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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ak Oct 31. 2023

암밍아웃

몸둘바를 모르겠는 선물공세



난자 채취 과정 중 가장 번거로운 것은

매일 같은 시간에 주사 맞기였다.

때문에 안 그래도 무알콜러가 되면서 화악 줄인 약속을 더 줄이게 됐다.

메뉴가 아무리 웰빙이라도 이동시간과 수다 시간을 생각했을 때

주사 맞는 시간에 늦을 가능성이 있다면

다음으로...


그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주사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고

몇 명에겐 그냥 미혼으로서 30대 난자를 얼려놓고 싶다로 얼버무렸고

극소수 몇 명에겐 상황을 알렸다.

왜 일찍 말 안했냐며 원망섞인 울음을 많이 들었는데

내가 좀 덤덤하게 말할 수 있을 때가 아니면

내 감정이 컨트롤이 안 될 것 같았다.

괜히 속상하게 하기 싫은 마음이었는데

친구들은 담담한 내 모습에 얼마나 속이 다 문드러졌으면 이리 태연하냐며 더 속상하다더라.

사실이다. 차에서도 울고 길에서도 울고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울고

두려움과 억울함이 얽혀 참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그렇게 흘린 눈물 덕분에 이제 '암'이란 단어에 눈물이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 나 대신 우는 친구들...

참 고마웠다.


암밍아웃을 했을 때 대부분은 장난이지?란 반응이었고. 진지함을 깨닫고는

무슨 암? 몇 기래? 이게 물음의 바이블이다.

유방암이고 1~2기로 추정하는데 수술을 해봐야 정확한 병기를 안대.

위암, 간암 등 다른 장기의 암은 처음부터 몇기인 게 나오는 것 같던데 유방암은 좀 특이하다.

수술해야한대? 응. 해야해.

항암은? 몰라. 안 할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두 물음에 대한 답은 구체적으로 하기 싫었다.

실제로도 아직 모든 병원에서의 답을 들은 게 아니기에

병원을 여러군데 가보는데 다 듣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거란 정도만.


이후 만나서는 웰빙음식을 사주고, 꽃을 안겨주고

집으로는 과일, 건강식, 무알콜 맥주, 인형 등의 배달이 줄을 이었다.

어떻게들 암에 좋은 것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더라.


(브런치는 사진 파일이 많이 안 올라가는 것 같다.

30여 장을 올렸는데 오류가 나 대폭 줄여 올려본다.)






이 외에도 정말 고마운 응원이 이어졌고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구나.

암이란 사실을 알고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따스해졌다.


나는 프리랜서라 여기저기 일터에도 알려야했는데

반응이 사뭇 달랐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진심으로... 괜찮을거라 응원해주며

기다릴테니 걱정말라. 그저 완쾌해 돌아오라 해준 고마운 분들을 시작으로

(내 병원 스케줄 때문에 일정 조율이 필요할 때도 흔쾌히 해주시고...

오히려 아픈데 일 시켜서 미안하다고...

정말이지 감동... 여긴 뼈를 묻어야겠다 생각했다.)

또, 다른 걱정 말고 나만 생각하라며! 토닥여준 선배님, (평생 모시겠습니다...)

수술 후 회복까지 생각해 기한을 연장해준 회사도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일에 지장이 있는지만 재차 확인한 업체도 있었다.

(AI니? T발 C야?_MBTI 모든 T가 그렇진 않지만! AI도 이런 반응은 아닐테지만!)


사람이 바닥을 치면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던데

그 말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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