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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8. 2020

목화꽃 질 무렵

작열하는 태양이 삼라를 쪄버리려는 듯 맹렬하게 화독을 쏘아대던 게 달포도 채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농부들은 황금빛 들녘을 보며 가을걷이 시기를 깐보고 있고 초록을 뽐내던 나무들은 기세를 삭여 막 단풍을 들이고 있다. 곰과 뱀 같은 일부 야생 동물은 온몸을 지방으로 부풀리며 동면을 준비하고 있다. 본격적인 ‘월동’에 앞서 저마다 준비운동을 하며 기초대사를 줄이기에 한창이다. 가을은 역시나 곳곳에서 ‘사멸’이 시작되는 계절인가보다.      

   저녁시간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한 리포터가 목화솜 수확을 앞둔 농촌마을을 취재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도시에서보다 농촌에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르기에 부지런히 겨울맞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8월 중하순경이면 목화꽃이 떨어지는데 꽃이 떨어진 자리에 솜다래가 맺힌다. 리포터는 이 솜다래가 약 2~4주에 걸쳐 여물었다가 터지면 그제야 자연 그대로의 목화솜을 채취할 수 있다고 했다. 솜을 채취하는 일련의 과정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목화솜을 채취해 다듬는 행위가 농부에겐 작업의 끝이 될 수 있겠으나 목화솜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목화솜은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라는 특명을 받아 면화로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가을은 상징적으로 수확, 결실, 마무리의 전단계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어떤 동식물에게는 시작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들판 아무 데서나 피어나는 국화가 그렇고 도랑 옆길에 으밀아밀 수런거리는 코스모스가 그렇다. 이들은 자기 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하필이면 가을로 잡아 다른 것들이 사멸을 시작할 때 가장 청초한 모습으로 청춘을 시작한다. 마흔의 내 짧은 생을 반추해보면 나에게도 역시 가을은 ‘시작’의 의미로 다가온 적이 많았다.      

   군대를 전역한 후 난 학비 벌이를 명목으로 바로 복학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식당 허드렛일부터 막노동, 이삿짐센터까지 돈이 된다싶으면 가리지 않고 품을 팔아 등록금을 마련했던 나에게 ‘대학’이라는 간판은 모종의 성지와 같았다. 특히 내가 알바를 하던 술집에 또래 대학생들이 안주 겸 역사와 철학을 논하고, 여행과 이성교제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3년 치의 등록금을 모두 마련하기 위해선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 교정에 낙엽이 지고 선선한 바람에 학우들이 코트를 입기 시작하던 그 때, 난 그토록 벼르던 ‘복학’이란 것을 했다. 과 생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는 세계사, 철학, 인문학 가리지 않고 홀린 듯 서적을 탐독했다. ‘있어 보이는 콘셉트’를 짜왔다며 동기들은 비꼬기도 했지만 그간 켜켜이 쌓아왔던 정서적 허기를 해갈하며 지성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      

   학점, 토익, 봉사활동 등의 스펙에 파묻혀 지내는 동안 3년이 흘렀다. 늦더위가 기세를 조금은 누그러뜨린 8월의 어느 날, 난 늦깎이 복학생 3명과 함께 코스모스 졸업식을 올렸다. 운이 좋았는지 졸업 후 두 달 만에 백수딱지를 떼고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 나는 최종 합격 소식을 확인하고 강장음료 한 팩을 사들고 지도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주시며 제자가 들고 온 낭보에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사회인으로서의 첫 단추를 잘 꿰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정진해서 후배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제법 희끗한 교수님의 머리 뒤쪽 창밖에는 황갈색의 잎을 드리운 플라타너스가 바람결에 스산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목화꽃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솜다래가 맺히고 솜이 그 안에서 품을 찌워 결국 목화솜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대학이라는 둥지를 벗어나 번듯한 유니폼에 사원증을 목에 차고 홍보실로 출근하기 시작한 나는 작문의 기초와 비즈니스 매너, 문서 작성법을 새로 배우며 샐러리맨으로서의 소양을 찌워가기 시작했다. 사내 문화가 다소 경직되고 거칠었던 중공업 회사였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정규 사원으로, 그리고 조금 더 과대 포장해 말하자면, 국내 경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 명의 비즈니스맨으로 온전히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지만 어느 덧 완숙미를 자랑하는 중견 사원으로 성장해낸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월이 훌쩍 흘러 마흔을 이태 앞둔 작년, 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약을 맺었다. 속 썩이던 막내아들의 늦장가를 보신 어머니는 이제야 홀가분하다고 하시며 한복 소맷자락으로 눈 사위를 훔치셨다. 핀잔과 축하가 절묘하게 섞여 식장 분위기를 유쾌하게 달구었다. 호텔에서 근사한 첫날을 보낸 가시버시는 두 손을 꼭 잡고 공항으로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마주한 도로변은 마치 불이 난 듯, 굵은 팝콘이 튀겨진 듯 울긋불긋했다. 빨강, 연분홍, 보라, 하양... 제멋대로 피어난 코스모스 무더기들이 가을 잔바람에 수런대며 우리 앞날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새로운 근무지로 부임의 명을 받아 익숙지 못한 출근길에 오른 지도 어느덧 석 달째 접어들고 있다. 여전히 업무에 서툴고 어리바리하지만 매일 아침 배꼽인사로 맞아주는 꼬마 학생들이 반갑고 실수를 해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동료와 상사들이 고맙다. 이제 출퇴근길도 익숙해져서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운전을 한다. 매일 내가 출근하는 길은 논과 밭, 중소기업 공단을 두르는 촌길이다. 논두렁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무슨 대화일지 저마다의 수다를 떨고 있는 해바라기가 사뭇 정겹다. 추석이 지나면 저 길가에도 코스모스가 무더기 지어 피어날 것이다.      

   올 여름은 태풍다운 태풍, 장마다운 장마가 없나 했더니 가을 길목에 때 아닌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청명한 하늘이 펼쳐질 것이다. 동식물들은 몇 달 후 동녘에서 불어올 산들바람을 기약하며 월동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기업들은 마지막 분기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자며 파이팅을 외칠 것이다. 그리고 농부는 가을 들녘을 타작하며 수확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집근처 산야에는 어느새 이름 모를 가을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완연한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번 가을에는 이 바람을 타고 어떤 이야기가 날아와 내 삶의 페이지에 어떤 글을 써내려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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