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5시에 만나는 무면허 간호사
와... 우리나라 출산률 낮은 것 맞나?
산부인과 대기줄을 보면 과거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표어 외치던 때의 출산률인 듯...
물론 모두가 임신, 출산 때문에 온 건 아니겠지만...
1시간이 넘는 대기 끝에 드디어 진료실 입장!
나는 이런 일이 태어나 처음이라 뚝딱거렸지만
젊은 유방암 환자의 경우
가임력 보존을 위해 난자 보관을 하는 게 관행인 만큼
선생님들은 메뉴얼대로 아주 능숙하게 안내해주셨다.
가능한 많은 수의 난자를 냉동시켜야 나중에 성공률이 높아지니
2회 하는 걸 추천하셨고 1회당 12일 가량 걸린다고 했다.
아직 외과 수술 날짜가 잡히지 않았지만
대학병원에서 내게 그렇게 빨리 수술실을 내줄리는 없으니
난자 보관 때문에 수술 일정을 늦추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이다.
사실 병원 투어 중 한 선생님은
굳이 요즘 아이도 안 낳는 추세인데
난자보관 같은 것 뭐하러 하냐며 암 치료에만 전념하라 조언하셨다.
하지만 2세에 대한 열망이 있는 나로서는 가임력 보존도 상당히 중요한 과제다.
아기를 낳겠다는 나의 열망은 채혈실에서도 보여줬다.
이날 이미 암 때문에 피를 한 바가지 뽑았는데
(바가지는 과장이다. 하지만 비커 정도는 실제 뽑아낸 듯.
채혈실 직원분이 "피 진짜 많이 뽑아야하네요." 라며 놀라셨음...)
산부인과 때문에 한 번 더 뽑으러 가니
오전에 채혈해준 분이 알아보더라. "또 뽑아요? 하루에 이렇게 많이 뽑아도 되나?"
"네. 이번엔 산부인과예요."
비장하게 피 몇 통을 더 뽑고!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하자!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겠다! 선언했다.
그렇게 꽤 묵직한 주사와 약을 받았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매일 내 배에 놔야하는 주사.
한 달에 하나 나오는 난자를 여러개 나오도록,
여성호르몬을 급증, 난소를 자극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과배란된 난자를 채취해 어마어마하게 낮은 온도에 보관했다가
수정을 원할 때 해동시키는 거다.
그런데 여성호르몬이 많아서 암이 생긴 나에겐
과배란 과정이 암세포에 먹이를 주는 것과 다름없을테니
그 호르몬을 억제시키는 약을 함께 처방받았다.
하지만 꺼림직한 마음…
마지막으로 코디네이터분과 상담을 하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다시 한 번 여쭤봤다.
"제가 호르몬성 유방암인데 이 주사를 맞으면 암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답은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아기를 원하면 감수해야죠."
나는 물론 옆에서 같이 듣는 부모님도 안절부절.
확실히 난소 기능이 떨어질 것도 아닌데
예방차원에서 하는 것이 암세포를 키워버리면 그건 바보짓같았다.
코디네이터분은 망설이는 내게
아이를 원하면 암이 커져도 하는거고
아이를 굳이 안 가져도 되면 난자냉동을 안 하면 되는 거라며 심플하다. 어서 선택하라 재촉했다.
그건 아니잖아... 전절제 하기 싫은데... 더 커지면 부분절제의 희망은 더 작아지는 거잖아...
받은 약을 반납하고 나왔다.
다음 날, 출근 시간 헬게이트를 뚫고
또 다른 병원의 유방외과를 찾았고 X-Ray, 초음파 세트메뉴를 또 알차게 진행했다.
그 결과, 왼쪽은 작은 혹이 여기저기 있는 다발성이고
오른쪽은 0.5cm 작다고 들었는데 이곳 초음파 검사 결과로는 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조직검사 하면서 없어진 것 아니냐는 희망적인 질문을 했으나 그럴 일은 없다고...
(선생님 MBTI 확신의 T)
왼쪽은 혹이 많아 전절제 해야할 것이고,
오른쪽은 위치를 파악할 수 없음과 양쪽 밸런스를 생각해
양쪽 모두 전절제, 동시 보형물 복원을 권유했다.
휴... 그럼 항암은요?
그건 수술 후 분석해봐야한다고.
내가 병원을 다니면서 확실히 알게된 것 하나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궁금증을 해결해줄 가장 확실한 사람은
유방외과 전문의일 것이다.
심지어 유방암 명의 리스트에 견고히 이름을 올린 분이니 여쭤봐야한다.
"난자냉동을 하려다 암세포 더 키울까봐 반납하고 왔는데 어떡해야할까요?
아이는 원해요."
그럼 난자냉동 해놓는 걸 추천하신단다.
그래, 해보는거야!
하지만 나와 부모님을 공포에 떨게 한 코디네이터분을 다시 만나고싶진 않았다.
다른 병원의 난임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가장 적절한 시기에 내 예약날짜가 잡혔다.
사실 진료를 보기 전까진 가장 적절한 시기에 방문한 걸 몰랐다.
오히려 지금 가는 게 맞나? 꺼림직했다.
생리 시작 2.5일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과배란 주사를 맞는 가장 좋은 시기가 딱 그 때였다.
심지어 이번엔 간호사분부터 코디분, 담당 교수님까지 친절 그 자체.
그냥 여기서 하는 게 운명이었나보다. 이번엔 진짜! 당장 시작!
과배란 유도를 위해 배에 맞는 퓨레곤 주사의 핵심은
매일 같은 시간에 맞는 건데 교수님 피셜 오후 5시가 가장 좋다고.
그렇게 내 주사 시간은 5시로 정했다.
주사와 약을 처방받고
주사실에 가서 주사 놓는 방법을 배웠다.
난생 처음 손에 쥐어보는 주사에 쥐는 것만으로도 덜덜.
차마 내 살을 내가 뚫진 못해서
나는 무면허 간호사(?)들에게 주사 놓는 법을 가르쳐주고
5시마다 배를 내밀었다.
며칠 후, 초음파로 난포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매일 맞아야하는 주사의 수가 늘어났다.
처음엔 한 개, 나중엔 두 개.
요 조합이 익숙해질 때 쯤
주사 한 개가 더 추가된다.
짠!
앞의 두 개는 일반 주사기보다 위협감이 덜한데
이건 진짜! 주사기다!
심지어 용액도 직접 주입해야함...
또 시간도 1분 단위까지 정확히 지켜 맞아야한다.
(내 경우 오후 11시 59분이었음.)
맞은 주사 중 이게 제일 아팠고
유일하게 멍도 들었다.
준비하는 동안
극소수의 친구에겐 알렸는데 그 중 시험관 아기를 위해 난자채취를 한 선배님이 두 사람 있다.
채취 후 포인트는 이온음료라며 제품 추천도 해줬다. 복수가 차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24병 정도면 괜찮겠지? 주문 완료!
수면 마취인 만큼 손톱 발톱에 남아있는 젤네일도 제거 완료!
그렇게, 채취 날짜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