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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ple life Jan 11. 2020

나의 1조 몽상기 4

돈 많아서 좋긴 좋다

건강검진을 2박3일 동안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VIP특실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내 병실로 의사들이 방문하는 최고급 건강검진을 받은 후 내 느낌은 건강검진으로 병을 알아내거나 예방할 수도 있겠지만 거꾸로 병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거다. 우주선에서나 볼 거 같은 캡슐에 눕기 위해 먹어야 하는 약들 때문에 속이 매쓱거렸다. 건강검진 결과는 예상대로 백수였지만 나는 아직 청년이므로 1년 간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충분하게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결과지와 의사의 말을 종합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1년간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버티지 못할 만큼 약골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이 없을 때 아프면 병원비 때문에 걱정이지만, 돈이 있을 때 아프면 이 돈이 말짱 도루묵이 될 수가 있어서 이래저래 건강이 제일이다. 1조가 있는데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니 될 말인가? 그래서 나는 집 방 한 칸을 헬스클럽으로 만들기로 했다. 일단 바닥을 두툼하게 깔고 압구정동에 있는 헬스머신 전시장에 가서 가격이 2천만 원 조금 안 되는 트레드밀을 주문하고, 만약을 대비해 실내용 자전거와 철봉도 샀다. 잘 모를 땐 제일 비싼 것이 제일 좋은 거지 뭐.     


일단 건강을 챙긴 다음엔 히키코모리 필수품인 침대를 장만해야 한다. 사실 침대야 말로 앞으로 1년 동안 나와 거의 한 몸으로 생활할 가장 중요한 가구이다. 침대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침대 바로 위 천장에 아이패드를 설치하고 모두 연동해 놓을 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해도, 몸을 틀어 왼쪽으로 돌아 누워도, 머리를 똑바로 해도 보고 싶은 영상이 늘 재생되는 잉여로움이 극에 달하는 그런 공간으로 침실을 만들 거다. 그리고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 때는 영상을 볼 때 늘 이어폰이 필요했지만 이젠 소리도 다 켜 놓을 거다.

     

내가 최근에 알게 된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가 로켓 배송으로 참이슬이 주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배송되는 술은 전통주 외엔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1년 치 참이슬과 맥주를 미리 사둬야겠다. 만약 부족하면 막걸리를 마셔야지. 생각해보니 나는 돈이 많은데, 왜 소주를 사둬야 하나? 자꾸만 백수 마인드로 소비생활을 하려 하다니 아! 변화는 힘들어. 이래서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어쨌든 입뻰 당할까 옷차림에 신경 쓰며 딱 한 번 가봤던 클럽에서 잘난 척하는 몇몇 아이들이 아는 척하며 이름을 입에 올렸던 양주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강남에 있는 백화점으로 히키코모리의 교복에 해당하는 슬리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스냅백을 쓰고 가서 매장 직원이 세계 3대 코냑이라고 소개하는 마텔, 헤네시, 꾸브와제를 사고, 위스키도 가격표를 보고 골랐다. 이제 가격은 내게 숫자에 불과하니까. 백화점 매장에서 당당하게 배송도 부탁했다. 돈도 많은데 내가 이걸 들고 갈 순 없고, 나는 아직 운전면허도 차도 없다. 돌아오면서 나는 죽을 때가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 근처 슈퍼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있는 대로 주문하고 집주소를 적어주며 배달을 부탁했다.     

       

이 정도면 기본적인 준비는 다됐나 싶었는데, 술을 제대로 마시려면, 냉장고가 필요하고, 옷도 손으로 빨 수는 없으니 세탁기도 필요할 거 같고, 편의점 필수품 전자레인지도 있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물건 없이 원시인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지금은 석기시대가 아니어서 사람이 사는데 돌도끼 말고도 필요한 물건들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들을 돈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대략의 준비를 마치고 보니 내가 준비해야 할 마지막 하나가 생각났다. 내가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 3가지 가운데 식욕과 수면욕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마지막 욕망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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