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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ple life Jan 19. 2020

나의 일조 몽상기5

욕구 충족의 상태를 위하여

6.25 전쟁통에도 생명은 잉태되었다고 한다. 혹독한 상황일수록 성욕이 강해진다고 유튜브에서 본 거 같다. 나의 히키코모리 생활이 6.25와 같은 상황이라는 것에 동의할 사람이 많진 않겠지만, 극한 상황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법이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내가 한 명의 인간도 만나지 않고 1년 동안 26평의 집에 짱박혀 있는 생활은 자발적인 선택이라 할지라도 극한 생활이다. 그것이 비록 비싼 집안에서 최고급 침대 위에서 뒹구는 생활이라고 해도.


나는 행복한 히키코모리가 되고 싶다. 돈도 많은데 비록 예고편 클립으로 본 영화지만 그런 영화에 나오는 찌질한 히키코모리는 되고 싶지 않다. 행복은 욕구불만이 아닌 욕구 충족의 상태라고 학교 다닐 때 배운 것도 같다. 나는 수면욕과 식욕은 준비했으니 남은 것은 성욕뿐이다. 그렇다고 남자친구도 없는 내가 그것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내가 간절하게 남자친구와의 섹스를 원한 적은 없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미래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돈을 가지면 사람이 바뀌어서 전에는 관심도 없던 걸 원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름 해결책을 모색하다가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통해서 봤던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미국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거기 나오는 순진(?)한 편인 여자주인공이 토끼 모양 섹스토이를 구매한 후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던 거 같다. 바로 나에게 필요한 아이템이다. 당장에 네이버랑 구글에 로그인을 하고 성인인증을 했다. 구글링을 해보니 섹스 앤 더 시티의 순진한 주인공 이름은 샬럿이었고, 토끼모양 섹스토이는 퍼펙트 래빗이었다. 인터넷 세상에선 사용법도 동영상과 함께 자세하게 알려주고, 구매 사이트도 친절하게 링크해 놓았다. 나는 인터넷으로 퍼펙트 래빗 말고도, 호기심에 도넛과 바이브레이터도 비싼 걸로 몇 개 샀다. 상상력을 잘 발휘하면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우머나이저도 결재했다.  이제 나는 혼자사는 히키코모리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것을 사든 엄마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거실 테이블에 예쁜 러그를 깔고 나의 전자 남친들을 잘 전시해 두었다.


일단 이렇게 3가지 욕구 충족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약 한달 정도 되는 동안 사용한 돈을 정산해 보기로 했다.

일단 한남 더힐 26평 19억 8천, VVIP 건강검진 1,300만원, 방안 헬스클럽 3,000만원, 침대 1,000만원, 아이패드와 설치 맞춤 500백만원, 술종류 대략 1,000만원, 가전제품 대략 2,000만원 총 2,068,000,000 원이다.

긴 숫자로 쓰면 머릿속에 쏙 들어오지 않아서 이 숫자를 소리로 읽어보면 2십억 6천8백만원이다. 내가 2조를 2% 이자로 생각하여 쓸 수 있는 이자를 계산하면 하루에 5천 7백만원씩 쓸 수 있으니까 한 달이면 1,710,000,000원을 쓸 수 있다. 다시 이 숫자를 읽어보면 17억가량을 썼다는 것이다. 이자보다 조금 오버했지만, 준비를 위하여 쓴 돈이니까 이 정도면 내가 낭비했다고 볼 수 없다.


어쩌면 돈을 너무 아낀 것도 같다. 내가 편의점 점원부터 학교 근로장학생까지 알바를 하면서 언제나 느낀 거지만 돈을 버는 거, 여러모로 어렵다. 정규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알바같은 비정규직은 내가 알바생활을 오래하고 많이 한 것도 아니었는데 현타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알바는 몸도 힘들지만 마음도 많이 다친다. 몸은 힘드려니 하겠지만 그 누구의 입에서 나오건 험한 말이나 이해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마음이 다치면 내 경우 치료가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워지지 않는 흉터도 남았다. 그런데 일조라는 커다란 돈이 뚝 떨어지니 나같이 늘 돈 없음에 허덕이는 생활만 경험해 온 청년 백수 입장에서는 돈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라면 면발도 아닌데 돈을 써도 써도 은행에서는 돈이 계속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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