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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일 Nov 02. 2017

고경일의 풍경내비

에스닉푸드 야키니쿠를 아세요?

불고기를 일본말로는 야키니쿠(燒肉, 구운 고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호르몬야끼(ホルモン焼き)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키니쿠'는 호르몬에 비하면 온 점잖은 말이다. 호르몬은 호루 모노’(ほる物·버리는 물건)와 ‘야키’(やき·굽다)의 합성어로  반세기 동안 조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1871년 메이지 일왕이 유신 4년째 되는 해 12월에 스스로 육식을 실시하고 금지령을 해제하면서 일본 사람들의 육식이 시작이 되었다. 문명 개화파들은 서양인들의 키가 크고 짖거 능력이 뛰어난 것은 고기 중심의 식생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왕의 육식 장려가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쉽게 식습관을 바꿀 수 없었다. 오랫동안 쌀을 통해 탄수화물을 얻고 콩을 통해 단백질을 취하는 것이 당연했던 불교 정신이 대중적이었기 때문이다. 


호르몬은 일본말의 호루 모노(ほるもの, 버리는 물건 혹은 쓰레기)의 준말이지만 한국에서는 소의 대창이나 특수부위 구이를 말한다.  가축의 내장을 먹지 않고 버렸기 때문에 버리는 물건을 주어다가 우리식의 양념을 해서 구워 먹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1920년대에부터 건너오기 시작한 조선인들은 강제병합 이후 대거 일본의 인력시장의 최하위 계층으로 편입되어 들어온다. 조선인들은 급료도 적었고 같은 국민이 아닌 한 등급 아래의 민족이어야 했다. 일본인과 다른 행동이나 습관 하나하나가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인들의 눈에는 버려진 소 돼지의 내장을 주어다가 구워 먹는 조선인의 모습은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일본 사람들에게 불고기, 호루몬 이란 대표적인 서민 요리로 인식되고 있지만 반세기 전 만해도 강제징용이나 동원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먹던 더러운 음식이었으며, 조선인=호루몬이라고 하는 인식을 통해 버린 것을 주워다 먹는 비렁뱅이 같은 부류로 천대해 온 역사가 녹아 있는 것이다.

불고기의 맛은 역시 오사카 츠루하시가 최고다. 푸짐하고 저렴하면서도 한반도에서 건너온 1세대들의 손맛이 남아 있다고나 할까! 요즘 우리가 서울에서 먹는 불고기의 양념과도 다르고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먹는 양념 맛과도 다르다.  달달한 과일맛과 짭짤하면서 묵직하게 숙성된 간장의 맛이 어울려 재일조선인 특유의 손맛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손맛은 투박한 형태의 숯불구이 화덕 위에 아미(망)가 얹어지고 시커먼 숯이 뻘겋게 달아오르도록 바람을 불어넣으면 망위에 양념한 고기가 꿈틀꿈틀 춤을 추며 현란하게 연기를 뿜어댄다. 가끔 따닥따닥따닥하는 타는 소리가 한 여름밤 불꽃놀이처럼 솟아날 때면 침이 흥건히 고이곤 한다.

츠루하시역 근처의 야키니쿠 타운을 그냥 지나가기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슬고슬하게 익어가는 양념의 냄새는 머리 속을 온통 야키니쿠와 호르몬,기무치 생각으로 가득하게 만든다.


츠루하시에서 불고기를 즐긴다면, 당연 츠루이찌(鶴一) 본점에서 불고기를 먹어야 한다. 츠루하시에서 제일 유명한 불고기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점 외에도 지점과 별관이 있지만, 바쁠 때는 2-3시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전국의 야키니쿠 마니아(?)들이 줄을 서는 맛집이다.  전체 종업원 100여 명이 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각 점포의 주방에만 10명 여명씩 일하는데, 필자가 오사카에서 맨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 곳이  츠루이쯔의 주방 보조원이었다. 앞에서도 썼었지만, 제주도 아줌마들이 대거 검거되어 출입국 관리소로 끌려가던 날, 주방의 일본인 덴죠(점장)와 중국인 유학생이 낄낄거리며 아는 얼굴이 나와서 반가웠다는 농담에 화가 치밀어 대들었던 적이 있다.  덴죠에게 “너네 어머니가 그렇냐? 좋겠냐?”며 큰소리를 냈다. 며칠 후 화가 낸 것에 대한 대가가 돌아왔다. 평일 한가하던 어느 날 오후.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고등학생과 필자가 총쏘는 시늉을 하며 장난치는 장면을 덴죠가 본 것이다. 갑자기 커다란 사기그릇을 내던지며, 나를 불러 세우고 큰소리로 욕을 했다. “고라! 오메라 조센징 와 곤나니 시고토 스루 노까? 고고와 아소비 바자 넨다요!” 직역을 하면 큰 욕 같지가 않지만, 일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큰 모욕이 아닐 수 없다.‘ㅆㅂ! 너희들 조선 새끼들은 이렇게 일하냐? 여기는 노는 곳이 아니여..ㅆㅂ' 정도의 쌍욕이 되겠다. 며칠 전 제주도 아줌마들을 비아냥거릴 때 필자가 따끔하게 꼬집은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다가 되돌려 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덴죠도 20대였고 나 역시 젊은 혈기였기에 날카롭게 대들었지만, 만일 다시 만난다면 맥주라도 한 잔 하면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주방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츠루이치의 소스의 양념을 절대 공개 안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양념소스를 만들 때 면 사과와 양파, 꿀들이 거래처로부터 대량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 대충 유추할 수 있을 뿐, 실제 양념 만들기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아들 내외가 창고에서 새벽에 만들어 놓곤 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치사하게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요즘 한국의 맛집 프로그램을 보면 몇 대째 이어져 오는 집안의 비법을 쉽게 공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 같다.  천대받고 차별받던 호루몬이라는 요리가 이제는 치루 하시에 불고기 타운을 만들고 한류 열풍과 함께 재일조선인들의 효자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주말에 츠루하시를 찾는 일본인이나 방학이나 휴가 때 놀러 가는 한국인들이 츠루하시를 그냥 관광 상품으로 싼 불고기를 배불리 먹는 코스로만 소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다. 

어디든 가장 허름한 동네를 찾아 간다면 틀림없이 호르몬 가게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재일조선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랫동안 이런 풍경은 '일상'이 되었다.

려다려어이분단 70년이 넘도록 왜 이쿠노 구의 츠루하시 일대는 아직도 낡은 집과 오래된 골목길, 지저분한 간판 아래’ 김치가 아닌 ‘기무치’와‘불고기’가 아닌 ‘야키니쿠’가 팔리고 있을까? 문화인류학에서는 근대 국가 이후 국가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집단 이주하는 사람들과 지역이 생겨나면서 그들의 음식문화도 함께 유입이 된다. 이런 음식문화를 ‘에스닉 푸드(ethnic food)’라고 하는데,‘에스닉’이라는 용어에는 민족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깔려 있다. 한국의 식문화가 빠르게 서구화되고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자극적인 입맛에 한국의 요리가 변해가는 동안,  재일조선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생존의 투쟁 속에서 우리의 식문화를 발전시켜야 했다. 분명 한반도의 김치가 ‘기무치’ 맛이 되었고. 불고기가 ‘야키니쿠’ 맛이라는 독특한 맛의 형태를 갖게 되었지만, 그것은 한반도의 요리이자 일본 열도의 요리이고 재일조선인의 요리가 맞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민족음식도 아니고 한국 음식도 북한음식도 일본음식도 아니다. 에스닉푸드는 음식문화를 소비하는 ‘시민’들의 음식이고 문화를 소비하는 매개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재일조선인은 한국인도 북한인도 일본인도 아닌지도 모른다. 가끔 재일조선인의 삶을 위로한답시고 “일본인으로 귀화해서 편하게 사세요” 따위의 망할 헛소리를 하는 분들은 꼭 살펴봐야 한다. 에스닉의 시대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에 따라 환경에 따라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살 권리가 있다. 어느 음식을 즐길 권리 또한 있다. 일본인으로 편하게 살라거나 이 음식은 한국음식이 아니라거나 하는 구분법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21세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에스닉푸드에 대한 이해조차 없으면서 60만 재일동포의 삶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야키니쿠를 불고기라고 우기고 우리'민족'의 고유 음식이라고 주장한다면 , 당신은 틀림없이 시대에 뒷쳐진 '꼰대'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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