙는 사람도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