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ak Oct 30. 2023

난자 17개 순산. 동산 하나 넘었다

앞에 태산이 있어 걱정이지만. 



매일 주사 N대. 무면허 의술에 익숙해질때 쯤 진행되는 

익숙해지기 참 어려운 초음파 검진. 

난포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냉동을 해놓아도 모든 난자가 생존하긴 어려운 만큼  

최대한 많이 있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개수가 많은 만큼 난소과자극증후군의 위험도 높다.) 

심지어 여러 번 할 시간도 부족한 나는 더 초조했고 초음파 중에도 물어봤다. 많은가요?

"많네요!" 

오 다행이다! 여자분들은 알텐데 산부인과 초음파는 대화를 오래 하기 좋은 상황이 아니라...

그 정도까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대답이라 조금은 기분 좋게 검사를 마쳤다. 


이후 진료실에서 난자 채취 날짜가 정해졌다. 

난포가 이러저러하고... 상황이 이러니까... 토요일이 제일 좋겠어요.


그렇게 다가온 토요일 오전 11시.

안내문에는 남편과 동행하라고 똭! 인쇄돼있지만 

친절한 간호사님이 거기 친히 X를 해주셨다.

엄마와 함께 병원 문을 들어갔고

보호자는 대기실에,  

수술실은 환자만 들어간다. 


수면마취로 진행돼 전날 밤 12시부터 금식.

손발톱 매니큐어, 메이크업 금지. 자연인의 모습으로 

병원복에 위생모(?)를 쓰면 와 진짜 하는구나! 화악 실감이 난다. 





이후부터는 모든 소지품을 캐비넷에 넣어 그 어떤 사진도 없다. 

팔에 주사를 꽂고 

진짜 수술실로 입장!

초음파 검진대와 비슷하지만 느낌이 사뭇 다른, 뭔가 차가워보이는 의자가 보인다.

덜덜 떨며 입장하는 내게 

담당 교수님과 간호사분이 조금만 참으면 잠들어 괜찮을거라 위로해주셨고

(ㅅ교수님.. 얼굴 정말 작으시고 예쁘시고... 정말 다정하신 분...) 

마취제 투여. 

아주 예전에 위내시경 때문에 수면마취를 할 때 

마취가 잘 안 돼 약간 불안했지만

이번엔 한 달이 넘도록 금주를 해서 그런지 

약 들어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기억이 끊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술실 의자가 아닌 회복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를 들어서 옮기신걸까? 위대하다 의료진분들... 뭐 이런 생각은 한참 후에나 들었고 

굉장히 아팠다. 이런 아픔은 경험한 적이 없는데... 

신박한 고통이네 싶었는데 생리통 심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기도 한 것 같다. 

속을 좀 쥐어짜는 듯 하달까? 

다행히 진통제 주사를 놔주셨다. 약이 퍼지기 전까지, 

고통 속에서도 몇 개가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옆옆 침대(로 추정되는) 대화가 들린다. 

"6개 채취했고요~" 

설명을 듣곤 퇴원하는 듯 했다. 

오늘 바로 알려주는구나.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진통제가 어서 약발을 나타내주길 기다렸다. 

그러면서 앞 침대에서는 7개. 옆 침대에서는 5개 난자가 나옴을 알게됐다. 

커튼 하나 사이라 꽤나 잘 들리는 시스템. 

서로 얼굴은 몰라도 난자를 몇 개 채취했는지는 알 수 밖에 없다. 


꽤나 시간이 지나고 

화장실 다녀올 수 있겠냐고 한다. 

갔다가 피가 나오면 물 내리지 말고 부르라고.

똑바로 걷기 아주 힘들다. 어기적어기적 화장실로 갔는데 다행히 피는 없었다. 

다녀와서 나의 소변 상태를 공유했고 문제 없는데 

다만 힘들면 좀 더 누워있다 가도 된다더라. 많이 나온 편이라 더 아플 수 있다고.

때는 이 때다! 몇 개 나왔나요?

잠시 후에 설명해드릴게요.

서류를 갖고 다시 와 채취 후 알아야할 것을 꼼꼼히 설명해주신다. 

약들 처방에 맞게 잘 챙겨 먹고, 

혹시라도 배에 복수가 찰 수 있는데 

몸무게를 매일 아침 측정해 2kg이상 늘거나 

많이 아프면 병원에 와야 한다고. 일요일은 병원이 문을 안 여니 응급실로 오라고.

예방을 위해 이온음료를 조금씩 자주 마시라 했고, 

샤워는 가능하나 감염 등의 위험으로 2주 가량 탕목욕이나 수영장, 성관계는 금지.  

가장 중요한 개수는요?! 

난자는 17개 나왔는데 16개는 성숙난자 1개는 미성숙난자라 조금 더 키워 냉동할 예정이라고.

얏호! 선방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꽤나 좋은 성적이다! 


기분은 좋았으나 몸은 그렇지 못했다.

엉거주춤 허리 숙이고 다리 벌리고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와 옷을 갈아입고 걱정스러운 얼굴의 엄마와 다시 상봉. 

엄마는 마치 내가 아이를 낳은마냥 극진히 대했고 

(평소에도 과잉보호의 아이콘이긴 하다.) 

집엔 이미 전복죽과 전복미역국이 준비돼있었다. 

이온음료를 2리터씩 마셔댄 덕분인지 복수는 차지 않았고 

혹시라도 자극이 될까 비데 사용조차 한동안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출산 후의 마음으로 (난자들.. 미래의 아가들일 가능성!)

음식도 진짜 잘 챙겨먹었다. 

나 이렇게나 많이 먹는다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며칠 후 진짜 냉동이 몇 개 됐는지, 보관 동의서를 쓰러,

30개 정도를 보관해둬야 안정적이라는 의견에... 한 텀 더 할건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기 위해 

내원했다. 

이 즈음 되면 똑바로 잘 걷고 생활에 큰 지장 없더라.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배아 동결보존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하는데

배우자 칸에 해당없음에 낄낄댔지만 속으론 슬펐다. (난임센터의 모든 서류엔 남편이 등장한다.) 

그냥 17개 모두 동결했음에 기뻐만 하기로! 


정신 승리하며 진료실 입장! 

암 수술이 한 달 내에 들어갈 예정이라 

한 텀 더 돌려면 바로 시작해야하는데 

체력적으로 무리일 것 같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얼굴 예쁜 사람이 인성도 좋다는 말을 증명해주는 우리 ㅅ교수님...

매우 공감하며 그럴 수 있다. 지금 것으로도 시도해볼 수 있고 

수술 후에 몸 추스르고 다시 진행해봐도 되니 일단 수술 잘 받고 쾌차하라며 응원해주셨다. 


간호사분도 함께 응원해주심에 감사...

내가 왜 암따위가 걸렸나 너무 억울하고 화났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작은 산 하나는 둘레길로 살살 잘 넘었고. 

그 뒤로 험난한 태산이 보이는데 그 산도 잘 넘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주사는 의료진만 놓는 줄 알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