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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9. 2020

우리 언니


   우리 오빠는요, 참 멋있었어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데 얼굴마저 훈훈해서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어요.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조그마한 시골 중고등학교예요. 남녀공학이고요. 저는 이제 중학교 1학년생이 되었는데 5살 차이나는 우리 오빠는 고 3 수험생이에요. 서울 상위권 대학을 노리고 있어서 선생님들의 기대가 컸어요. 어떻게 남매끼리 이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냐고요? 우리 오빠는 사실 친오빠는 아니고 외사촌오빠예요.      

   어릴 적부터 우리 오빠는 다정다감했어요. 이모집은 바로 옆 마을이었어요. 더운 여름이면 냇가에 미역 감고 오겠다는 핑계로 이모집에 놀러가곤 했어요. 그럼 오빠는 냇가에서 송사리도 잡아주고 물장구도 같이 쳐주고 놀았어요. 씻고 나서 우리는 이모가 밥 차려줄 때까지 공기놀이를 하거나 인형을 갖고 놀곤 했어요. 머리가 다 마르면 오빠는 제 머리를 땋아주곤 했답니다. 오빠는 손재주가 좋았어요. 오빠가 땋아준 머리는 언제나 예뻤고, 또 제 마음에 쏙 들었어요. 그런 날이면 집에 가서 엄마에게 오빠랑 재밌게 놀다왔다며 잠들기 전까지 자랑하는 게 제 일과였답니다.      

   우리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되게 잘했대요. 하루는 유치원에서 학예회가 열렸는데 오빠가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 역할을 맡았다고 해요. 화장을 한 우리 오빠는 연기를 아주 잘했다고 해요. 그리고 다른 학부모님들이 이모에게 그렇게 예쁜 딸이 있어 부럽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대요. 그날 오빠는 유치원에서 연기대상을 탔고 그 트로피는 오빠 방 책장 한 편에 아직도 늠름하게 모셔져 있답니다.      

   남들은 이모를 부러워했지만 정작 이모는 한없이 가녀리고 여성적이기 만 한 오빠를 많이 걱정했대요. 그런 오빠가 사춘기를 거치면서 아주 늠름해졌다고 했어요. 오빠가... 흠흠... 제가 봐도 좀 멋지긴 해요. 딱 벌어진 어깨에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 한편으로는 근엄해 보이기까지 하는 검정 뿔테 안경.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태권도를 배워서 몸매도 늘씬하게 잘 빠졌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오빠에 대해서 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그때마다 전 나도 잘 모른다며 시치미를 딱 떼곤 했답니다. 아직 어려서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우리 오빠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어요.     

   음...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럽지만 우리 오빠는 조금 음흉하기도 해요. 하루는 엄마가 이모랑 외갓집을 다녀온다며 오빠랑 같이 놀고 있으라고 했어요. 그 때 오빠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어요. 우리는 라면도 끓여먹고 만화책도 같이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조금 지루했어요. 어느덧 창밖의 해도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답니다. 오빠는 영화를 보자며 커튼을 닫았어요. 오빠가 틀어준 영화는 피부가 흰 금발 언니들이 나오는 영화였어요. 별다른 줄거리 없이 넓은 집안에서 대화를 나누던 언니들은 이내 알몸으로 뒹굴더니 서로 막 뽀뽀하기 시작했어요. 언니들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그 뭐라더라? 몸매를 교정해주는 속옷을 입고 있었어요. 아, 가터벨트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아.. 어떤 감정인지 표현은 못하겠어요. 전 이내 온몸이 더워졌어요. 그리고 부끄럽기도 했고요. 더 이상은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떨어뜨렸어요. 오빠도 뭔가 부끄러운지 연신 저를 힐끔힐끔 쳐다봤어요. 전 숨소리라도 오빠가 들으면 안될 것 같아서 숨도 꾹 참고 있었어요. 부끄럽고 어색한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오빠가 제 손을 잡았어요.      

   “정은아, 난 여자가 좋아.”     

   그럼요,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요. 오빠도 그 비디오 테이프가 그런 내용인줄은 몰랐던 것 같아요. 아마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든 분위기를 깨고 싶어서 그 말을 했던 게 아닐까요? 이내 엄마랑 이모한테서 곧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고 우린 마치 들켜서는 안 될 놀이를 하다 들킨 것 마냥 허겁지겁 비디오를 끄고 방 정리를 했어요. 제가 참 좋아하고 잘 따르는 오빠였지만 그날만큼은 조금 다른 사람 같고 무서운 느낌도 있었어요.      

   이후 몇 해가 흘러 제가 드디어 중학생이 되었답니다. 오빠와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어 더 기분 좋았어요. 개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어요. 개울가에 살얼음이 다 녹지 않았던 제법 추운 주말이었답니다. 전 엄마 심부름으로 이모집을 가게 되었어요. 아니, 엄마가 다녀오겠다는 거 오빠 얼굴 한 번 더 보자는 꿍꿍이로 제가 간다고 우겼지요. 이모집은 2층짜리 단독주택인데 그 당시에는 이웃끼리 잘 알고 지내는 촌동네였던지라 현관문을 크게 단속하지 않았답니다. 전 오빠를 놀래주려고 숨을 참고 발도 조심히 내딛으며 인기척을 최대한 내지 않았어요. 오빠 방 문은 조금 열려있었어요. 여드름을 짜고 있었던 걸까요? 오빠가 거울을 보며 분주하게 얼굴 단장하는 뒷모습이 좁은 문틈으로 보입니다.      



“오빠!”               


  화들짝 놀란 오빠가 뒤를 돌아봤어요. 아... 왜일까요? 오빠의 손에는 립스틱이 들려져 있고 얼굴엔 덕지덕지 화장 분가루가 묻어있었어요. 집에서 늘 입고 있었던 추리닝이 아닌 분홍빛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고요.                 

   “정.. 정은이 왔구나. 오빠 그거, 학.. 학예회가 있어서 준비하고 있었어.”     

   고 3인데도 학예회를 하나봅니다. 그게 수행평가에 들어가나봐요. 어쨌든 아무도 없는 집이었는데 제가 짜잔~하고 나타나니 오빠가 많이 놀랐나봐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진정한 오빠는 제게 과자랑 우유랑 내어주었답니다. 늘 그랬듯 다정한 모습으로요. 참, 오빠가 학예회를 위해 새로 샀다는 체크무늬 치마는 학예회가 끝나고 저를 준다고 했어요. 오빠는 늘 저에게 이것저것 선물해주는 참 다정한 사람이에요.      



  중학생이 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어요. 학교는 방학식을 했고 전 읍내의 작은 보습학원을 다니는 것 외에 딱히 하는 거 없이 심심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중 엊그제였어요. 주말에 이모가 어디 가시니 같이 집에서 공부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며 오빠가 연락을 했어요. 늘 그랬듯이 전 우리 오빠랑 함께 있는 걸 너무 좋아해요. 아껴뒀던 용돈을 꺼내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랑 김밥도 사고 햄버거도 샀어요.      

  어려서부터 늘 왔던 이모집인데 그날따라 왠지 떨렸어요. 현관문도 굳게 닫혀있는 것 같았고, 한여름 땡볕에 마당의 풀들은 다 말라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왔답니다.      

  헤헤, 지난번과 같아요. 오빠 방 문이 조금 열려있어요. 그 때도 놀래주고픈 마음이었어요. 문틈으로 비집고 들여다봅니다. 허걱, 그 날은 오빠가 여드름을 짜고 있지 않았어요. 뭔가 표정없는 얼굴을 한 채 문틈 사이로 거실을 보고 있었답니다. 이내 제가 방 밖에 있는 걸 봤나봐요. 세상에, 가터벨트를 입은 오빠가 저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우리 오빠가....  






                                

============                    

피해자 진술서/ 조홍                    


‘엽편소설’의 결말은 독자의 몫이다. 이 작품은 서술자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라 일종의 2인칭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본격적인 2인칭이 아니라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한 2인칭 화법의 실험적 방식이다.      

처음 「우리 언니」로 읽었을 때는 제목이 소설의 주제에 대한 암시 역할을 하여 도입부터 결말까지 성 정체성 문제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언니 = 우리 오빠”, 즉 오빠는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다. 양성애자이든 트랜스젠더이든 커밍아웃의 심리를 가진 오빠다. “정은아, 난 여자가 좋아.” 이 말은 남자로서 여자가 좋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은 성 정체성의 문제로 여성이 되고픈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피해자 진술서」로 바꾸는 순간 친족(?) 성추(폭)행 내용으로 바뀌어 읽힌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제목을 설정해야 하겠지만, 「우리 언니」는 너무 쉽고, 「피해자 진술서」는 내용을 너무 삼류로 만든다. 두 가지 모두로 읽히게 하고 싶다면 새로운 제목을 찾아보자. 그리고 아무리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지만, 외사촌 남매와 이종사촌 남매는 구분해야 한다. 이런 실수는 작품 전체의 신뢰성을 잃을 수 있다. 아무튼 내용은 삼류소설이지만, 문장력, 전개 방식, 구체적이지 않는 복선, 결정짓지 않는 결론 등이 상투적이지 않아 좋다. 처음 쓴 소설로서는 대단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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