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님의 말씀이라는데 암 환자에게 찰떡이지 뭐야?!
나름 부심이 있던 내 가슴을 잃는다는 상실감과
큰 수술에 대한 걱정만 가득하던 내게
부분절제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 한스푼을 갖고,
(하지만 모두가 왼쪽은 전절제를 이야기했기에 진짜 부분만 해도 되나 하는 우려도 갖긴 했다.)
내가 이렇게 인복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암 소식을 알린 지인분들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입원하기 직전까지 한우, 과일, 견과류, 꽃다발, 진심 가득한 편지, 입원 생활 중 쓰면 좋을 각종 소품들 등 다양한 애정이 줄을 이은 감동 스토리)
다음 진료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만발, 헬 출근길을 뚫고 간 병원에서 난 힘이 쭈욱 빠졌다.
"아무래도 부분절제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긴 아쉬우니
혹시 시도해도 될지 매주 열리는 회의에 내 상황을 안건으로 말해보겠다."
흑.. 그렇게 또 일주일이 갔고
피 말리던 일주일 후에도 전절제가 불가피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거기서 하나 더! 절제 부위는 유두에서부터 겨드랑이까지...
절개선을 그려보이는 교수님의 펜은 쌓아온 업력만큼이나 시원시원했고
그 그림을 보는 나는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다른 두 곳에서는 미용 확대수술처럼 가슴 밑선을 따라 절개한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슬퍼서 생고생을 마다않고 온갖 병원을 다닌건데...
나는 펄쩍 뛰며 그럼 흉터가 너무 심하지 않냐며
밑으로 할 수도 있다던데 왜 옆을 절개해야하냐며 따져물었다.
이유인 즉슨
가슴이 작으면 밑으로 해도 괜찮은데
가슴이 큰 경우에는 밑으로 하면
말끔히 도려내기 어렵고 피부 괴사 위험도 높다고 하셨다.
잔뜩 실망한 내게 같이 계시는 후배 의사분은 (여자분이신데도!)
"여기 성형외과 아니에요." 날카롭게 더 이상의 질문을 봉쇄했다.
하지만 내 상심한 표정에 교수님은
흉터가 많이 신경쓰이면 로봇수술이 흉터가 적으니 알아보라며 권해주셨다.
대신 교수님은 로봇수술을 하지 않아 다른 교수님께 보내준다고.
사실 가장 많이 뵌 교수님이시기도 하고, 내 부분절제에 대한 갈망을 공감해주시고
애써주신 분이라 함께하고싶었지만 그 큰 흉터를 감당할 자신이 없더라.
로봇수술은 완전한 비급여 항목이다. 때문에 비용이 상당한데
더 큰 장벽은 하고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조건이 맞길 바라며 로봇수술 관련 외래를 잡았다.
마침 내가 병원에 온 날 그 교수님 진료가 있는 날이지만 당연히! 당일 외래는 불가!
또 일주일 후로 잡을 수 있었다.
그 사이 또 한 군데, 유방암 분야 명의+ 쭈욱 함께해오신 복원 분야 명의 콜라보 교수님들을 만나뵀는데
그 곳에서도 같은 이유로 옆 절개를 권하셨다.
밑선 절개를 원한다면 일단 복원 없이 확장기(납작한 상태의 통에 식염수를 넣어 점점 커지는 장치)를 넣고
몇 개월에 걸쳐 피부를 늘린 후 보형물을 제대로 넣는 작업을 권하셨다.
길게 보면 흉터가 잘 안 보이는 위치니 복원을 지연시키더라도 그게 낫겠지만
수 개월간 갑자기 가슴이 사라진채로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자,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종합해보자면
왼쪽: 전절제 불가피.
가슴 밑선 절개+보형물 동시 복원 혹은
가슴 옆을 절개하거나 밑선을 절개하고 지연 복원.
오른쪽: 부분절제가 가능하지만 좌우 밸런스를 생각한다면 이 역시 전절제가 낫다는 의견과
최대한 내 조직을 살리는 게 낫다는 의견으로 나뉨
항암 치료: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다.
단, 옆절개 혹은 지연복원을 말씀하신 성형외과 교수님과 콤비인
유방외과 교수님께서는 "항암 안 해도 되는데"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로봇수술이라는 새로운 옵션까지.
엇? 그러고보니 양쪽 모두 전절제로 가슴 밑선 절개+보형물 동시 복원을 말씀하신 교수님께서
로봇수술도 진행하셨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대기인원 20여명을 기다려 연결에 성공.
운이 좋게도 다다음날 외래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 알현.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떨렸고 걱정도 됐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고 아주 시원하게 말씀주셨다.
"난 부분절제 가능하면 무조건 부분절제 한다.
왼쪽은 전체절제 외엔 답이 없다.
기존에 말한대로 밑절개로 동시복원 가능하다.
옆선 절개 역시 위험부담이 있다.
오른쪽도 같이 맞추는 걸 추천하고
로봇수술도 가능하다.
로봇수술은 흉터가 절반 가량 화악 줄지만
비용이 상당하고 기기를 쓸 수 있는 날짜가 정해져있다.
때문에 수술을 빠르게 잡기 어렵다.
내 생각엔 로봇수술로 시간과 비용을 더 쓰느니
일반 수술로 하는 게 낫다고 본다."
"네. 저 그럼 교수님 믿고 눕겠습니다."
이렇게 내 병원 방랑기는 막을 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정한 병원은
가장 먼저 예약한 곳.
사실 우리 인생은 도박과도 같다.
늘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은 내가 진다.
그리고 선택하기 전 미래는 그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
플레이어들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사람은 좋은 패가 많이 들어오고
어떤 사람은 나쁜 패가 많이 들어오는 정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실력으로 커버가 될 수 있을 거다.
우리 암 환자들은 인생에 나쁜 패가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쁜 패가 들어왔다고 해서 꼭 게임에서 진다는 건 아니다.
나쁜 패를 갖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이제 수술 날짜가 확정됐으니
수술 전까지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