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관행에 맞선다는 것이 주는 그 무게감에 대해
2024년 첫 브런치 글을 쓴다.
최근에 끝난 파리 올림픽에서 발생한 사건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게 되었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작정하고 토해낸 성토에 그동안 만연해 있던 한 사회, 조직의 민낯이 드러나고 그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조금씩 흘러나오며 대중의 공분을 사게 되었다.
중간에 잠깐 스폰서십 문제와 선수 개인의 보상에 대한 이슈가 이야기되면서 논점이 바뀌는가 싶었지만 다시 내부 고발성의 제보들이 언론사를 통해서 보도되면서 선수 개인보다는 협회, 조직이 갖고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함이 이야기되기 시작되었다.
이 사건의 진행경과를 보면서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대한민국 사회의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안세영 선수는 개인이고, 이제 22살의 젊은이다. 이에 대응하고 있는 협회나 단체는 조직이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계란으로 바위 깨기의 상황이었다. 조직 생황을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고 언론 플레이가 될지 그리고 결국에 어떤 결론을 맞이할지도 상상이 가능하다.
최근에 있었던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의 해임 추진과 관련한 사건이 떠 올랐다.
비슷하게 회사와 개인의 다툼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대표는 법률고문과 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를 고용해서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받았고, 그렇기에 아직도 이 싸움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안세영 선수는 현재까지는 그러한 전문가들이 도와주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자칫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도 꼬투리가 잡히기 쉬운 리스크를 갖고 있다.
협회(조직) 쪽에서 들고 나온 것은 특혜와 특별 대우, 그리고 다른 선수 들에 대한 배려와 공정성을 이야기하며 안 선수의 주장을 잘 나가는 선수의 지나친 과욕과 스타의식이라는 프레임으로 씌우려는 의도가 보인다.
우리 사회는 사건의 본질보다는 어떤 프레임으로 상황을 규정하는 가에 따라 너무나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작금의 상황에서도 그러한 의도가 보인다. 개인 혼자만으로는 이러한 공세에 대응하기 어렵다. 안 선수가 이러한 교묘한 프레임 씌우기에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스포츠 경기만큼 공정함이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몇 미터 앞에서 먼저 출발하게 하거나 몇 초를 단축시켜 주는 경기 규정이 있을 수 없다. 코치나 감독의 말과 지시에 절대적 복종이라는 것도 그렇다. 협회에서 행했던 여러 가지 부조리한 사건들이 이전 회장단, 운영진 때부터 행해졌던 것들이라는 말로, 또 수십 년간 진행되어 왔던 부조리를 대대로 진행되어 온 관습과 관행이라는 이유로 그 부당함과 불공정을 덮으려는 것은 이미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아온 패턴이다.
나이 어린 후배들이 선배를 위해 해야 하는 봉사와 섬김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신입 또는 신규 입사자들에게 이야기하는 이해가 안 되는, 불합리한 행위들도 '전통' 또는 '독특한 조직문화'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도 아마 유형의 부당함이 아닐까?
어린 선수가 분노가 현재의 자신을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말하는 그 인터뷰 장면을 보며 정말 이 한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매체의 보도를 보면 7년의 국가대표 생활 속에서 잠잠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러 경로와 방식으로 상황을 바꾸고 개선하기 위한 목소리를 냈지만 어느 것도 바뀌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만이 그렇게 많으면 대표선수를 그만두라는 핀잔과 협박도 들어야 했다.
나의 목속리가 무시되지 않을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냈고 그동안 억눌러 왔던 아쉬움과 섭섭함을 에둘러 표현했고, 갑작스러운 여론의 반향에 스스로도 놀란 듯이 보였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시간 끌기와 물타기, 초점 흐리기 등이 나타나고 결국 어느 순간 사그라지기를 가해자들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감독기관, 여론, 대중들이 침묵하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치부하게 되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태를 보며 MZ 세대의 공정함에 대한 높은 민감성이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마 안 선수가 80년대생이었다면 이렇게 까지 대놓고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현재 안 선수가 제기한 문제는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고, 누군가 실상을 알면 무엇인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한 개인의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에서야 어린 선수가 무시받지 못할 자격을 갖추고서야 작정하고 꺼내야지만 등 떠밀리 듯 비난과 여론에 밀려서 살펴보겠다, 개선하겠다라고 이야기할 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그 조직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겪었던 부조리와 부당함에 스스로 포기하고, 권위와 권력에 대항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침묵하기 때문에 그렇게 고착되어 온 것은 아니었을까?
90년 생이 온다는 제목의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이 책의 저자였던 임홍택 씨가 쓴 또 다른 책, "그건 부당합니다"라는 도서가 2022년에 출간되었었다.
전작에 비해 그렇게 인기(?)가 높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그 내용의 인사이트는 지금에서 다시 꺼내 봐도 무척 예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에서 유추해서 본다면 현재 우리가 묵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물음이라기보다는 한 조직 안에서 어떤 개인이 '나는 정당한 것을 요구합니다.'라는 목소리를 낸 것이고 그것은 자격과 신분을 떠나 누구든지 갖고 있는 권리의 행사다.
협회의 비리를 신고하거나 협회장 개인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규정과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치밀한 계획과 시도도 아니다. 개인의 성공을 경제적 이득으로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도 아니라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하며 넘어가자고 하는 관성을 거부하고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에 대한 공개적 문제제기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거대 조직의 한 유형인 기업에 속해 있는 많은 직원들도 매일 겪고 느끼고 있는 일상의 하나일 것이다.
때로는 블라인드나 잽플래닛 같은 익명의 커뮤니티 채널에서 회사의 관행에 대해 불만의 형태로 꺼내고 결국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되는 거 아니냐는 핀잔 한 마디에, 그런 면박이 싫어서 조용히 있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는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회, 조직을 더 살기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침묵하지 않는 소수의 용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공평과 정의를 요구하는 거창함도 아니고 '나는 그저 정당함을 요구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누군가에 의해 늘 변화는 시작되어 왔다.
끝까지 안세영 선수를 지지하고자 하는 것도 그녀가 보여준 행동이 미칠 영향력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