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사는 내가 관리한다. 자기주도적 성과 피드백에 대한 소개
최근에 우연히 온라인 독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모임은 최근에 출판된 책의 저자를 초대해서 간단한 책 내용 중심의 소개 강의를 듣고 그다음 저자와 직접 Q&A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모든 과정이 온라인상에서 Zoom을 통해서 진행된다.
이번에 참석하게 된 모임은 메타(이전 페이스북) 회사에서 근무했던 크리스 채 라는 분이 쓰신 '실리콘밸리에선 어떻게 일하나요'라는 책에 대한 모임이었다.
메타에서 7년 정도 경력을 갖고 있는 저자 '크리스 채'를 온라인상에서 직접 만나고 궁금한 것을 직접 묻고 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타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았지만, 실무와 팀 리더를 경험했던 한국인(정확하게는 미국에서 출생한 미국 시민권자)의 관점에서 메타에서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조직문화와 인사 프랙티스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었고, 익히 알고 있는 미국 기업, 특히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HR 분야와 조직개발 쪽에 관심을 갖고, 그와 관련한 일을 해 온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좀 더 실제적인 사례들이 좀 더 생동감 있었다는 평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글의 제목인 "Manage Up, 내 상사는 내가 관리한다"라는 챕터였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매니지업'은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상사가 나를 잘 도와주도록 내가 상사를 돕는다(help your manager help you)'이다.
메타 만의 독특한 조직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직원이 수행하는 업무의 대부분은 리더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주도권이 상사가 아니라 부하직원에게 있다는 생각에 기반한 문화가 바로 이 매니지업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리더의 과업인 정보제공, 도움 요청, 피드백도 모두 부하직원이 주도적으로 해야 함을 의미한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상사가 알아야 할 정보를 먼저 제공하고,
상사에게 받아야 할 도움을 먼저 요청하고,
상사에게 먼저 피드백을 요청하고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매니지업이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최근에 정리하고 있는 '자기주도적 성과피드백 미팅'과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이다.
한 회사의 HR 책임자로 일하면서 매년 주도해야 하는 프로세스의 하나가 '평가'였다.
내가 리더인 HR부문의 주요 과업이면서 동시에 나도 담당 임원의 한 명으로 CEO의 평가를 받아야 했다.
다른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 다른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는 것 모두 그렇게 유쾌한 과정은 아니다.
회사 생활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이벤트일 것이다. 성장과 발전을 위한 피드백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 하지만 관리자의 관점에서는 결국 성과급, 연봉조정, 승진의 기초가 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평가받는 입장에서도 나의 보상, 승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평가하는 사람의 피드백 결과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통상적인 평가 피드백 과정은 먼저 평가를 받는 사람이 회사의 기대, 나의 목표, 그리고 실제 결과를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상사가 일정을 잡고 평가 면담을 하게 되면 상사가 주도하여 몇 가지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부하의 대답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미 상사는 결론을 갖고 있고, 그것을 부하직원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그 과정에서 직원은 최대한 자신의 성과와 회사에 대한 기여를 어필하지만 상사의 생각과 판단은 이미 내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늘 이런 식의 대화, 정해져 있는 결과, 상사의 관점과 나의 관점의 차이를 확인하고 상사의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HR 담당인 나조차도 때로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내가 가졌던 의구심은 '나의 성과 목표가 나의 노력만으로 달성 가능한 것인가, 나의 상사가, 회사가 내린 전략적 결정에 오류가 있어서 엉뚱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썼다면 내가 맡은 영역의 성과에는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회사는 지고 있는가?' 이런 관점의 질문이다.
더 나아가,
"이 회사는 나에게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비전과 꿈을 주는가?"
"내가 달성하기로 약속한 목표와 결과를 평가한다면, 회사는 직원들과 한 약속에 대해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했는지 평가받는가?"
"나의 성과는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 다른 팀과의 협업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들이 나를 충분히 도왔었는가? 거꾸로 나는 그들의 업무에 충분하게 도움을 주었는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들에 대해 나의 리더는 충분히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었는가? 내가 성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이런 질문들이 생각난다.
직원의 입장에서 이런 전반적인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만을 따지는 것에 대해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해본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내가 만들어야 했던 결과 이전에,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회사와 상사는 충분히 해야 할 역할을 했었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 피드백하지 않고 구성원인 나에게만 결과를 묻는 것이 합리적인가?
뭔가 일방적이고 억울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났었다.
상사,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부하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렇게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누군가 행동해야 하고, 그것은 변화를 원하는 그 당사자가 주도해야 한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결론에 이르렀을 즈음에 이 '매니지업'이라는 조직문화의 형태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매니지업과 연결해서 보자면 '자기주도적 성과피드백'은 다음의 5가지 Agenda에 대해서 대화를 상사와 하는 것으로 정의해 볼 수 있다.
- 내가 소속된 이 회사는 명확한 존재의 이유와 비즈니스의 목적을 고객과 직원들에게 소통하고 있는가?
- 회사를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을 정도의 그런 의미 있는 사업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어쩌면 상사도 아니고 최고경영층에게 해야 하는 질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상사가 회사의 존재 가치와 이유에 대해 충분하게 직원들에게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거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결국 직원들에게는 금전적 보상이나 개인의 경력개발로 동기부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회사는 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몰입을 위해 약속한 사항을 충실히 이행했는가?
직원들의 성과 목표 달성을 따지기 전에 회사는 직원들과 한 약속에 대해 얼마큼 성실했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피드백은 상호적이여 함을 의미한다. 이 질문의 대상은 회사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상사일 수도 있다. 연초 성과 목표 설정 시 상사가 어떤 지원과 도움을 주기로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이다.
- 실제 내가 만들어 낸 결과는 어떠한가?
이것은 목표대비 결과일 수도 있고, 주요 성과의 내용일 수도 있다. 실제 상사와의 대화에서 가장 마지막에 다루어야 할 어젠다가 될 것이다.
- 나의 성과에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 내가 성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타인, 타 부서와의 협업과 협조는 충분했는가?
대부분의 업무는 독립적인 나 혼자만의 과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들이 충분히 나를 도왔는지, 또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상사에게 설명한다.
- 내가 성과에 몰입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고, 실제 결과는 어떠했는가?
나의 성과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했는지, 때로는 어떤 교육이나 스킬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나의 성과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부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성과에 몰입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변명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나를 갈아 넣어 억지로 힘들게 만들어 낸 결과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회사와의 관계를 유지해 가기 위한 '나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조직에 더 큰 이로운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 2)는 상사에게 질문하는 내용이고, 4), 5)는 나의 관점에서 나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그래서 3) 실제 결과를 이야기하는 순서로 진행하게 된다.
각 대화의 Agenda의 첫 글자를 조합하면 P.E.A.C.E 라는 단어로 귀결이 된다. 회사와 상사, 그리고 직원 모두가 갈등과 입장의 차이로 야기되는 분쟁이 아닌, '평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부하가 상사를 관리한다는 것은 한국의 조직문화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사를 관리하고 있다.
상사의 성향, 일하는 스타일을 파악하고 가능하면 상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보고하려고 한다.
상사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고, 상사의 관심 사항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상사의 고민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조직생활 잘하는 방식이라고 배웠고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관점을 바꾸어 본다면 이러한 'PEACE'라는 프레임의 대화는 상사에게 리더십과 조직관리 능력을 개발하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성과 피드백 미팅을 하기 전에 앞서 상사에게
"내가 성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리해 보았는데, 저 개인만의 노력이 아니라 회사와 저, 그리고 주위의 다른 동료나 부서와의 관계, 그리고 영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성과에 영향을 주었던, 그리고 지금도 주고 있는 요소들에 정리해 봤는데 팀장님께서 상사로서 한 번 보시고 피드백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위의 5가지 관점에서의 생각을 정리해서 미리 메일로 보내면 어떨까?
만약 내가 준비하고 소통한 이런 내용에 대해서 상사가 탐탁지 않게 여기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런 리더와는 '헤어질 결심'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